서울
-
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
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
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
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
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845년(헌종 11) 유성운(柳成云)이 임영장댁(任營將宅) 노비 춘쇠[奴春金]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한 토지 매매 명문으로 인천부 황등천면 중림리[지금의 시흥시 과림동]에 있는 전답을 임영장댁 노비 춘쇠에게 매매하였다. 낱...
-
경기도 시흥에 있던 군자염전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조세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이원세가 감독을 맡고 영화사 한진흥업(주)에서 제작한 영화다. 소설에서는 서울의 달동네 철거촌이 배경이었지만 영화에서는 경기도 시흥의 염전 마을로 바꿔 염부들과 그 자녀들의 힘겨운 생활상을 보여 주고 있다. 자본주의가 가난한 난쟁이 가족의 행복을...
-
경기도 시흥시 시흥 군자봉 성황제에서 불리는 무가의 사설. 「시흥 군자봉 성황제 무가」는 군자봉 정상에서 행해지는 의례의 무가와 당주무의 신당에서 행해지는 의례[하당굿]의 무가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경기 이남의 세습 무계(巫系)에서 진행하는 도당굿의 무가가 주를 이루지만, 후자는 서울·경기 지역의 강신무(降神巫)[신이 내려 무업을 하는 무당]의 진적굿[무당...
-
경기도 시흥시 군자봉에서 펼쳐지는 음악과 함께 하는 성황제. 「시흥 군자봉 성황제 음악」은 마을 풍물패와 무녀의 노래, 악사들의 반주 음악 등으로 다양한 측면을 지닌다. 마을 풍물패는 김부 대왕을 서낭대로 받들어 유가(遊街)를 돌거나 성황제가 행해지는 군자봉 정상까지 옮기는 동안 걸으면서 연주한다. 무녀의 노래는 경기 이남의 도당굿에서 주로 나타나는 경기 시나...
-
경기도 시흥시의 대표적인 산인 소래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열두 마을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담은 책. 『소래산이 품은 12마을 이야기』는 시흥역사문화연구회 한개에서 2011년 출간한 서적이다. 『소래산이 품은 12마을 이야기』는 시흥군 시절 행정 중심지로의 역할을 하던 소래읍 신천리를 비롯하여 그 주변 자연 마을 12개소를 선정하여 현지 답사와 마...
-
경기도 시흥시가 속해 있던 안산군의 사로사 일원인 백상형의 개인 문집. 18세기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일대]에서 결성된 사로사(四老社) 일원인 백상형(白尙瑩)[1705~1789]의 문집으로 그의 저작과 사로사에 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사로사는 안산군의 남인 및 소북계(小北系) 사대부들이 결성한 시 모임이다.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순보(純甫), 호는 오헌(傲軒...
-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고 있는 지도. 『지도(地圖)』는 소매에 넣을 수 있는 수진본(袖珍本)으로 『여지도첩(輿地圖帖)』에 수록된 채색 필사본 지도이다. 지도 뒷면에는 국가의 기일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기록이 철종[재위 1849~1863]까지 수록된 것으로 보아, 『지도』는 고종[재위 1863~1907] 대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
19세기 후반 우리나라를 그린 『해좌승람』에서 경기도 시흥시가 포함된 지도. 『해좌승람(海左勝覽)』은 조선 팔도를 그린 지도로 각 군현의 명칭과 산 이름 중심으로 간략하게 제작되었다. 『해좌승람』 「경기도」는 조선 팔도를 그린 채색 필사본 지도첩의 경기도 부분으로 크기는 가로 28.8㎝, 세로 30.6㎝이다. 2018년 현재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
소설가 윤후명이 경기도 시흥 지역을 운행하던 수인선 협궤열차를 소재로 1992년 발표한 장편소설. 『협궤열차』는 소설가 윤후명이 협궤열차가 정차하는 지역에 거주하게 된 ‘나’를 주인공으로 쓴 장편소설이다.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던 군자역과 달월역 등 옛 수인선 역을 비롯해 소래철교 부근 바닷가 풍경, 협궤열차를 타는 어민들의 모습, 시흥 군자봉 성황제 등을 배경으로 삶과...
-
1919년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경기도 시흥 지역으로 전해져, 1919년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까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 통치(武斷政治)를 반대하며 하부 통치 기구인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소래산·대부도의 대몽 항쟁(對蒙抗爭)과 하우명(...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남한과 북한의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발발하였으나, 경기도 시흥 지역은 북한군의 주 공격 방향에서 비켜나 있어서 1950년 7월 초 북한군에게 점령되었다. 1950년 9월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시흥...
-
경기도 시흥시에서 육지에 면한 바다나 갯벌의 일부를 둑으로 막고 그 안의 물을 빼내 육지로 만든 사업. 우리나라의 서해안은 해수면이 낮거나 간석지의 발달이 탁월하여 오래전부터 간척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서해안에 자리한 경기도 시흥시에서도 일찍부터 간척 사업을 실시하였으며 새롭게 육지로 만들어진 땅에는 공업단지·주택단지·시가지·농경지 등을 조성하였다. 시흥시에는 1...
-
1970년대까지 한적한 교외 지역이었던 시흥은 1977년 서울의 철거민들이 복음자리마을을 조성하면서 철거 이주민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는 한편 정부의 도시 빈민 주거 정책 부재를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복음자리마을 옆에 들어서기 시작한 신천동 83번지 무허가 판자촌은 1993년 화재 사건을 계기로 도시 개발에 따르는 철거 투쟁이라는 그림자를 분명하게 드...
-
경기도 시흥시를 통과하여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고속철도 노선. 경부고속철도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울역과 부산광역시 동구 부산역을 잇는 고속철도 노선으로 경부고속철도 및 호남고속철도의 광명역~오송역 구간을 위해 신설한 KTX 전용 고속 주행 선로이다. 시흥시 구간은 광명역에서 천안아산역을 잇는 구간인 목감동과 조남동을 통과하며 정차역은 없다. 경부고...
-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에 설립된 시흥 포도의 원조 포도 농장.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이규석이 1930년대 말 향리(鄕里)인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계수리[지금의 시흥시 계수동] 수노골에 내려와 과수 농원인 계림농원을 설립하였다. 계림농원은 시흥 지역에서 한국인이 경영한 최초의 근대식 포도 재배지였다. 이규석은 인근 주민들에게 포도 심기를 권장하고 재배 기술을...
-
경기도 시흥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과학, 응용과학, 공학 및 생산기술의 총칭. 경기도 시흥시는 농업과 수산업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공업 도시로 바뀌었다. 1990년대 중반 정부에서는 서울에 밀집된 공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려 시화국가산업단지 등을 조성하였다. 이에 시흥시는 공업 도시로 급성장하였다. 특히 조립,...
-
경기도 시흥시에서 사람이나 물자의 이동 및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연관 시설. 교통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회·경제 활동의 하나이며 사람과 화물을 운반하기 위해 장소 간 거리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 위해서는 도로와 교통수단 및 연관 시설의 구비도 중요하다. 교통은 육상 교통, 수상 교통, 항공 교통으로 나뉘며 육상 교통은 자동차 교통·철도 교통 등으로 세분...
-
경기도 시흥시 소래 지역에서 활동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구연준(具然濬)[1886~1945]은 1919년 3.1운동 당시 강화도에서 동지들과 『자유민보(自由民報)』와 독립선언문 등을 비밀리 인쇄하고 배포하여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 이후 1920년에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지금의 시흥시 신천동]으로 이주하여 소래공립보통학교의 훈도를 역임하고 부천군...
-
경기도 시흥시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에서 1919년 3월에 일어난 독립 만세운동. 군자면 3.1운동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里)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를 반대하며 군자면사무소와 거모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펼친 항일 독립 만세운동으로, 시흥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 광복운동이다. 시흥군 군자면은...
-
경기도 시흥시에서 시흥 군자봉 성황제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 군자봉 성황제 연구보존회는 1993년 김순덕(金順德)[1938~2009] 당주무[굿을 주도하는 무당] 주도로 정식 발족하였으며, 2012년 한정현 회장을 선출하여 비영리 민간 단체로 등록하였다. 2015년 11월 20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된 시흥 군자봉 성황제의 보존과...
-
경기도 시흥시에서 행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의 활쏘기 무예. 궁도(弓道)는 활을 이용하여 화살을 과녁에 맞히는 정확도를 겨루는 전통 무예로 근래에는 신체 단련과 정신 수양을 위하여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운동이다. 궁도 경기는 단체전과 개인전이 있으며 단체전은 시·도 대항전과 정(亭) 대항전으로 나뉘고 개인전은 성별·연령별로 나뉜다. 대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기본...
-
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의 구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권희(權憘)[1900~1955]는 1919년 4월 7일 군자면 구 장터 만세운동을 모의하다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경기도 안산군 마유면 장상리 안두일[지금의 시흥시 장현동]에서 대대로 세거한...
-
경기도 시흥시의 30대부터 50대까지의 토착민과 이주민을 비교해 살펴본 시흥 시민의 삶. 경기도 시흥시는 인천광역시, 경기 서남부 및 서해안과 인접한 도시로 서울 반경 10㎞ 내에 있다. 지형은 완만한 구릉과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의 64.4%가 개발제한구역으로 서해 바다와 저수지, 오이도, 시흥 갯골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시흥 오...
-
‘소래(蘇萊)’라는 명칭은 인천광역시, 부천시, 시흥시에서 모두 사용되고 있지만 시흥시에는 소래산을 비롯해 소래염전, 소래산 편사 놀이, 소래문학회, 소래초등학교 등 시흥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속에 ‘소래’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소래’에 대한 지역민의 애정과 애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행정구역상 소래산은 현재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과 시흥시 대야동...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과 월곶동에 걸쳐 있는 저수지. 마전저수지는 수심이 깊고 수질이 깨끗한 낚시터이다. 수면적 66㎡로 주요 어종은 붕어·역돔·잉어·향어·송어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인근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베스 낚시를 즐길 수 있어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높다. 낚시터 전역에 좌대가 잘 설치되어 있어 낚시 여건이 좋으며, 주변 환경이 깨끗하고 풍광이 아름다워 가...
-
경기도 시흥시 갯골에 서식하는 양서류. 맹꽁이의 학명은 Kaloula borealis로 ‘쟁기발개구리'라고도 한다. 시흥시를 포함한 경기도와 서울특별시, 경상남도 등지와 중국 북동부 지방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5월 31일 멸종 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2017년 시흥갯골생태공원에서 맹꽁이 올챙이 수백 마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맹꽁...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민간 신앙. 시흥시의 무속은 경기 남부 지역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경기 남부 지역은 세습무(世襲巫)인 화랭이와 강신무(降神巫)들이 활동하였다. 촌락의 경우에는 단골 무당이 있어 그들이 도당굿[마을 공동체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을굿]을 하였으며 가정굿에도 관여하였다. 시흥 지역의 많은 마을에서도 도당굿을 했다....
-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 있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무지내교회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중부연회 시흥북지방 소속으로 일제강점기에 설립되어 경기도 시흥과 안산·수원 지역, 충청남도 공주 지역으로 교리를 전파한 교회이다. 1901년 5월 아담한 예배당을 신축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봉헌 이듬해인 1902년 6월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
-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경기도 최초의 사립학교. 무지리여학교의 교실을 짓는 비용은 미국 감리회 해외선교부의 선교사인 메리 스크랜턴(Mary Fletcher Benton Scranton, 1832~1909)이 원조하였다. 당시 미국 감리회 선교사들은 서울 이외의 농촌 지역 선교에도 주력하였으며, 특히 농촌 지역 여성들의 교육에 관심이 컸다. 무지내교회가 시작...
-
경기도 시흥시 죽율동 출신의 기업가. 본관은 남평(南平). 문순모(文順模)[1911~1983]는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지금의 시흥시 죽율동 393]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문창영(文昌永)이고 어머니는 강달산(姜達山)이다.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문순모는 소래공립보통학교[지금의 소래초등학교]를 거쳐 1931년 서울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전매국 주...
-
경기도 시흥시 호조벌 방죽 일대에서 1895년 무렵 이루어진 개신교의 선교 과정. 1880년대 조선 선교에 나선 미국 감리회는 시흥 지역 호조벌 방죽 주변을 의미하는 '방죽뫼' 지역을 중요 선교 거점으로 보고 적극적인 농촌 선교에 나섰다. 1895년 무렵에는 교인이 되기 위해 학습하는 사람이 12명이었다. 1901년 김동현[1869~1928]에 의해 시흥 지역 최초 개신...
-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샛말에 살았던 조선시대 문인. 시흥시 하중동 샛말에 면포정(面圃亭)이란 정자를 짓고 살며 당시 안산의 남인(南人) 및 소북계(小北系) 사대부들과 사로사(四老社)라는 시사(詩社)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순보(純甫), 호는 오헌(傲軒). 백상형(白尙瑩)[1705~1789]의 할아버지는 호조참의(贈戶曹參議) 백검(白儉...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마을 공동체를 위한 사회복지 기관. 1976년 서울시 도시 개발에서 밀려난 양평동 주민 170세대가 시흥으로 이주를 시작하면서 청계천, 목동등의 철거민들도 보금자리를 찾아 시흥 지역으로 밀려 들어왔다. '복음자리 공동체'는 철거민들의 이주와 정착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 복음자리 공동체를 기반으로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는 시흥 지역에서...
-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북부 지역을 1914년 4월부터 1973년 6월까지 관할하였던 옛 행정구역. 부천군(富川郡)은 경기도 중서부 지역에 있었으며, 서울과 인천 지역 사이에 있는 부평평야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부천군 지역인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은 부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시흥시의 교통 중심지로 높이 299.4m의 소래산이 있다. 소래산 산림욕장을 중심으로...
-
시흥군 소래면 신천리[지금의 시흥시 신천동] 복음자리마을은 1977년부터 서울의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이 집단 이주해 형성되었다. 도시 빈민으로 살면서 가난에 찌들어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했던 복음자리마을 주민들은 제정구(諸廷坵)와 정일우(鄭日祐)[John Vincent Daly] 신부 등 헌신적으로 마을 공동체 운동을 펼친 관계자들과 함께 연대하여 자립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
경기도 시흥 지역을 포함한 18세기 안산 지역의 남인 및 소북계 사대부들이 결성한 시 모임. 사로사(四老社)는 오헌(傲軒) 백상형(白尙瑩),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의암(蟻庵) 조중보(趙重普), 석가재(夕可齋) 이태길(李泰吉) 등 4명의 인사가 참여한 모임이었다. 이 모임이 결성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66년(영조 42) 10월 학산(鶴山)...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행해지는 산악에 대한 믿음과 숭배. 우리나라 전통의 토착 신앙은 샤머니즘에 기초한 자연 종교이다. 현상적으로 자연은 하늘, 땅, 바다로 삼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토착 신앙에서 자연은 하늘과 별을 대표하는 칠성(七星), 산을 대표하는 산신(山神), 물을 대표하는 용왕(龍王)으로 삼분될 수 있다. 하늘이 다소 추상적인 데 비해, 산과 물은 지상에 사...
-
시흥 지역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과 어촌 중심의 향촌 공동체를 토대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안산시에 조성된 반월국가산업단지를 1980년대 중반 확장하면서 정왕동 일대에 대단위의 산업단지가 개발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산업단지는 현재 시화국가산업단지[시흥공단]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지리적으로 접해 있는 반월국가산업단지와 시화국가산업단지는 시너지 효과를 내며 시흥...
-
고구려·백제·신라 및 가야가 병립하였던 시기의 경기도 시흥의 역사와 문화. 삼국시대는 고구려를 비롯하여 마한·변한·진한 등 삼한을 계승한 백제와 신라, 가야가 고대 국가로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는 3세기경부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던 668년까지를 의미한다. 삼국시대는 삼국 및 가야 이외에 부여·옥저·동예 등 여러 나라가 공존한 시기도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고구려·백제·...
-
경기도 시흥시 각 지역의 주민들이 행정구역과 관계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범위. 생활권이란 행정구역과 관계없이 공동체 의식으로 결속될 수 있는 범위이자, 도로나 자동차 등을 이용한 일상생활의 접촉 범위 내에 있는 권역을 말한다. 시흥시는 북서쪽으로 인천광역시, 북쪽으로 경기도 부천시, 동쪽으로 경기도 광명시와 안양시, 남쪽으로는 경기도 안산시에 접해 있다. 시흥시...
-
경기도 시흥시에서 활동하는 국악 단체 서도소리보존회 산하 지역 단체. 서도소리보존회 시흥지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西道-) 보유자 이춘목과 김광숙이 2001년에 설립한 사단법인 서도소리보존회의 경기도 시흥 지역 지부로 박일엽 지부장이 창단할 때부터 운영을 맡고 있다. 시흥시는 경기도에 속하지만 서해안을 끼고 황해도 및 평안도 등의 서도 지역과 연결...
-
경기도 시흥시 목감동과 조남동을 거쳐 경기도 광명시와 군포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는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과 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을 잇는 총연장 340.6㎞의 고속도로이다. 노선 번호는 15번이다. 경기도 시흥시 구간은 조남동~목감동 구간으로 총 4.4㎞이다. 조남 분기점과 목감 나들목[IC]이 있으며 제한속도는 최고 110㎞/h, 최저 50...
-
경기도 중서부에서 경기만에 접한 시흥시는 간석지[개펄]가 발달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곳이다. 도시의 서쪽 해안가를 따라 아주 넓게 펼쳐진 간석지는 일찍부터 시흥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이었다. 시흥시는 한반도의 중서부를 가로지르는 광주산맥의 산줄기가 끝나는 곳에 자리하여 고도가 낮은 구릉성 산지가 발달해 있고, 기복이 심하지도...
-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인천과 안산에 속해 있었다. 조선 초기 인천에는 이(李)·공(貢)·하(河)·채(蔡)·전(全)·문(門)의 토착 성씨가 있었고, 내성(來姓)으로 박(朴)이 있었으며, 망성(亡姓)으로 최(崔)가 있었다. 안산에는 김(金)·안(安)·방(方)의 토착 성씨와 망성으로 임(林)이 있었다. 이들 토성 중 안산의 안산 김씨(安山金氏)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씨가 조선...
-
경기도 시흥시에서 특정한 성씨가 모여서 대대로 살고 있는 곳.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김(金), 이(李), 박(朴) 등 혈연에 기초한 성을 사용하였지만 일반화되지는 않았고 차츰 중국의 성씨 제도를 수용하면서 고려 초기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의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賜性)을 비롯하여 모성(冒姓), 변성(變姓), 자칭성(自稱性) 등의 방법으로...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무단 철거 직전의 소래염전 소금창고를 박물관, 미술관, 체험 학습관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벌인 운동. 소래염전 부지의 소유주였던 (주)성담이 2006년 6월 4일 현장에 남아 있던 소금창고 40동 가운데 38동을 방화 등으로 무단 철거하였다. 이에 시흥 지역 시민 단체와 문화 연대 등이 ‘구염전 소금창고 무단철거 항의 시민행동’을 조직하고...
-
경기도 시흥 지역의 버스 노선을 운행하는 운수회사. 1928년 이래 90년간 경기도 시흥시와 부천시·안양시, 서울특별시를 잇는 버스 노선을 운행해온 시흥의 대표적 운수회사이다. 경원여객, 소신교통, 시흥교통 등은 소신여객으로부터 독립해 나왔다. 1928년 신현순이 당시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와 계남면 소사리 간 여객 수요가 많은 데 착안하여 포드 8인승 1대로 노선...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고등동 육교사거리를 기점으로 하여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를 거쳐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사거리를 종점으로 하는 도로. 수인로는 전 구간이 국도42호선에 속해 있으며, 시흥시 신천동에서는 국도39호선과 중복된다. 시흥시의 남동~북서쪽을 관통하는 도로로 목감동, 매화동, 은행동, 신천동을 지난다. 수인로는 경기도 수원시와 인천광역시를...
-
경기도 수원시에서 안산시·시흥시를 지나 인천광역시까지 오가던 협궤 노선. 수인선 협궤철도는 1937년 개통되어 1995년까지 운행된 협궤철도이다. 수인선 협궤철도는 수원시와 인천광역시를 잇는 철도라는 의미로 수인선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고, 보통 열차보다 좁은 철도 노선이라 협궤철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인선 협궤철도는 40㎞/h 전후의 속...
-
경기도 시흥 시민들이 정치·경제·사회 등 각종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펼치는 각종 활동. 시민운동은 시민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대한 활동을 하는 정치 참여의 형태를 말하며 시민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전제로 한다. 주로 시민 단체를 만들거나 가입하여 활동하는 형태로 참여하게 된다. 인권, 환경, 평화, 정치 개혁, 행정 감시, 제도 개선 등이 주된 내용이며 방...
-
경기도 시흥시에서 여러 가지 상품을 거래도 하고 매매하기도 하는 장소. 서울과 가까운 입지적 조건으로 인해 시흥 지역의 시장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발달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선 후기에는 방축(防築)시장, 산대(山垈)시장, 수암(秀岩)시장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영등포시(市)·잠실리시·군포장시(場市)·삼거리시·사천시(蛇川市)가 개설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신도시. 시화 신도시는 시화국가산업단지의 배후 도시로 조성된 신도시이다. 시화국가산업단지는 옛 군자염전을 매립하여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 일원에 조성한 156.92㎢ 규모의 공업단지이다. 군자염전은1920년대 초반 시흥군 군자면 일대에 조성된 염전으로 옥구도, 오이도, 죽율동을 연결하는 넓은 간석...
-
경기도 시흥시의 시화국가산업단지와 정왕동 주거단지 사이에 조성된 완충녹지 공간. 시흥시는 1989년 시로 승격되면서 안산시와 함께 서울의 공업 기능을 분담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 서해안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시흥~안산 간 고속도로 등의 완공으로 시흥 지역과 서울 간의 교통로가 확충되면서 시화 지구 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곡동 일원에 자리한 국가산업단지. 서울 남서쪽 30㎞ 지점에 위치한 시화국가산업단지는 반월국가산업단지의 확장 개념에서 새로운 중소기업 전문 단지로 개발한 곳으로, 중소기업 중심의 부품과 소재 전문 산업단지로 조성되었다. 인접한 반월국가산업단지 및 남동국가산업단지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중소기업 산업단지이다. 서울...
-
1895년부터 1988년까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영등포구·관악구·동작구·구로구와 경기도 광명시·안양시 일부를 관할하였던 경기도의 행정구역. 시흥군(始興郡)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군청을 두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를 중심으로 영등포구[양화동·여의도동 제외], 관악구[남현동 제외], 동작구 일부[신대방동·상도동], 구로구 동부[안양천 동쪽]와 경기도 광명시...
-
경기도 중서부에서 황해에 접해 있는 도시. 시흥시는 경기도 중서부에서 경기만에 있는 시이다. 동쪽으로는 경기도 광명시 및 안양시와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경기만 및 인천광역시 남동구, 남쪽으로는 경기도 안산시, 북쪽으로는 경기도 부천시와 각각 경계를 이룬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6° 43′ 03″[정왕동]~126° 53′ 51″[조남동]에 걸쳐 있고,...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 시흥안산지구 소속 천주교회. 신천성당은 천주교 인천교구 시흥안산지구에 소속된 교회이다. 대골공소와 신천리공소를 거쳐 1979년 신천성당이 되었다. 주보 성인(主保聖人)은 노동자 성 요셉이다. 신천성당은 선교, 전례, 봉사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설립되었다. 1...
-
경기도 시흥시 금이동에서 출생한 시흥 지역 최초의 운수업자.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경기도 시흥시 도리재길 23-10[금이동 462]에서 출생하였다. 신현순(申鉉舜)[1895~1969]은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신철균(申哲均)의 2남이다. 신현순은 근대 문물에 일찍이 눈길을 돌려 1928년 포드 8인승 1대를 구입한 데 이어 1930년 10인승 2대의 차량으로...
-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남부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관할하였던 행정구역. 안산군은 지금의 시흥시 남부를 비롯해서 안산시 일원과 수원시 권선구 입북동, 군포시 대야동, 의왕시 부곡동 일부 등이 해당되는 행정구역이다. 고을의 치소(治所)인 읍치(邑治)는 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었다. 경기도 시흥시 남부가 속해 있던 안산군은 서해안 시화호 일대에서 서울로...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과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을 잇는 수도권 전철 노선.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을 기점으로 하고, 안산시를 경유하여 시흥시 오이도역을 종점으로 하는 수도권 전철 노선이다. 수도권 전철 4호선 차량이 운행한다. 시흥시 구간은 정왕역[한국산업기술대], 오이도역이 지난다. 안산선은 반월국가산업단지가 소재한 안산을 기점으로 수도권 전철 사당역까...
-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 정부에서 징수한 어세·염세·선세를 통칭하는 용어. 조선시대 정부는 토지와 백성뿐 아니라 어장(漁場)과 염장(鹽場), 선박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어세(漁稅), 염세(鹽稅), 선세(船稅)이다. 어염선세(漁鹽船稅)는 『경국대전』에서 처음으로 법제화되어 조선 후기까지 변화하며 유지되었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 해당...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사용되는 말이나 문자의 총칭. 시흥 지역의 언어는 우리나라 중부 지역인 경기 방언과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점차 서울 표준말과 동일하게 변하고 있다. 시흥 지역은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가 영향을 미치면서 세 나라의 언어가 동화되거나 마찰을 빚기도 하면서 경기도 방언으로 자라났다고 볼 수 있다. 시흥시와 안산시는...
-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류자신의 재실. 영모재(永慕齋)는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의 장인인 류자신(柳自新)의 재실(齋室)로 시흥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류자신은 본관이 문화(文化)이며 자는 지언(止彦)이다. 1564년(명종 14) 진사시에 입격(入格)한 후 태릉참봉(泰陵參奉)이 되었고, 1579년(선조 12) 형조정랑(刑曹正郞)...
-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월곶포구 일대에 개발된 신도시. 월곶 신도시는 1990년대 월곶동 공유수면 매립 이후 시화국가산업단지의 배후 주거 단지로 조성된 곳으로 월곶포구 일대에 개발된 신도시이다. 인근 시화국가산업단지와 인천광역시 남부와의 지리적 인접성을 살려 1만 8000명 규모의 신도시로 설계되었다. 지하철 수인선 월곶역, 서해안로, 소래로 등 주요 도로가 신...
-
경기도 시흥시 관내 월곶 앞바다의 어업권과 어획물 관리 및 집산을 위한 어업인 단체. 1997년 어민들이 결집하여 구성되었고, 2001년 시흥시청의 인가와 옹진수산업협동조합[옹진수협]의 인증을 받아 월곶어촌계가 설립되었다. 다양한 어선으로 여러 가지 어물을 잡았지만 인근 어촌계에 비하면 규모가 크지 않았고, 1990년대 후반부터 규모가 커졌다. 택지 개발이 진행되면서 2...
-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의 문신. 윤지완(尹趾完)[1635~1718]은 1662년(현종 3) 증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1673년(현종 14) 설서(說書)를 시작으로 어영대장, 예조판서, 경상도관찰사, 병조판서, 좌참찬, 우의정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고향 안산 동산골[지금의 안산시 원곡동]에 내려와 살다 84세로 사망하였다. 청백리에 녹선(錄選)...
-
경기도 시흥시 논곡동에서 출생한 향토사학자 겸 자료 수집가. 이한기(李漢基)[1945~2002]는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논곡리 227[지금의 시흥시 논곡동]에서 출생하였다. 승언(承彦)이란 필명을 애용하여 본명보다 필명이 널리 알려졌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상오재(尙五齋), 필명은 승언. 아버지 이윤학(李潤鶴)과 어머니 김숙진(金淑鎭)의 3남 1녀 중...
-
경기도 시흥시에 살고 있는 사람의 규모 및 그와 관련한 현상. 과거 시흥에 속했던 지역이 독자적인 도시로 분리되어 행정구역이 변화함에 따라 시흥시의 인구는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였으나, 현재와 같은 시흥시 행정구역이 획정(劃定)된 1989년 이후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시흥시의 인구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주변부로 인구 이동이 일어나는 탈도시화가 진전되고, 시흥시...
-
경기도 시흥시에서 인간의 활동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인간의 여러 가지 활동에 의해 지표에서 나타나는 가시적인 경관과 비가시적인 경관을 포함한다. 인문지리에서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는 요소는 인구 집단, 상호 작용, 토지 이용 등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즉, 인문지리는 공간과 장소에 관련하여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표상의 다양한 요소에 대한...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는 민족 광복 운동사에 중요한 사건인 3.1운동이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수암면과 군자면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에 맞서 지역민을 조직하여 하부 통치 기구인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에 몰려가 만세 운동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수암면의 유익수, 윤병소, 홍순칠, 윤동욱, 김병...
-
1895년 갑오개혁 이후 광복 이전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을 관할하였던 행정구역. 인천부(仁川府)는 시흥군을 비롯하여 부평군, 김포군, 양천군, 안산군, 과천군, 수원군, 남양군, 강화군, 교동군, 통진군, 인천군 등 12개 군을 관할하였다. 관찰부(觀察府)는 제물포에 두었다. 인천부에는 관찰사(觀察使) 1인, 참서관(參書官) 1인, 주사(主事) 15인, 경무관(警務官)...
-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역사. 일제강점기 시흥은 서울 남서쪽 농촌 지역에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역이 변화하였고, 면 중심의 식민지 행정 통제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는 시흥의 주민들도 적극 만세 시위를 벌여 독립의 희망을 표출하였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가 계속되면서 70%가 지역 토박이인 시흥...
-
1918년부터 1923년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진행된 임야 소유권 재정리 사업.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토지 조사 사업에 이어 임야 조사 사업을 진행하였다. 임야의 근대적 소유권을 확정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1908년 삼림법에 따른 임야 조사로 엄청나게 늘어난 국유림(國有林)을 다시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어 국유림 관리 비용을 민간에 떠넘기고 산림을 통제하기...
-
조선 선조 때 경기도 시흥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일본의 침략 전쟁.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은 1차의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의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를 포함하여 말한다...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장례를 치른 후 무당을 불러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굿. 자리걷이를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망자(亡者)가 죽을 때 깔고 있던 자리를 걷어낸다는 뜻이다. 옛날 장판이 없을 때는 돗자리를 방에 깔아 놓고 생활하였다. 환자가 투병 생활을 하면서 그곳에 누워 있다가 죽으면 장례를 치른 직후 그 자리를 걷어내고 망자의 넋이 천상에 이르도록...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공동체 지역 복지 활동을 펼치는 기관. 작은자리종합사회복지관은 사회복지사업법의 규정에 근거하여 모든 지역 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의 질을 보장받고 복지 사회 건설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기관이다. 저소득층의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지역 발전을 이루는데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공동체 지역 복지 운동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에 따라...
-
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는 옛 군자면 구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장순한(張淳翰)[1900~1981]은 1919년 4월 7일 군자면 구 장터 만세운동을 모의하다가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본관은 덕수(德水), 초명은 수산(壽山)·순한(淳翰), 자는 중옥(重玉), 호는 매암(梅巖). 신풍부...
-
경기도 시흥 지역에 돌이나 나무에 사람의 얼굴을 새겨서 마을 또는 절 어귀나 길가에 세운 푯말과 문화. 장승은 전국적으로 분포된 마을 공동체의 신앙 대상물로 나무 기둥이나 돌기둥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오방신장(五方神將) 등 명문(銘文)을 쓰고 길가에 세우는 신상(神像)이다. 솟대는 장대나 석조물을 단독으로 혹은 장승과 함께 마을 입구나 출구...
-
경기도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마을에 거주했던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한국 양명학의 대종사. 정제두(鄭齊斗)[1646~1736]는 학자로서 평생 학문을 연구하며 살았다. 잠시 평택현감과 회양도호부사로 부임하고 영조의 총애를 받아 이조참판, 대사헌, 세자시강원찬선(世子侍講院贊善),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 등의 요직에 기용되었지만 지속적으로 사퇴를 청하였다....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과 목감동을 거쳐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을 잇는 지방도. 제3경인고속화도로는 2010년 개통한 경기도의 지방도로 노선 번호는 330번이다. 노선 번호는 경기도에 속한 지방도라 300번대를 부여받았으며 동서 방향의 도로로 짝수 번호인 30번을 부여받았다. 시흥시 정왕동, 월곶동, 장곡동, 장현동, 하중동, 하상동, 금이동, 논곡동, 목감동을...
-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서 100년간 3대에 걸쳐 가난한 이웃에게 곡식과 재물을 나누고 베푼 신안 주씨 일가의 선행. 신안 주씨(新安朱氏) 가문은 17세기 전반부터 시흥 지역에 자리 잡았다. 과림동 주씨 가문의 주석범(朱錫範)[1815~1880], 주순원(朱順元)[1836~1895], 주인식(朱寅植)[1862~1945]과 주영식(朱英植)[1867~1952] 형제...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분가를 한 경우에 분가의 본가. 종가(宗家)는 대종가와 소종가로 구분한다. 대종가는 성씨의 시조로부터 장자로만 이어진다. 소종가는 대종가에서 중시조를 기점으로 파생된 종가로서 불천위(不遷位)[나라에 큰 공훈을 남기고 죽은 사람의 신주(神主)는 오대봉사(五代奉祀)가 지난 뒤에도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
경기도 시흥시에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삶의 고뇌를 해결하고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 종교(religion)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고대 라틴어 단어인 렐리게레(religere)[조심하다, 주의하다]와 렐리가레(religare)[함께 묶다]가 가능성 있는 어원들로 꼽힌다. 로마와 초기 그리스도교의 라틴 문헌에서 렐리기오(r...
-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매화동, 목감동을 거쳐 경기도 안양시와 광명시를 연결하던 지방도로 현재는 폐지된 도로. 경기도 안양시 안양동에서 시흥시를 거쳐 광명시 광명동을 잇는 도로로 1996년 지방도에서 폐지되어 일반 도로로 전환되었다. 시흥시 구간은 과림동, 매화동, 목감동 등을 경유하였다. 지방도397호선은 경기도에 속한 지방도로 300번대를 부여받...
-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과 부천시 심곡본동을 잇는 도로.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을 기점으로 하여 부천시 심곡본동까지 이어진 도로로, 시흥시 대야동을 남북 방향으로 지난다. 성주산과 봉매산 사이로 난 좁은 길로 호현로, 소사로, 범안로 등 부천과 시흥을 잇는 도로 중 가장 거리가 짧은 도로이다. 하우로는 예전부터 이 지역을 하우고개라고 불러온 데서 도로명...
-
경기도 시흥시 목감동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수도권본부에 소속된 지사. 한국도로공사는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1969년 2월 15일 한국도로공사법에 의해 설립되었다. 한국도로공사는 당시 자본금 500억 원으로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소재 대연각(大然閣) 임시 사옥에서 공사 업무를 시작하였다. 1973년 12월에는 신축 사옥을 준공해 경기도 성남시로 이전하였고, 197...
-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에 있는 한국미술협회 산하 시흥 지역 지부. 한국미술협회는 민족 미술의 향상 발전을 도모하고 미술가의 권익을 옹호하며 국제 교류와 미술가 상호 간의 협조를 목적으로 1961년 12월 18일 설립되었다. 1978년 2월 3일 문화공보부 장관으로부터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설립이 허가되었고, 현재 서울을 비롯하여 광역자치단체에 지회를 두고 있으며...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기타 공공 기관. 한국산업단지공단은 1964년 8월 12일 한국수출산업공단으로 발족한 뒤, 1996년 10월 정부의 5개 국가산업단지 관리공단 통폐합 결정에 따라 「산업 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이듬해 1월 10일 설립되었다. 2018년 현재 본부와 지역본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부에는...
-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 한홍석이 거주하였던 전통 가옥. 경기도 시흥시 금오로 327번길 22[과림동 635]에 있었던 전통 가옥으로 1945년 건립되어 2000년대 초까지 한홍석이 거주하였다. 한홍석 가옥이 있었던 과림동은 예전에 과일나무가 많아 목과동(木果洞)이라고 불렀으며 모갈마을이라고도 부른다. 경기도 건축 문화유산 조사 사업[1999~2003...
-
1907년부터 국권 회복을 위해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전개한 항일 무장 투쟁.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계기로 시흥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서부 지역의 의병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의병들은 일제의 탄압 기구인 순사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진회원(一進會員)을 위시한 친일파를 처단하였으며, 부자들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1909년까지 소규모 유격전 형태로 활동...
-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에 있었던 신풍부원군 장유의 가옥. 해장정사(海莊精舍)는 장유(張維)가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되어 파직되자 고향인 안산[지금의 시흥시 장곡동 산68]으로 낙향하여 12년간 살던 집이다. 이곳에서 외아들 장선징(張善徵)과 인선왕후(仁宣王后)를 낳았다. 이 곳에서 장유는 손수 농사를 짓고 독서를 하고 시를...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주민들이 즐겨 먹던 전통적인 음식. 오이도 굴회덮밥은 굴에 신선한 채소와 참기름을 곁들여 만드는 독특한 요리로서 경기도 시흥 지역의 향토 음식으로 보급되었다고 한다. 1995년 이승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송광자(宋光子)[1943년생]가 22세 때 오이도 토박이인 박길웅(朴吉雄)[1943년생]과 결혼하여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시어머니로부터 배워 굴...
-
1945년 광복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역사. 1945년 광복 이래 경기도 시흥 지역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영광을 함께하였다. 분단과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의 성취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고통과 기쁨을 직접 겪었다. 1973년 부천군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된 이후 시흥군의 거듭되는 분리를 통해 인접 도시들이 만들어졌으며, 1989년 시로 승격한 시흥...
-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황등천면은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 과림동, 무지내동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황등천면은 조선 후기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인천도호부 방리조(坊里條)」에 “인천부에서 동남으로 30리[약 12㎞]에 위치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18세기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