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1106
한자 民俗
영어공식명칭 Folklore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서 행해지는 일상의 생활문화.

[개설]

민속이란 일상의 삶에서 영위되는 생활문화를 말한다. 의례와 신앙, 생업 및 사회생활, 놀이 및 여가 생활, 의식주 생활, 민간요법 등에서 보여지는 문화양식이 주된 대상이 된다. 시흥 지역은 바닷가를 접하고 있어 서해안의 어촌 민속과 내륙의 농촌 민속이 공존한다. 즉, 농업의 절기 및 생업에 따른 민속과 서해안의 어장 생태와 관련된 민속이 혼재하고 있다.

[의례와 신앙]

시흥의 유교 의례는 제례(祭禮), 특히 작고한 기일에 지내는 기제사(忌祭祀), 시월 추수 후에 지내는 시제(時祭), 명절에 지내는 차례(茶禮) 등이 있다. 토박이 세거 성씨인 덕수 장씨(德水張氏) 장유(張維)의 종가, 청주 한씨(淸州韓氏) 문익공(文翼公) 종가, 진주 강씨(晉州姜氏) 강희맹(姜希孟) 종중에서는 불천위(不遷位)[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神位)] 제례를 지내고 있다.

시흥의 민간 신앙 주요 기도처로는 군자봉, 소래산 등지가 있으며 이들 산에 가뭄이 심할 때 인근 주민들이 와서 기우제를 지냈다. 시흥의 마을 제사에서 모셔지는 신격(神格)은 산신, 우물 고사에서 보이는 용왕, 군웅신, 서낭신, 장승, 김부 대왕(金傅大王)과 같은 인신 등이다. 특히 군자봉은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설화가 전해지는 유서 깊은 성황사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제(洞祭)의 경우 남자들만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과림동 부라위마을의 경우 부녀자들이 주관한다는 점에서 특이한 현상이다. 시흥의 자연 마을에서는 대부분 동제를 지내왔으며, 특히 시흥 군자봉 성황제포동 새우개 당제가 유명하다. 포동은 어촌의 풍어제 경향을 알 수 있다. 포동 새우개 당제의 또 하나 주목될 만한 것은 일제강점기의 「포동 새우개 당제 문서」가 남아 있어 당시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까지도 가늠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 유산이 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근래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동제가 점차 단절되는 추세가 보인다는 점이다. 집안을 거처로 삼는 가신(家神)과 마을 주산(主山)의 산신 등을 대상으로 집안의 안녕을 위해 지내는 집고사는 시흥 지역의 토박이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가을에 지내는 고사를 가을고사라고 하는데, 시흥에서는 가을 추수 후 10월 상달에 집고사를 많이 지낸다. 어촌에서는 물때에 맞추어 살막고사가 이루어졌다.

[생업]

시흥은 바닷가를 접하고 있어 서해안의 어촌 민속과 내륙의 농촌 민속이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농업의 절기 및 생업에 따른 민속과 서해안의 어장 생태와 관련된 민속이 혼재하고 있다. 농사와 관련된 민속으로 볍씨를 뿌린 후 좋은 날을 잡아 풍농(豐農)을 기원하는 못자리고사가 있다. 못자리고사는 생업을 기원하기 위한 고사의 일종이다. 재래식 농법에서는 못자리가 매우 중요하다. 벼를 파종하는 농가에서는 볍씨를 일주일 정도 물에 담아 놓았다가 싹을 틔운 후 못자리에 뿌린다. 못자리에서 새싹이 자라야 모내기를 할 수 있다. 가정의 모든 경제가 벼의 풍작에 달려 있으니, 벼농사에 의존하는 농가에서 파종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못자리고사는 볍씨를 뿌린 후 좋은 날을 잡아서 떡을 쪄 집 안에 놓고 고사를 지낸 다음, 논으로 가지고 가서 논둑에다 놓고 비손[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병이 낫거나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비는 일]을 하고, 조금씩 떼어서 논 여기저기에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서해안 어촌 민속의 사례로는 살막고사가 있다. 물때에 맞추어 그물을 쳐 놓고 풍어(豐漁)를 위해 살막에서 지내는 것으로, 고기가 많이 잡히게 해 달라고 비는 고사이다. 살막고사는 물때에 맞추어 지내는데, 대개는 그물을 맨 사람들이 서 맷 날이나 한 맷 날에 맞추어 지낸다. 살막은 어살[漁箭]을 쳐놓고 물고기가 걸리기를 기다리기 위해 지어 놓은 움막이다. 고사는 저녁에 살막에 상을 차리고 포, 막걸리, 떡시루, 숭어나 북어 등을 제물로 올린다. 서해안에는 갯벌에서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여 어살을 쳐놓고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 있다. 어구의 재료나 방법 등이 시대에 따라 변하긴 했으나, 갯벌이라는 공간에서 물때라는 시간에 맞춰서 작업을 하는 탓에 싸리나무 살에서부터 건강망, 중방그물에 이르기까지 고사가 이어졌다. 물이 나가고 세지기 시작하는 서 맷 날을 기해 고사를 많이 지냈으며 어장에 고기가 많이 들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것은 갯벌에 의지해 살아가는 어민들 공통의 신앙 체계이다.

[놀이]

놀이로는 2017년부터 '월미 농악'으로 불리는 '월미두레 풍물놀이'가 유명하다. 월미 농악물왕동 월미마을에서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풍물놀이로 농업이 생업의 기반이 되었던 전통 사회에서는 농가의 월령(月令)과 관련하여 연중 내내 행해졌다고 볼 수 있다. 정월 대보름에는 벽사진경(辟邪進慶) 및 풍년 기원을 행사의 목적으로 하고, 5월 파종 때와 6월 김맬 때는 작업 능률을 올리기 위해, 7월에는 호미씻이와 백중놀이에서, 8월에는 명절에, 10월에는 추수 후 동제를 지내면서 놀았다. 두레 파작을 할 때 월미마을월곶동, 하중동 등 다른 마을의 풍물놀이와 함께 장소를 옮겨가며 연행(演行)하였으며 실력이 우수하였다.

경기도의 여가생활 및 민속놀이로는 윷놀이, 줄다리기, 달맞이, 쥐불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다리밟기, 돈치기, 그네, 천렵, 복놀이, 풍물놀이, 산놀이, 풀겨루기, 씨름, 호미씻이, 팽이치기, 썰매타기, 활쏘기, 경로회(敬老會), 시회(詩會), 진치기, 숨바꼭질 등이 1936년 일본인 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조선의 향토오락』이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다. 이 가운데 다리밟기, 산놀이, 갈퀴치기, 윷놀이, 얼레공놀이는 시흥의 지역성을 대표하는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얼레공놀이는 두 편으로 갈라서 나무옹이를 다듬어 만든 공을 120㎝가량 길이의 끝이 휘어진 나무채로 치면서 노는 필드하키와 비슷한 놀이이다. 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 저녁에 참가자들이 줄을 맞춰 풍물패를 앞세워 다른 세 곳 이상을 건너는 놀이이다. 산놀이는 봄철에 젊은이들이 풍물을 치며 산에 올라가 음식을 나누며 노는 놀이이다. 갈퀴치기는 가을과 겨울철에 나무를 해서 일정량을 서로 내놓고 갈퀴를 던져 안과 밖으로 뒤집어지는 모양에 따라 승부를 내어 이긴 쪽이 진 사람의 나무를 가지고 가는 놀이이다. 윷놀이는 편을 갈라 윷으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윷에는 가락윷과 밤나무로 손아귀에 들어갈 만큼 작게 만든 토시윷이 있다. 토시윷이라고 부르는 것은 겨울철 소매나 발목을 감싸는 토시에 윷을 넣어 흔들어 던지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의식주 생활]

시흥 지역에서 목화는 재배하였으나 모시, 삼을 기르거나 명주 생산을 위해 누에치기를 한 사례는 나타나지 않는다. 옷감은 장시(場市)에서 구입하였으며 자가 생산은 일찍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목화는 무명 생산보다는 주로 솜과 실로 이용하려는 목적에서 재배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시절 공출 물목(物目)에 속하였기 때문에 부족한 농지에 억지로 심기도 하여 광복 이후에는 소멸이 보다 가속화된 것으로 보인다. 누에치기는 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기피하였다고 한다. 일상복에는 무명, 광목이 가장 폭넓게 쓰였는데 여름에는 삼베를 입었으며 겨울에는 광목에 목화솜을 넣어 만든 저고리, 치마, 바지 등을 입었다. 이 외에도 목화솜은 버선, 이불, 요 등에 넣었다. 이렇게 옷이나 이불 등을 만들 때에도 목화를 물레에 돌려 뽑은 실을 사용했다. 한복은 점차 양장으로 바뀌게 되었고, 한때 나일론이 나오고 근래에는 합성섬유로 만든 기성복이 의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시흥 지역은 바다 옆에 위치하고 주곡과 채소 등의 생산이 발달하여 물산(物産)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일상식의 주요 재료인 소금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김장 김치의 젓갈로 새우뿐만 아니라 황석어, 조기, 가재, 명태 등의 다양한 해산물을 사용하였다. 조기, 새우 등은 포동 새우개에서 구입하였는데 인근 지역인 방산동에서는 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징소리와 깃발을 보고 왔다고 한다. 육류는 인천이나 도일시장, 안양시장 등지에서 구입하였다. 또한 마을마다 소금장수와 생선, 젓갈장수들이 다녔기 때문에 소금과 어류 구입이 쉬웠다.

시흥 지역에서 일반 주택의 규모는 6.25전쟁 이후 대체로 8자[약 2.4m] 정도가 되는 한 칸 반의 안방, 한 칸의 건넌방, 한 칸 반의 마루, 부엌이 기본적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거의 마루를 놓지 못했고 형편이 좋은 사람은 8~15칸 정도부터 30칸 가까이 되는 집을 지었다. 가옥 구조는 ‘ㄱ’ 자 또는 ‘⌜’ 자형이었고 ‘―’ 자형 집도 있었다. 부유한 집의 경우 튼 ‘ㅁ’ 자형 집도 나타났다.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구조와 형태의 아파트, 빌라, 다가구주택 등이 주된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민간요법]

민간요법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해 내려오는 경험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다양한 민간요법이 전해지고 있지만, 시흥 지역에 전해 내려온 민간요법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동법잡기가 있다. 동법잡기는 쇠나 흙, 나무를 잘못 다루어 탈이 났을 때 행해지던 치병 의례를 말하며 동티라고도 한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면 무당에게 물어보아 그 원인을 찾는데, 일반적으로 동법을 잡는 방법은 쇠나 흙, 나무를 다뤘던 곳에 가서 목화씨와 소금을 함께 태우는 것이다. 나무를 잘못 다루어 난 동법은 도투마리경을 읽기도 한다. 절차는 다음과 같이 같다.

먼저 동법이 난 자리에 독경을 하는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넉가래를 양쪽으로 붙들어 매어 도투마리 모양을 만든 다음, 복숭아 가지로 이것을 치면서 하루저녁 내내 경을 읽는다. 집에 도투마리가 있을 경우에는 도투마리를 사용한다. 만약 세 사람이 아니고 혼자서 읽을 경우에는 사흘 저녁 동안 경을 읽는다. 경문은 그리 길지 않고 24줄 정도가 되는데, 이 경문을 반복하여 계속 읽는 것이다. 24줄을 세 차례 정도 반복하여 읽으면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흙을 잘못 다루어 생긴 동법은 목화씨와 소금, 여기에 말장[냇둑이 터지지 말라고 해 놓은 시설물]과 기메털[산에서 볼 수 있는 식물], 엄나무를 함께 붙들어 맨 다음 고추를 넣어 태워 보아 동법이 났는지를 판단한다. 원래 고추를 태우면 매운 냄새가 나야 하는데 매운 냄새가 나지 않으면 동법이라고 한다. 동법은 마을의 노인 중에서 동법잡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부탁한다.

[의의와 평가]

전통적인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던 시흥의 생업 환경은 우리나라 사회의 공업화, 도시화와 함께 변모하게 된다. 한복을 입고 향토 음식을 먹으며 지역성에 입각한 민가에 거주하던 주민 생활은 서양화된 기성복을 입고 국제화된 먹을거리를 구입하며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으로 주생활이 변모하였다. 도시화로 인해 마을 공동체가 파괴됨에 따라 마을 제사가 단절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문화도 많이 소실되고 있다.

가정에서 행해지던 돌잔치, 혼례식, 회갑 잔치, 장례식 등의 일생 의례도 근래에는 음식점이나 전문 식장을 이용하게 되고, 장례업체와 같은 일생 의례를 대상으로 한 상업화 경향도 강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놀이 문화 역시 오늘날 특별한 문화 행사가 아니면 보기 힘들 정도로 점차 일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시흥의 민속도 도시화가 되면서 변모되고 있지만, 지속적인 기록·보존·활용을 통해서 현대 사회와 후대의 문화 자원으로 가치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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