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
경기도 시흥시에서 구전이나 설화로 전해 내려오는 오이도에 관한 이야기. 오이도(烏耳島)의 명칭은 흔히 섬의 모양이 '까마귀 귀'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1448년(세종 30) 『세종실록』에 기록된 '오질이도(吾叱耳島)'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오이도라는 명칭이 처음 출현한 것은 1760년(영조 36) 편찬된 『여지도서』이다....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소래산 바위에 얽힌 전설. 소래산의 바위가 저절로 굴러 서편 옆 봉우리로 자리를 옮겨졌다는 이야기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을 예견한 것이라고 한다. 「전쟁을 예견한 소래산 바위」는 2004년 시흥시와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에서 편찬한 『시흥 소래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수록되어 있다. 소래산에 관련된 기록...
-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1797년 8월 행차[행행]에서 시흥 지역의 경치를 노래하고 인재를 찾는 심경을 읊은 시. 「풍기렵렵해문회(風旂獵獵海門廻)」는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지은 칠언시(七言詩)로 “바람 깃발 휘날리며 해문을 돌아오니”라는 첫 구절로 시작된다. 정조의 이름은 산(祘)이고,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이다. 할아버지는 영조이고, 아버...
-
1493년(성종 24)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을 포함하여 경기도 수군의 폐단에 대하여 문신 황계옥이 올린 상소문. 차자(箚子)란 간단한 상소문을 뜻한다. 「황계옥 차자」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사헌부 정4품 벼슬인 장령(掌令) 황계옥(黃啓沃)이 1493년(성종 24) 지금의 시흥 지역을 포함한 경기 지면(地面) 수군의 폐단에 대하여 올린 것이다. 황계옥은 장령의 직책으로...
-
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 가운데 경기도 시흥시의 옛 모습을 포함한 지도. 우리나라 지방 지도 가운데 1872년 당시 인천부(仁川府)와 안산군(安山郡)에 속했던 지역을 포함하는 지도로 그림과 같은 형태로 제작된 회화식 채색 지도이다. 지도의 오른쪽이 동쪽이고 왼쪽이 서쪽이다. 주요 산과 물줄기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각 읍마다 1장으로 된 경기도 각 군현의 지도와 영종도...
-
경기도 시흥시에 해당하는 지역의 세금 징수 대상을 새롭게 정리하여 1894년에 편찬한 자료. 『경기 각 읍 신정사례(京畿各邑新定事例)』는 1894년(고종 31) 경기도 33개 읍과 3개 진(鎭)의 재정 운영 지침을 모아 만든 책이다. 갑오개혁기에 어윤중(魚允中)이 주도하여 1894년에 작성하였으며, 개항기 국가 재무를 총괄하였던 탁지아문(度支衙門)에서 편찬한...
-
1871년에 편찬된 『경기읍지』에서 현재 경기도 시흥시의 지리적 사항을 기술한 읍지. 『경기읍지(京畿邑誌)』는 당시 경기도에 있던 35개 군현의 읍지를 기록한 경기도 도지(道誌)이다. 고종 대에 수집 가능한 지방 자료를 집대성하여 전국의 도지를 편찬하였는데, 이 읍지는 고종 대 첫 번째로 편찬된 경기도 도지이다. 경기 각 군현의 읍지를 6개의 책으로 합해서 제...
-
시흥시가 포함되는 경기도 지역의 읍지와 사례를 모아 1895년(고종 32)에 편찬한 경기도 지리지. 『기전 읍지』는 1895년(고종 32) 경기도에 소재한 11개 고을의 읍지를 합해 엮은 경기도 도지(京畿道道誌)이다. 당시 경기도 고을 38개 가운데 약 1/3에 해당하는 읍지만 실려 있으며, 각 읍지의 형식은 지방별로 서로 다르다. ‘기(畿)’란 중국에서 도성...
-
16세기에 제작된 목판본 『동국지도』에서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는 지도. 『동국지도(東國地圖)』는 16세기 중반에 목판본으로 제작되었으며, 『동람도(東覽圖)』와 유사한 방식으로 그려져 있으나 각 군현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당시에 간행본(刊行本)으로 제작된 도별 지도 중 가장 상세한 지도이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으로 보아 국가가 주도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국팔로분지도』에 포함된 경기도 군현 지도. 『동국팔로분지도(東國八路分地圖)』는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 각 도를 각각 한 장에 그려 넣은 지도로 각 군현의 이름을 비롯하여 하위 행정구역의 명칭·산·하천 등을 표기해 놓았다. 한 폭의 지도에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다 보니 지도의 정확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동국팔로분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
176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실상을 기록한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는 1757년(영조 33)~1765년(영조 41) 전국 각 군현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엮은 전국 지리지이다. 조선 후기 각 지방의 지리적 특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조선 후기 전국의 각 군현에서 편찬한 읍지를 묶어서 편차(編次)한 것으로 별도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1...
-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고 있는 지도. 『지도(地圖)』는 소매에 넣을 수 있는 수진본(袖珍本)으로 『여지도첩(輿地圖帖)』에 수록된 채색 필사본 지도이다. 지도 뒷면에는 국가의 기일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기록이 철종[재위 1849~1863]까지 수록된 것으로 보아, 『지도』는 고종[재위 1863~1907] 대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에서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는 지도. 『해동지도』는 1750년대 영조 대에 홍문관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의 회화식 지도이다. 각 군현 지도에 주기(註記)를 첨부하였으며, 국가 차원에서 제작하여 정책적 목적에 사용되었다. 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제작되었으며, 조선 전도를 비롯하여 도별도, 군현 지도, 세계 지도 등을 포함하고...
-
19세기 후반 우리나라를 그린 『해좌승람』에서 경기도 시흥시가 포함된 지도. 『해좌승람(海左勝覽)』은 조선 팔도를 그린 지도로 각 군현의 명칭과 산 이름 중심으로 간략하게 제작되었다. 『해좌승람』 「경기도」는 조선 팔도를 그린 채색 필사본 지도첩의 경기도 부분으로 크기는 가로 28.8㎝, 세로 30.6㎝이다. 2018년 현재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
소설가 윤후명이 경기도 시흥 지역을 운행하던 수인선 협궤열차를 소재로 1992년 발표한 장편소설. 『협궤열차』는 소설가 윤후명이 협궤열차가 정차하는 지역에 거주하게 된 ‘나’를 주인공으로 쓴 장편소설이다.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던 군자역과 달월역 등 옛 수인선 역을 비롯해 소래철교 부근 바닷가 풍경, 협궤열차를 타는 어민들의 모습, 시흥 군자봉 성황제 등을 배경으로 삶과...
-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1797년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지금의 시흥을 경유해 화성 현륭원으로 간 행행. 정조는 억울하게 죽은 부친 사도세자의 추존(追尊)을 위해 노력하였다. 1789년(정조 13) 사도세자 묘를 수원으로 이장해 현륭원(顯隆園)을 만들고 화성(華城)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11년간 총 13번의 원행(園幸)을 하였는데, 이 중 10차 원행인...
-
1919년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경기도 시흥 지역으로 전해져, 1919년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까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 통치(武斷政治)를 반대하며 하부 통치 기구인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소래산·대부도의 대몽 항쟁(對蒙抗爭)과 하우명(...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남한과 북한의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발발하였으나, 경기도 시흥 지역은 북한군의 주 공격 방향에서 비켜나 있어서 1950년 7월 초 북한군에게 점령되었다. 1950년 9월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시흥...
-
1970년대까지 한적한 교외 지역이었던 시흥은 1977년 서울의 철거민들이 복음자리마을을 조성하면서 철거 이주민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는 한편 정부의 도시 빈민 주거 정책 부재를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복음자리마을 옆에 들어서기 시작한 신천동 83번지 무허가 판자촌은 1993년 화재 사건을 계기로 도시 개발에 따르는 철거 투쟁이라는 그림자를 분명하게 드...
-
경기도 시흥시의 해안이 마주하는 서해의 만. 경기만은 한반도의 서해안에서 충청남도 태안반도와 황해남도 옹진반도 사이에 있는 거대한 만(灣)이다. 경기만에는 남양만·아산만·해주만 등 경기만의 2차적인 여러 만입부(灣入部)가 발달해 있어 해안선의 드나듦이 복잡하다. 경기만에는 영종도, 강화도, 대부도, 제부도, 덕적도 등 크고 작은 130여 개의 섬이 자리하고 있...
-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의 지명. 고잔(古棧)은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의 지명으로 옛날 배가 닿았던 곳을 말한다. 월곶동은 조선 후기 호구 기록 문서인 『호구총수(戶口總數)』에도 ‘월곶리(月串里)’라는 명칭으로 나올 만큼 연원이 오래된 지명이다. 고잔은 인근 사람들이 인천을 왕래할 때는 반드시 그곳에서 배를 타고 다녔을 만큼 교통의 요충지였다. 상골 서쪽...
-
경기도 시흥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과학, 응용과학, 공학 및 생산기술의 총칭. 경기도 시흥시는 농업과 수산업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공업 도시로 바뀌었다. 1990년대 중반 정부에서는 서울에 밀집된 공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려 시화국가산업단지 등을 조성하였다. 이에 시흥시는 공업 도시로 급성장하였다. 특히 조립,...
-
경기도 시흥시에서 사람이나 물자의 이동 및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연관 시설. 교통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회·경제 활동의 하나이며 사람과 화물을 운반하기 위해 장소 간 거리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 위해서는 도로와 교통수단 및 연관 시설의 구비도 중요하다. 교통은 육상 교통, 수상 교통, 항공 교통으로 나뉘며 육상 교통은 자동차 교통·철도 교통 등으로 세분...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과 목감동을 거쳐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안산시를 연결하는 국도. 국도42호선은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강원도 동해시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국도이다. 이 중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서창동에서 수원역까지의 구간은 수인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흥시의 신천동, 은행동, 매화동, 목감동을 지나며 신천동 구간은 국도39호선과 중복된다. 국도42호...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과 월곶동을 거쳐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안산시를 연결하는 국도. 국도77호선은 부산광역시 중구에서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까지 연결되는 도로이다. 한반도의 남해안과 서해안을 따라 ‘ㄴ’ 자로 이어지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국도이다. 본래는 부산~인천선이라고 하여 인천광역시 동구를 종점으로 하였으나, 2008년 말 자유로가 이 도로에 포함되면서 대...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과 인천광역시 남동구 고잔동을 잇는 다리. 군자 대교는 제3경인고속화도로 정왕 나들목[IC]과 고잔요금소 사이에 있는 교량으로,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과 인천광역시 남동구 고잔동을 연결한다. 군자 대교는 지금의 배곧 신도시가 입지한 군자 매립지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군자 대교는 제3경인고속화도로에 속하며, 시흥시 정왕동...
-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과 거모동을 잇는 도로.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과 거모동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마유로·황고개로와 교차하며 영동고속도로와의 접근성이 좋아 영동고속도로 정체 시 우회 도로로 활용된다. 군자로는 행정동인 군자동을 지나는 도로라는 의미로 군자로라는 도로명이 부여되었다. 군자동은 인근의 군자봉에서 명칭을 따온 것이다. 군자로의 기...
-
경기도 시흥시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에서 1919년 3월에 일어난 독립 만세운동. 군자면 3.1운동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里)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를 반대하며 군자면사무소와 거모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펼친 항일 독립 만세운동으로, 시흥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 광복운동이다. 시흥군 군자면은...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장현동·능곡동에 걸쳐 있는 산. 군자봉에는 ‘세 자 세 치가 깎인’ 전설이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유씨 집안의 여종 하나가 주인으로부터 벌을 받아 숨을 거두었다. 죽은 여종의 아들이 금강산으로 들어가 스님에게 풍수를 배우다가 스님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풍수에 조예가 깊은 스님이 마을에 왔다는 소식에 유씨 집안에서 그를 불러 가문의...
-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을 비롯한 주변 일대의 천일염을 생산하였던 염전. 전통적인 소금 생산 방법은 가마솥에 바닷물을 끓여 얻는 것이었는데 이 제조법은 높은 생산비 때문에 효과적이지 못하였다. 값싼 중국산 소금이 수입되다가 천일염이 생산된 것은 1907년 인천에 주안염전이 조성된 이후이다. 일제는 이를 더욱 확대하고자 염전 조성에 유리한 경기만을 주목하여, 1925년 시흥...
-
1920년대부터 경기도 시흥 지역을 상징했던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의 흥망성쇠.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경기도 시흥의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은 양질의 소금 산지로 각광을 받았다. 광복 후에도 전국 소금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은 시흥 지역을 상징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천일염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도시의 팽창 욕구가 커지면서 결국 시흥 지역의 염전은...
-
‘소래(蘇萊)’라는 명칭은 인천광역시, 부천시, 시흥시에서 모두 사용되고 있지만 시흥시에는 소래산을 비롯해 소래염전, 소래산 편사 놀이, 소래문학회, 소래초등학교 등 시흥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속에 ‘소래’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소래’에 대한 지역민의 애정과 애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행정구역상 소래산은 현재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과 시흥시 대야동...
-
경기도 시흥시 소래철교가 생기기 전 시흥에서 인천을 오가는 배를 타고 내리던 나루. 노렴나루는 지금의 소래포구를 이르는 표현으로 시흥 주민들이 인천을 오갈 때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던 나루였다. 본래의 노렴나루는 수인선 달월역이 생기기 이전 월곶동에서 소래역으로 가기 위해 시흥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던 나루이다. 배가 닿는 소래포구 인근에 위치한 노렴마을의 이...
-
고려시대 시흥 지역에서 이루어진 몽고군과의 전쟁. 대몽 항쟁(對蒙抗爭)은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고종 46)까지 9차례에 걸친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 촉발된 전쟁으로 항몽 전쟁, 여몽 전쟁 등으로도 불리며 한반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전쟁이다. 고려시대 대몽 항쟁 중 시흥 지역과 관련이 있는 시기는 몽골군의 6차 침입기인 1256년(고종 43)이고,...
-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에 있는 전통 시장. 도일시장은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일원에 있지만 행정구역상 시흥시 군자동에 속한다. 시흥시청에서 남쪽 방향으로 약 5㎞ 지점에 있다. 시장 내에 군자동행정복지센터가 있으며, 안산시의 행정구역 경계와 접하고 있다. 조선시대 장시(場市)[보통 5일마다 열리던 사설 시장]는 보부상이라는 행상이 있어서 농산물, 수공업 제품, 수...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과 계수동을 남북으로 있는 도로. 마유로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국가산업단지 남단을 시점으로 하여 거모동, 월곶동, 장곡동, 포동, 하중동, 매화동, 안현동을 거쳐 계수동 대야 교차로를 종점으로 하는 도로이다. 이 도로는 시흥시와 인근 부천시와 안양시를 잇는 주요 도로이기도 하다. 시화멀티테크노밸리, 시화국가산업단지, 정왕동, 시흥 월동...
-
오이도는 시흥시의 서남쪽 끝에 있는 섬이다. 각종 어패류가 많이 산출되는 관광지이자 신석기시대 이래 선사 유적이 여러 차례 발굴되어 시흥 오이도 유적은 사적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오이도는 원래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서쪽 지역으로 육지에서 10리[4㎞] 정도 떨어진 섬이었다. 그러나 1922년 일제가 염전 지대를 조성하면서 안산시와 이곳 사이로 제방이 놓이면서 육지화하...
-
인주 이씨, 안산 김씨를 포함한 고려시대 시흥 지방의 지배 세력. 고려시대에는 신라와 달리 이성 귀족(異姓貴族)들에 의한 정치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은 호족이었던 시절의 출신지를 본관(本貫)으로 칭하였고, 본관은 그들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자연히 문벌(門閥)이 중시되었고 호적마저도 평민과는 별도로 작성되었다. 문벌을 중시했다는 특징을 고려하여 고려의...
-
경기도 시흥시 죽율동 출신의 기업가. 본관은 남평(南平). 문순모(文順模)[1911~1983]는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지금의 시흥시 죽율동 393]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문창영(文昌永)이고 어머니는 강달산(姜達山)이다.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문순모는 소래공립보통학교[지금의 소래초등학교]를 거쳐 1931년 서울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전매국 주...
-
경기도 시흥시에서 행해지는 일상의 생활문화. 민속이란 일상의 삶에서 영위되는 생활문화를 말한다. 의례와 신앙, 생업 및 사회생활, 놀이 및 여가 생활, 의식주 생활, 민간요법 등에서 보여지는 문화양식이 주된 대상이 된다. 시흥 지역은 바닷가를 접하고 있어 서해안의 어촌 민속과 내륙의 농촌 민속이 공존한다. 즉, 농업의 절기 및 생업에 따른 민속과 서해안의 어장 생태와 관...
-
경기도 시흥 지역 바닷가에서 고기잡이와 갯벌 작업 때 부르는 노래. 시흥 지역에서의 바다소리는 크게 어로(漁撈) 작업할 때의 소리와 갯벌에서 조개를 캐면서 하던 소리로 구분한다. 어로 작업을 하면서 부르던 민요는 노동할 때의 노동요와 풍어를 비는 의식요, 그리고 어로 전후에 즐기던 민요를 말한다. 또 갯벌에서의 소리는 주로 아낙들이 조개잡이를 하면서 부르던 소...
-
시흥시 북쪽의 소래산과 서남쪽의 군자봉 사이로 흐르는 은행천과 보통천이 서해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 두 하천에서 운반되어온 퇴적물이 매화동, 은행동, 미산동, 도창동, 하상동, 하중동 일대에 약 150만 평[약 5㎢]의 커다란 벌판을 형성해 놓았다. 조선시대에 간석지[개펄]였던 이곳에 서해의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호조방죽을 축조하여 농경지로 활용하였는데, 그 들판이...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던 옛 장터. 뱀내장은 조선 후기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시장으로, 매월 1일과 6일에 개장하였다. 축산물 거래가 대부분인 우시장의 성격이 강했으며, 농산물·수산물·직물 등도 거래하였다. 특히 수원장, 소사장과 함께 경기도의 대표적인 우시장이었다. 가장 많은 소가 들어온 것은 200~300마리 정도의 소가 들어온 때...
-
경기도 시흥시 마산에서 발원하여 흥부저수지로 유입하는 지방 하천. 보통천(普通川)은 시흥시 관내를 흐르는 하천 중 가장 큰 하천으로, 한강 서해 수계의 지방 하천이다. 조남동 마산 아래 애무골에서 발원하여 물왕 저수지[흥부저수지]를 거쳐 호조벌 들판을 거쳐 갯골에서 바다와 만난다. 보통천이 흐르는 미산동과 포동 주위로 탁 트인 간척 평야가 있는데 이...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횃불과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 통신 제도의 기록과 흔적. 봉(烽)은 횃불, 수(燧)는 연기를 말한다. 봉수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전통 시대에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제도이다. 주로 적의 침입이나 내란 혹은 군사적인 소요를 중앙에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록상에 나타난 군사적인 목적의 봉수는 12~13세...
-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북부 지역을 1914년 4월부터 1973년 6월까지 관할하였던 옛 행정구역. 부천군(富川郡)은 경기도 중서부 지역에 있었으며, 서울과 인천 지역 사이에 있는 부평평야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부천군 지역인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은 부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시흥시의 교통 중심지로 높이 299.4m의 소래산이 있다. 소래산 산림욕장을 중심으로...
-
경기도 시흥시를 지나는 고속도로와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교차점. 2018년 현재 경기도 시흥시를 지나는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평택파주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평택시흥고속도로가 있다. 각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는 월곶 분기점, 안현 분기점, 도리 분기점, 조남 분기점, 군자 분기점, 동시흥 분기점 등 6곳이 있다...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전통 시장. 삼미시장은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개설된 역사가 비교적 짧은 시장이다. 삼미시장은 600m 이내에 대형 마트가 있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상가 주민들의 고객 유치 노력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특히 삼미시장의 족발 가게인 '거창왕족발'이 경기도가 지정한 전통 시장 명품 점포 8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되...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과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동을 잇는 간선도로. 서해안로는 시화국가산업단지 내 대부도입구사거리를 기점으로 하여 경기도 부천시를 거쳐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이르며 개봉동 개봉철도 고가차도를 종점으로 한다. 시흥시에서는 정왕동, 월곶동, 신현동, 신천동, 대야동을 지난다. 서해안로는 지리적으로 서해안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경기도 중서부에서 경기만에 접한 시흥시는 간석지[개펄]가 발달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곳이다. 도시의 서쪽 해안가를 따라 아주 넓게 펼쳐진 간석지는 일찍부터 시흥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이었다. 시흥시는 한반도의 중서부를 가로지르는 광주산맥의 산줄기가 끝나는 곳에 자리하여 고도가 낮은 구릉성 산지가 발달해 있고, 기복이 심하지도...
-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인천과 안산에 속해 있었다. 조선 초기 인천에는 이(李)·공(貢)·하(河)·채(蔡)·전(全)·문(門)의 토착 성씨가 있었고, 내성(來姓)으로 박(朴)이 있었으며, 망성(亡姓)으로 최(崔)가 있었다. 안산에는 김(金)·안(安)·방(方)의 토착 성씨와 망성으로 임(林)이 있었다. 이들 토성 중 안산의 안산 김씨(安山金氏)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씨가 조선...
-
경기도 시흥 지역에 영향을 주었던 조선시대의 소금 수취 제도. 소금은 식생활의 필수품이자 국가의 중요한 세금원이었다. 국가에서는 일찍부터 소금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국가 재정으로 활용하려는 정책을 시도하였다. 이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시행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관련 언급이 있었지만, 정책으로 기록에 담기 시작한 때는 고려시대부터이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소...
-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과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을 잇는 다리. 소래 대교는 국도77호선[소래로]에 속한 다리로, 시흥시 월곶동 소래대교삼거리에서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 소래포구를 연결하며 영동고속도로와 평행하게 놓여 있다. 소래 대교는 인근에 있는 소래포구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교량 길이는 469.2m, 교량 폭은 20m이다. 교량의 높이는 7....
-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과 신천동,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에 걸쳐 있는 산. 소래산은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과 신천동에 걸쳐 있으며,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과 경계하고 있다. 시흥시 산세의 주맥은 소래산에서 발원한다. 조선시대 인천도호부의 진산(鎭山)이기도 했던 소래산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소래산은 부 동쪽 24리[9.4㎞] 되는...
-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과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을 잇는 철교. 소래철교는 시흥시 월곶동과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에 걸쳐 있는 수인선 철교로 1937년에 설치되었다. 원래 이름은 수인선 철도를 부설한 경동철도주식회사의 이름을 따서 ‘경동철교(京東鐵橋)'라 했는데, 흔히 ‘소래철교'라 불렸다. 수인선 폐선 이후 월곶과 소래포구를 잇는 인도교(人道橋)로 사용되고...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고등동 육교사거리를 기점으로 하여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를 거쳐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사거리를 종점으로 하는 도로. 수인로는 전 구간이 국도42호선에 속해 있으며, 시흥시 신천동에서는 국도39호선과 중복된다. 시흥시의 남동~북서쪽을 관통하는 도로로 목감동, 매화동, 은행동, 신천동을 지난다. 수인로는 경기도 수원시와 인천광역시를...
-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역에서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역까지 연결되는 수도권 전철 노선. 수인선은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오이도역을 기점으로 하고,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역을 종점으로 하는 수도권 전철 노선이다. 경기도 시흥시에는 오이도역, 달월역, 월곶역이 소재한다. 1996년 운행을 중단한 수인선 협궤철도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현재는 인천~시흥 구간을 운행하고 있지...
-
경기도 시흥 지역을 통과하는 수원~인천 간 수인선 협궤열차 부설을 위해 1936년 6월부터 1937년 7월까지 1년여 동안 진행된 공사. 수인선(水仁線)은 1937년부터 1995년까지 58년간 수원~인천 간을 운행하던 협궤철도이다. 수인선은 1935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허가를 받아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朝鮮京東鐵道株式會社)가 부설하였다. 수인선 시흥 구간...
-
경기도 수원시에서 안산시·시흥시를 지나 인천광역시까지 오가던 협궤 노선. 수인선 협궤철도는 1937년 개통되어 1995년까지 운행된 협궤철도이다. 수인선 협궤철도는 수원시와 인천광역시를 잇는 철도라는 의미로 수인선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고, 보통 열차보다 좁은 철도 노선이라 협궤철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인선 협궤철도는 40㎞/h 전후의 속...
-
경기도 시흥 시민들이 정치·경제·사회 등 각종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펼치는 각종 활동. 시민운동은 시민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대한 활동을 하는 정치 참여의 형태를 말하며 시민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전제로 한다. 주로 시민 단체를 만들거나 가입하여 활동하는 형태로 참여하게 된다. 인권, 환경, 평화, 정치 개혁, 행정 감시, 제도 개선 등이 주된 내용이며 방...
-
경기도 시흥시에서 선정한 경관이 아름다운 아홉 곳의 명소. 시흥 9경은 시흥시를 대표하는 섬, 산, 공원, 저수지 등 9개의 아름다운 경관을 전국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선정한 명소를 말한다. 제1경은 오이도낙조(烏耳島落照)[오이도에서 바라보는 낙조]이다. 오이도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으로, 원래는 섬이었으나 매립하여 육지와 연결되었다. 2005년 이후...
-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지리적으로 조선시대 인천부(仁川府)와 안산군(安山郡)에 속해 있었던 반면, 조선시대의 시흥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일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다. ‘시흥’ 하면 떠오르는 곳이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이나 시흥행궁(始興行宮), 시흥사거리를 떠올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다가 1914년 안산군에 속해 있던 군자면·수암면 지역이 시흥군에 편입되고,...
-
경기도 시흥시는 자연과 도시 문화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곳이다. 1989년 시흥군에서 시흥시로 승격된 이후 광명시, 안양시, 안산시, 군포시, 부천시, 인천광역시 등 주변 도시의 중심에서 나름의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해 오고 있다. 시흥시는 포동, 월곶동, 정왕동 오이도까지 이어지는 서해의 바다 풍경과 갯벌 습지가 생태학적 보고로 알려져 있...
-
1895년부터 1988년까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영등포구·관악구·동작구·구로구와 경기도 광명시·안양시 일부를 관할하였던 경기도의 행정구역. 시흥군(始興郡)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군청을 두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를 중심으로 영등포구[양화동·여의도동 제외], 관악구[남현동 제외], 동작구 일부[신대방동·상도동], 구로구 동부[안양천 동쪽]와 경기도 광명시...
-
경기도 시흥시에서의 인간 생존에 필요한 음식 문화와 관련된 일. 시흥시의 일상 음식은 주식(主食)과 부식(副食), 떡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주식으로는 칼국수, 밤밥, 무밥, 보리밥, 콩국수, 호박 풀떼기, 콩밥, 콩나물밥, 김치밥, 수제비, 볶음밥, 굴밥, 비빔밥 등이 있다. 부식에는 나물류, 육류, 생선류, 김치류, 젓갈류, 장류(醬類), 양념류, 국류,...
-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신현동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신고개면은 신현면의 다른 이름으로 신고개면의 '고개(古介)'는 우리 말인 '고개'를 소리나는 대로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이고, 신현면의 '현(峴)'은 '고개'의 뜻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따라서 신고개면과 신현면은 같은 지명을 의미한다. 신고개라는 지명은 현재의 동 이름인 ‘신현’의 관련 기록을 통해...
-
경기도 시흥시 금이동에서 출생한 시흥 지역 최초의 운수업자.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경기도 시흥시 도리재길 23-10[금이동 462]에서 출생하였다. 신현순(申鉉舜)[1895~1969]은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신철균(申哲均)의 2남이다. 신현순은 근대 문물에 일찍이 눈길을 돌려 1928년 포드 8인승 1대를 구입한 데 이어 1930년 10인승 2대의 차량으로...
-
조선시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물살을 조정하여 물고기를 잡도록 한 어로 도구 혹은 그것이 설치된 장소. 어량(魚梁, 漁梁)은 물이 흐르는 곳에 물살을 제한하여 그곳에 함정 어구(漁具)를 놓아 고기를 잡도록 한 곳을 일컫는다. 어량은 어구를 설치한 모양이 교량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성종 때부터는 어량보다는 어전(漁箭)이라는 명칭이 실록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
-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 정부에서 징수한 어세·염세·선세를 통칭하는 용어. 조선시대 정부는 토지와 백성뿐 아니라 어장(漁場)과 염장(鹽場), 선박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어세(漁稅), 염세(鹽稅), 선세(船稅)이다. 어염선세(漁鹽船稅)는 『경국대전』에서 처음으로 법제화되어 조선 후기까지 변화하며 유지되었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 해당...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 설치한 가마 모양의 솥. 염분(鹽盆)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굽기 위해 설치한 소금가마[鹽釜]를 말한다. 또한 염분은 염전(鹽田)이나 소금 제조량[鹽製造]의 한 단위, 다른 뜻으로는 염분에서 소금을 징수하는 권익을 가리키기도 한다. 소금은 식료품의 하나로 인간의 생리 작용에서 필수적인 물질이며 대체 식품이...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과거 전통 시대에 소금을 생산하던 장소. 소금은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과거에도 사람들의 생활 필수품이었다. 그 소금을 생산하던 곳을 옛날에는 염소(鹽所)라고 하였다. 전통 시대에 소금은 그 생산과 유통을 통제할 때 생기는 이득이 국가 재정에 큰 기여를 해왔기 때문에 국가는 일찍부터 소금의 생산과 조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중국에서는 이미 기원...
-
경기도 시흥시에서 바닷물을 이용하여 소금을 만들기 위해 논처럼 조성한 곳.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염전은 바닷물을 끌어들이기 쉬운 해안가에서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소금밭 또는 염밭이라고도 불리는 염전에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가장 널리 이용된 것은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 등을 이용하여 증발시킴으로써 소금을 만드는 천일염전(天日鹽田)이다. 경기만에 접해...
-
경기도 시흥시에서 연속 촬영한 내용을 필름에 담아 영상으로 보여주는 예술과 관련된 제반 활동. 1989년 시흥시로 승격되고 난 뒤에도 시흥시의 생활권역은 여전히 다른 인접 도시와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화 상영과 관련된 인프라의 조성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인 도시 개발로 점차 주택 지구와 상업 지구가 늘어나자 영화 상영에 관련된 인프라...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공원. 옥구공원은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일대에 시흥시가 1999년부터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2000년에 면적 34만 5675㎡의 부지에 자연 친화적 공원으로 조성하여 개원하였다. 산 정상의 낙조대에서는 인천 앞바다와 시화방조제·대부도 등이 한눈에 들어오며,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옥구공원은 자연 생태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옥구공원에 있는 정자. 옥구정은 옥구공원에 있는 높이 95m의 작은 산 정상에 있는 정자이다. 옥구정에 오르면 오이도를 비롯하여 인천의 송도와 안산의 시화방조제 및 대부도까지 볼 수 있다. 또한 옥구정에서 바라보는 만월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워 시흥 9경의 하나로 꼽힌다. 2000년 12월 옥구공원이 조성되면서 옥구정도 함께 건립되었다. 옥...
-
경기도 시흥시 관내 월곶 앞바다의 어업권과 어획물 관리 및 집산을 위한 어업인 단체. 1997년 어민들이 결집하여 구성되었고, 2001년 시흥시청의 인가와 옹진수산업협동조합[옹진수협]의 인증을 받아 월곶어촌계가 설립되었다. 다양한 어선으로 여러 가지 어물을 잡았지만 인근 어촌계에 비하면 규모가 크지 않았고, 1990년대 후반부터 규모가 커졌다. 택지 개발이 진행되면서 2...
-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월곶포구를 지나는 도로.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월곶포구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도로로, 소래로와 만나는 소래대교삼거리를 기점으로 하여 월곶종합어시장이 끝나는 지점을 종점으로 한다. 월곶종합어시장과 월곶포구, 시흥우체국 월곶출장소 등을 지나며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도로로 조망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월곶해안로는 월곶포구의 해안가를...
-
경기도 시흥 지역의 의복과 관련된 생활문화. 시흥 지역의 복식에는 남녀의 평상복(平常服)과 노동복(勞動服), 의례복(儀禮服) 등이 있다. 남자의 평상복은 여름과 겨울로 구분되는데, 여름에는 고의적삼[여름에 입는 홑바지와 저고리]을 입거나 외출 시 모시로 된 조끼와 두루마기를 입는다. 겨울에는 명주나 무명 옷감으로 만든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를 입고 토시...
-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신현동 지역 일대를 1413년부터 1460년까지 관할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조선 초기 인주(仁州)로 불리던 인천광역시는 1413년(태종 13) 고려 왕실의 잔재 청산과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중앙집권 강화를 위하여 경기도 인천군(仁川郡)으로 강등, 축소되었다. 당시 경원부(慶源府)의 옛 이름인 인주의 '인(仁)' 자와 주·부·군·현에 '산(山)'이나 '천(川...
-
1895년 갑오개혁 이후 광복 이전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을 관할하였던 행정구역. 인천부(仁川府)는 시흥군을 비롯하여 부평군, 김포군, 양천군, 안산군, 과천군, 수원군, 남양군, 강화군, 교동군, 통진군, 인천군 등 12개 군을 관할하였다. 관찰부(觀察府)는 제물포에 두었다. 인천부에는 관찰사(觀察使) 1인, 참서관(參書官) 1인, 주사(主事) 15인, 경무관(警務官)...
-
경기도 시흥시 미산동에 있는 창녕 성씨 문효공파 재실. 인현재(仁峴齋)는 창녕 성씨(昌寧成氏) 문효공파(文孝公派)의 재실, 문효공 성사달(成士達)[?~1380]의 현손인 성희철(成希哲)의 묘소 좌측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인현’이라는 명칭은 원래 이곳이 조선시대 인천부 신현면 지역이었기에 인천의 ‘인(仁)' 자와 신현의 ‘현(峴)' 자를 취한 것이다. 성사...
-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역사. 일제강점기 시흥은 서울 남서쪽 농촌 지역에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역이 변화하였고, 면 중심의 식민지 행정 통제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는 시흥의 주민들도 적극 만세 시위를 벌여 독립의 희망을 표출하였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가 계속되면서 70%가 지역 토박이인 시흥...
-
조선 선조 때 경기도 시흥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일본의 침략 전쟁.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은 1차의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의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를 포함하여 말한다...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장례를 치른 후 무당을 불러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굿. 자리걷이를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망자(亡者)가 죽을 때 깔고 있던 자리를 걷어낸다는 뜻이다. 옛날 장판이 없을 때는 돗자리를 방에 깔아 놓고 생활하였다. 환자가 투병 생활을 하면서 그곳에 누워 있다가 죽으면 장례를 치른 직후 그 자리를 걷어내고 망자의 넋이 천상에 이르도록...
-
경기도 시흥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후기의 수리·관계 시설. 17세기 조선 정부의 당면 과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파괴된 농촌을 복구하는 것이었다. 이에 농지 개간과 수리 시설의 확충을 통해 농업 생산력을 증진시키려 하였다. 황폐한 진전(陳田)[전안(田案)에는 경지로 되어 있으나 오랫동안 경작하지 아니한 토지]을 개간하고, 수리 시설을 복구하여 저습지(低濕地)[땅이...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시흥시의 역사.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안산군(安山郡)과 인천부(仁川府)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군자·수암권은 안산군의 잉화면(仍火面), 초산면(草山面), 마유면(馬遊面), 대월면(大月面)에 해당한다. 소래권은 인천부의 신현면(新峴面), 전반면(田反面), 황등천면(黃等川面)에 해당한다. 시흥 지역은 조선시대에...
-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원에 있었던 조선시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거나 공적인 일에 마필을 공급하던 곳. 중림역(重林驛)은 조선시대 중림역도(重林驛道)에 딸린 7개소 속역(屬驛)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의 역원(驛院) 제도는 고려시대의 것을 이어 받아 발전시킨 것으로 태종~세종 연간에 걸쳐 전국적인 규모의 역로망을 구축하였다. 경기도에는 대로(大...
-
경기도 시흥시에서 철로 위에 차량을 운전하여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 2018년 현재 시흥시를 운행하는 철도는 모두 전철로 운행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 소속으로 수도권 광역 철도에 포함되는 안산선과 수인선을 비롯하여 2018년 6월 개통한 소사원시선이 있다. 시흥 지역에 철도가 처음으로 운행한 시기는 1937년으로 당시 운행했던 수인선 협궤철도는 일제강점기...
-
1834년(순조 34) 김정호가 제작한 경기도 시흥시 일대가 포함된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축척이 동일한 고지도 가운데 가장 정밀하게 제작되었으며 이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기초가 된 채색 필사본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전국의 지도를 제작하던 과정에서 만들어 낸 중간 단계의 결과물로서 현재 전해지는 것은 후대의 필사본이다. 『청구도』...
-
경기도 시흥시에서 주로 생산되는 우수한 상품이나 물품. 시흥시는 농촌과 어촌이 고루 분포되어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시흥 지역은 농업의 발달 과정에서 보면, 북방의 밭농사 위주의 경작과 남방의 논농사 위주의 경작이 복합되어 있는 특징을 보이지만 밭농사가 좀 더 우세한 편이다. 밭농사에서 소출되는 농산물,...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하우명을 기리기 위해 집 앞에 세운 붉은 문. 정려(旌閭)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알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旌閣)을 세워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정려는 ‘정문(旌門)’, ‘정표(旌表)’라고도 한다. 정려는 건물의 여부나 대상에 따라 세분된다. 건물 없이 문을 세...
-
경기도 시흥시 목감동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수도권본부에 소속된 지사. 한국도로공사는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1969년 2월 15일 한국도로공사법에 의해 설립되었다. 한국도로공사는 당시 자본금 500억 원으로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소재 대연각(大然閣) 임시 사옥에서 공사 업무를 시작하였다. 1973년 12월에는 신축 사옥을 준공해 경기도 성남시로 이전하였고, 197...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기타 공공 기관. 한국산업단지공단은 1964년 8월 12일 한국수출산업공단으로 발족한 뒤, 1996년 10월 정부의 5개 국가산업단지 관리공단 통폐합 결정에 따라 「산업 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이듬해 1월 10일 설립되었다. 2018년 현재 본부와 지역본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부에는...
-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인천지역본부에 소속된 지사. 한국전력공사의 최초 시작은 1898년 1월 세워진 한성전기회사이다. 1905년 6월에는 별도로 인천 거주 일본인을 중심으로 인천전기(주)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한성전기회사는 1915년 9월에 경성전기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8.15광복 후 1961년 공포된 한국전력주식회사법에 의거하여 한국...
-
1945년 광복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역사. 1945년 광복 이래 경기도 시흥 지역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영광을 함께하였다. 분단과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의 성취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고통과 기쁨을 직접 겪었다. 1973년 부천군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된 이후 시흥군의 거듭되는 분리를 통해 인접 도시들이 만들어졌으며, 1989년 시로 승격한 시흥...
-
경기도 시흥시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를 연결하여 쌓았던 방죽. 호조방죽(戶曹-)은 시흥시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를 이어 축조되었던 길이 약 720m의 인공 둑이다. 바다로서 개펄이었던 이곳에 조선 경종 원년인 1721년에 둑을 완공하여 농경지로 개간한 것이다. 이 둑은 과거 인천부와 안산군을 연결하는 교통로 구실을 하였으며, 국도39호선 구도로가 건...
-
경기도 시흥시의 보통천과 은행천을 끼고 형성된 평야 지대. 호조벌을 탄생시킨 것은 바다를 가로막은 제방인데 바로 호조방죽이다. 호조방죽은 시흥시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를 잇는 길이 약 720m의 인공 둑이다. 개펄이었던 이곳에 1721년(경종 1년) 둑을 완공하여 농경지로 개간하였다. 이 둑은 과거 인천과 안산을 연결하는 교통로 구실을 하였으며, 지금도...
-
경기도 시흥시의 보통천과 은행천을 끼고 형성된 평야 지대. 호조벌을 탄생시킨 것은 바다를 가로막은 제방인데 바로 호조방죽이다. 호조방죽은 시흥시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를 잇는 길이 약 720m의 인공 둑이다. 개펄이었던 이곳에 1721년(경종 1년) 둑을 완공하여 농경지로 개간하였다. 이 둑은 과거 인천과 안산을 연결하는 교통로 구실을 하였으며, 지금도...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과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을 잇는 도로. 호현로는 국도39호선으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소사삼거리에서 경인로와 접속, 남쪽 방향으로 내려와 시흥시 신천동 신천육교삼거리에서 수인로와 연결된다. 시흥시에서는 신천동과 대야동을 지난다. 호현로는 예전부터 시흥과 부천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 중 하나인 여우고개를 넘어가는 도로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