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동 당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1507
한자 芳山洞堂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2017년 - 방산동 당제 중단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신당/신체 당나무|우물

[정의]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의 방골, 마루미, 다니, 황골에서 함께 지내는 공동체 의례.

[개설]

시흥시 방산동 방골[芳谷], 마루미[宗山], 다니[竹院], 황골[項谷]은 방산1통에 속하는 네 개의 자연마을이다. 이들 마을에서는 격년으로 음력 10월 열흘 안에 택일하여 당고사를 지낸다. 고사를 지내기 전에 제관인 당주(堂主)를 선정하는데 마을 남자 중 부정이 없고 적합한 사람으로 정한다. 당주는 제물(祭物) 준비와 함께 당에 가서 정성을 드리는 일을 하고 다른 주민들은 제물 준비를 돕는다. 당주 집 앞에는 부정한 사람이 출입하지 않도록 왼새끼를 꼬아서 걸어 둔다. 음력 7월 초에는 우물 고사를 지내는데, 방골 웃말에 있는 우물을 시작으로 마루미·다니·황골 순으로 소머리를 놓고 지낸다.

[연원 및 변천]

방산동 당제의 연원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마을이 생긴 이후로 공동체 의례가 자연스럽게 발생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제의(祭儀)에 참여하였으나 근래에는 종교적인 차이로 전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줄었다. 제물은 소머리를 사용하였으나 후에 돼지로 대체되었다. 돼지는 검은 돼지를 사용한다. 제물로 올릴 때는 돼지의 내장을 꺼낸 통돼지를 삶지 않은 그대로 올린다. 당고사를 무당이 주관하기 때문에 통돼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예전에는 술을 직접 담가 사용했으나 지금은 약주를 사서 사용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방산동 당제는 수백 년이 된 당나무에서 제를 지내는데, 방골 뒷산[망재산] 정상에 있다. 방골에 있는 주택 좌측으로 난 산길을 따라 약 100m 떨어진 고개 우측으로 오솔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다시 약 100m 가면 당나무와 짚주저리[볏짚으로 우산처럼 만들어서 터주나 업의항[항아리] 따위를 덮는 물건]가 있다. 당나무의 수종은 참나무이고, 그 앞에 짚주저리를 해 놓는다. 고사 전날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 뽑힌 주민이 올라가서 예전 짚주저리 위에 새로 이엉을 엮어 옷을 입힌다.

짚주저리는 지름 3m, 높이 2.5m 크기로 2년에 한 번씩 당고사를 지낼 때 낡은 짚은 새것으로 교체하면서 기존의 크기를 유지한다. 당신은 도당할머니, 도당할아버지로 호명된다. 짚주저리 속에는 벼가 있다는 말이 있으나 매년 짚만 교체하고 속은 열어 보지 않았다고 한다.

[절차]

제일(祭日) 전날 자정에 당주 부부가 노구메[산천의 신령에게 제사 지내기 위하여 놋쇠나 구리로 만든 작은 솥에 지은 메밥]를 짓고 당에 올라가 굿이 잘 풀리기를 기원하는 안반고사를 지낸다. 전에는 당주가 이곳에 노구메를 지어 먹으면서 자정에 고사를 지내고 날이 밝아 당고사를 지낼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날이 밝으면 짚주저리가 있는 당 앞에서 팥시루와 백설기 등 육식이 아닌 음식을 차려 놓고 고사를 지낸다. 이어서 그곳에서 약 50m 내려온 터에서 무당이 주관하는 간단한 치성을 한다. 무당에 따라 의례 절차가 다소 차이가 나기도 하고 내장을 꺼낸 통돼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무당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제를 지낼 때 섭외를 한다. 무당은 징을 치면서 축원을 하고 주민들에게 오방기(五方旗)를 뽑게 하고 신수(身數)를 보고 공수[무당에게 내린 신령이 무당을 통하여 신도들에게 직접 말로 뜻을 전달하는 것]를 준다. 주민들은 복채를 낸다. 제물은 돼지머리 삶은 것과 팥시루떡, 산자(饊子), 곶감, 사과, 배, 대추, 밤, 포, 술 등을 차려 놓는다. 예전에는 당주 집에서 떡을 했으나 요즘은 방앗간을 이용한다.

고사에는 남자 당주와 화주(化主)[별신굿이나 도당굿 따위의 제주(祭主)]가 참여하는데 화주는 모두 8명으로 역시 주민 중에서 나이와 날짜를 봐서 좋다는 남자만 할 수 있다. 이곳에서 고사를 지낸 후 대동 우물에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데, 우물은 제의 전날 미리 깨끗하게 치워 둔다. 우물 고사가 끝나면 낮 12시가량이 되는데 남자들이 굿을 하던 곳에 올라가서 음복(飮福)을 한다. 여자들은 제의(祭儀)는 물론 음복을 할 때도 참여할 수 없다. 우물 고사는 2017년까지 지냈으나 최근 공장이 들어서면서 들어가는 입구가 좁아져 이후에는 지내지 않고 있다.

[축문]

방산동 당제는 예전부터 축문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대 행사]

음복 후 제물 비용을 낸 집에 돼지고기와 떡을 한 몫씩 나눠 주고, 돼지 내장은 끓여서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먹는다.

[현황]

시흥시 방산동 방골은 개발되기 전 창원 황씨(昌原黄氏)가 40여 가구, 경주 이씨(慶州李氏)가 10여 가구 등 55가구 정도가 살던 마을이다. 마을에 공장과 창고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많이 떠나 2018년 현재는 토박이 주민 14가구가 살고 있다. 당고사를 지낼 때 주변으로 떠난 주민들도 찾아와서 함께 제를 지낸다. 주민들은 그전부터 지내 왔으니 하루아침에 중지할 수 없어 지금은 유지하고 있지만 젊은이가 없어 앞으로도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지역 문화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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