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1603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우일

[시흥을 지키는 넓은 벌판, 호조벌]

시흥시 북쪽의 소래산과 서남쪽의 군자봉 사이로 흐르는 은행천보통천이 서해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 두 하천에서 운반되어온 퇴적물이 매화동, 은행동, 미산동, 도창동, 하상동, 하중동 일대에 약 150만 평[약 5㎢]의 커다란 벌판을 형성해 놓았다. 조선시대에 간석지[개펄]였던 이곳에 서해의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호조방죽을 축조하여 농경지로 활용하였는데, 그 들판이 호조벌이다.

호조방죽시흥시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를 잇는 길이 약 720m의 인공으로 된 방죽[둑]이다. 조선 경종 원년인 1721년 호조(戶曹)와 관련 있는 진휼청(賑恤廳) 주관으로 둑을 완공하여 농경지로 개간한 것이다. 호조방죽이라는 명칭도 호조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한편 호조방죽은 과거 인천과 안산을 연결하는 교통로 구실을 하였으며 지금도 옛 국도39호선이 제방 위를 통과하고 있다. 또한 호조벌을 소재로 한 축제와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호조방죽 축조]

호조방죽호조벌을 만들어낸 제방으로 1720년(숙종 46) 경자년에 감독하는 관리를 지정하고 군인을 고용하여 축조를 시작해 이듬해인 1721년(경종 1) 신축년에 완공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에 바다를 막는 대공사가 진행된 것이다. 『승정원일기』에는 이러한 호조벌 생성의 역사가 잘 기록되어 있다.

『승정원일기』 「영조 원년 6월 5일 1725년」에서 “백성들에게 이익을 줄 계획하에 일찍이 경자년에 본청에서 제언을 쌓은 뒤부터 경작을 원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들어가 논을 만들도록 허락하였습니다(故爲民蒙利之計 曾於庚子年分 自本廳築堰使願耕民人等 許入作畓).”라는 기록과 『승정원일기』 「영조 2년 5월 16일 1726년」에 “안산과 인천의 경계 안에 석장포가 있어 신축년에 본청에서 물력을 써서 제방을 쌓은 뒤로 살피어 검사하는 사람이 없어 여러 해 동안 포기하였다(安山·仁川境內有石場浦 辛丑年自本廳費物力築筒後 看檢無人積年抛棄).”라는 기록에서 언급되고 있는 경자년과 신축년이 각각 1720년과 1721년을 의미한다. 기록을 보면 호조방죽의 축조 목적이 ‘백성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다. 농경지를 만들어 국가의 세수도 확보하고 백성들을 구호하고자 한 것이다.

[호조벌 개간과 관리]

호조벌이 조성된 초기에는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바다를 막아서 만든 땅이었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경지로 개간하는 작업이 급선무였다. 『승정원일기』에는 호조벌을 어떻게 개간하고 관리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승정원일기』 「경종 원년 12월 6일 1721년」 “경작을 원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역하여 그 많고 적음에 따라 차등으로 나누어주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 읍의 향색배들이 중간에서 농락하는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이에 본청의 낭청을 급히 내려보내어 친히 적간하도록 하십시오(願耕者使之赴役 計其赴役多少 使之差等分給 而本邑鄕色輩 或不無中間弄巧之弊 本廳郞廳給馬下送, 使之親摘奸).”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호조벌에서 경작을 원하는 사람에게 부역의 정도에 따라 경작지를 분배하고, 중간에서 일어나는 폐단에 대해서는 진휼청의 낭청이 감찰하도록 했음을 알 수 있다.

약 6년이 지난 1727년에 개간 전문가인 유성서(柳星瑞)에게 임무를 부여하여 호조벌을 농토로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승정원일기』 「영조 2년 5월 16일 1727년」의 “지난해 전 별장 유성서를 별장으로 소임을 하도록 하고, 그로 하여금 검찰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성서가 사람됨이 부지런하고 성실하여, 이 소임을 받아서 둔소를 떠나지 않고 백성들을 모집하였습니다(上年以前別將柳星瑞 差定別將使之檢察 而星瑞爲人勤幹及授是任 不離屯所募入民人).”라는 기록을 보면 별도의 관리를 두어 보다 체계적으로 개간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기록에서 ‘둔소’가 언급되는데, 이는 호조벌을 둔전(屯田)으로 관리 운영했음을 보여주는 용어이다.

『승정원일기』 「영조 16년 4월 5일 1740년」 기록에는 둔전이 설치되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즉, “본청에서 일찍이 신축년에 안산과 인천의 경계인 석장포의 파종할 수 있는 곳에 다량의 물력으로 방죽을 쌓아 둔전을 설치하였습니다(本廳曾於辛丑年間 安山·仁川境石場浦可播種處 多費物力築筒設屯).”라는 기록이다. 둔전은 토지 자체가 국가 소유로서 황무지를 개간하고 경작하여 그 수확물로 군대나 궁실, 관공서 운영을 충당하도록 설정된 토지를 말하는데, 호조벌도 이러한 둔전을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었다.

『승정원일기』 「경종 3년 12월 3일 1723년」에 “경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논을 만들러 오도록 허락하고, 영구히 본청에 귀속해 세금을 거두는 데 보충해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使願耕民人等 許入作畓 永屬本廳收稅補用).”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호조벌에서 개간한 농토는 영원히 국가 소유의 진휼청에 귀속하여 세금을 거두는 데 보충해 사용하도록 하였다.

[호조벌 경작]

호조벌을 개간하여 문전옥답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부와 농민들은 지금까지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게 경작지로 변모하지는 않았다. 힘들게 자연환경을 극복해야 했으며, 아울러 제도적인 뒷받침도 있어야 했다. 기본적으로 호조벌을 경작할 수 있는 농경지로 만드는 데는 초창기에는 경작인 확보, 그리고 호조벌이 조성된 내내 홍수와 가뭄을 극복하는 물관리가 핵심이었다. 다음 사례는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승정원일기』 「영조 원년 8월 9일 1725년」에 보이는 “지금 옛 갯골에 잇닿아 농수로를 순조롭게 하고, 백성을 모아 권농하며, 개간해서 논을 만드는 것이 가장 급선무가 됩니다(今則濱其舊浦 使水道順利 聚民勸農 開墾作畓 最爲緊急之務).”라는 내용을 통해서 여름철 호조벌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장마철에 상류에서 내려오는 빗물, 그리고 만조 때 들어오는 바다의 밀물, 빗물과 밀물 사이를 가로막고 놓여 있는 호조방죽과 그 안에 펼쳐진 호조벌, 비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호조벌 안의 도랑을 파고 호조방죽의 일부를 헐어 물을 바다로 빼내기도 했다.

호조벌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경작 형태는 조선시대 내내 경작인을 모으고, 농수로를 확보하며, 홍수 및 가뭄과 싸우는 과정의 연속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1929년에 소래저수지, 1939년에 매화저수지, 1944년에 흥부저수지[물왕저수지]를 축조하는 토목 사업이 진행되면서 호조벌 경작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39년 10월 13일 자 『동아일보』에 「도의 설계서 오는 대로 소래수조공사 착수 공비 오만오천 원으로[道의 設計書 오는 대로 蘇萊水組工事着手 工費五萬五千圓으로(仁川)]」라는 제목 아래 “부천군에서는 한 해 대책으로서의 계획된 관내 소래면 도창리, 매화리와 시흥군 일부 일대의 일백오십 정보[약 1.5㎢]를 몽리구역(蒙利區域)[저수지, 보 따위의 수리 시설에 의하여 물이 들어와 농사에 혜택을 입는 구역]으로 할 수리조합(水利組合) 공사…”라는 기사가 보이는데, 이는 소래수리조합에서 가뭄 극복을 위해서 매화저수지를 곧 착공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농민들 처지에서 볼 때 소래저수지매화저수지가 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조벌에 물 공급이 그나마 흡족할 정도로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흥부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부터이다.

이런 대규모의 저수지 축조와 함께 호조벌 경작에 큰 영향을 준 사업이 1966년 부천군 소래면 안현리 일대부터 1975년 시흥군 소래면 매화리 일대까지 10여 년간 이루어진 경지 정리였다. 이 사업이 완료된 후 그야말로 호조벌은 초창기와는 완전히 다른 옥토로 변모하였다. 매화동에 누대에 걸쳐 살아온 1922년생 이창우의 “저수지가 생기면서 좋아졌지. 물왕저수지도 그렇고, 농사를 제대로 짓게 되니까. 근데 여기 벼를 제대로 먹은 것은 경지 정리를 하고부터야. 그전에는 벼가 많이 죽었어.”라는 말은 호조벌에서의 농사는 근현대에 들어와서야 안정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무엇보다도 물관리의 관건인 저수지 축조와 경지 정리 사업을 통해서 실현되었음을 알려준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호조벌에서는 양질의 쌀이 생산되었으며, 소비자들에게 고품질의 호조벌 쌀을 브랜드화하여 제공하게 되었다. 2004년 7월 시흥시 공고 제2004-656호 지역 특산물로 탄생한 것이 ‘햇토미’이다. 바다를 간척한 땅에서 생산한 쌀이라는 뜻이며 한자로는 해토미(海土米)로 적는다. 여기에 햇토미를 고품질화하기 위해 완전미 생산 가공 시스템을 갖춘 햇토미 가공 센터를 2004년 장현동에 완공하였다. 2008년부터는 학교를 대상으로 햇토미 지원 사업을 시작했고, 2015년에는 호조벌에서 우렁이 농법으로 친환경 햇토미 쌀을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햇토미는 20㎏ 1포대 5만 3000원, 10㎏ 1포대 2만 7000원에 판매하였다.

[문화의 밭이 된 호조벌]

호조벌은 시흥 지역의 대표적인 자연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시흥 사람들은 여기에 문화와 예술의 이름으로 또 다른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그린웨이(greenway)를 통한 걷기와 라이딩의 웰빙 문화, 연꽃테마파크를 통한 관광 문화, 전통 연희극 「호조벌 스캔들」과 창작 뮤지컬 「1721호조벌」을 통한 공연 예술 문화, 호조벌 축제를 통한 마을 축제 문화가 그것이다.

그린웨이흥부저수지 입구에서 호조벌을 누비며 시흥갯골생태공원에 이르는 약 7.5㎞의 친환경적인 걷기 및 자전거 라이딩을 할 수 있는 길이다. 2005년 갯골, 하천, 공원, 산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조성하였다. 사시사철 시민과 외부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며 2017년에는 경기도 트레킹 5대 명소로 경기관광공사에서, 2015년에는 가을에 달리고 싶은 길로 한국관광공사에서 각각 추천하였다.

연꽃테마파크시흥시 하중동 219번지 일원의 18만㎡ 논에 연꽃을 주제로 2005년 조성하여 운영하는 공원이다. 재배 단지 주위로 그린웨이를 비롯하여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있으며 드넓은 호조벌과 맑은 물이 흐르는 보통천이 함께하고 있다. 시흥 시민뿐만 아니라 외지의 관광객도 즐겨 찾는 명소이다. 특히 연꽃이 피는 7월 초순부터 9월 말까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호조벌 스캔들」은 시흥100년기념사업조직위원회와 시흥시립전통예술단이 함께 만든 창작 연희극이다. 약 3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호조벌의 가치와 의미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나누기 위해 2014년 처음 만들어 2016년까지 공연하였다. 시흥의 지역 생태 자원을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 낸 시작점에 그 의미가 깊다.

「1721호조벌」은 2017년 시민 참여형 뮤지컬 프로젝트로 진행된 공연이다. 시흥시와 시흥시립합창단이 주관하여 3회에 걸쳐 시흥시청 늠내홀에서 선보인 창작 뮤지컬이다. 시흥시 매화동호조벌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진한 가족애, 삶의 애환을 그렸다. 2017년 12월 22일 자 『시흥장수신문』의 「창작 뮤지컬 ‘1721호조벌’ 공연하다」에 실린 관람 후기를 보면, 최찬희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시흥지회장은 “시흥시에서 최초로 하는 창작 뮤지컬이어서 의미가 깊었다.”고 했고, 포동에서 온 초등학생은 “즐거웠다. 2막에서 아버지와 함께 조선시대로 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고 말하여 뮤지컬 공연에 대하여 호평하였다.

호조벌 축제는 시흥시 매화동주민자치위원회에서 호조벌을 소재로 2017년 현재 13회째 개최하고 있는 마을 축제이다. 호조벌 걷기, 농경 및 놀이문화 체험, 달집 태우기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하여 지역의 자연유산인 호조벌을 소중히 하고, 부모와 자녀가 소통할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 시흥시의 마을 단위 대표적인 축제이다.

[생명의 공간 호조벌을 지켜가는 사람들]

호조벌이 만들어진 지 약 300년이 되었다. 우리 사회도 농업이 아닌 산업화 사회로 변모하면서 호조벌도 새롭게 변화해야 할 갈림길에 있다. 그 방향은 지속 가능한 생명의 땅으로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뜻으로 시흥시는 2016년 11월 30일 자연환경국민신탁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호조벌 생태 자원화 사업’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최재천 교수의 「생명의 땅 호조벌, 희망을 꿈꾼다」라는 토크 콘서트를 시작으로 2017년 1월 19일 ‘생명의 땅 호조벌 시흥에코증권’을 발매하였다. 1만 원, 3만 원, 5만 원권 등 세 종류의 증권이며 시민 모금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호조벌의 생태 자원을 널리 알리고자 호조벌 논두렁 걷기 행사를 매달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시흥시의 노력 외에도 생명 공간으로서의 호조벌을 보존하려는 시민 중심의 운동도 있다. 2014년 봄에 시흥시 하중동 142-4번지에 레미콘 공장이 들어설 계획이 알려지면서 시흥 시민들은 ‘하중동 레미콘 공장 설립 반대 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생명이 숨 쉬는 시흥의 허파인 호조벌연꽃테마파크 그리고 보통천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서명 운동을 벌인 지 3일 만에 1만 7000여 명이 반대 서명을 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하중동 레미콘 공장 건설 반대 운동은 시흥시와 시흥시의회, 시흥 시민이 하나가 되어 2017년 1월 대법원의 최종 승소 판결을 이끌어내면서 생명 터전을 지킬 수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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