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당굿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1144
한자 都堂-
영어공식명칭 Dodanggut|Tutelary Rite
이칭/별칭 대동굿,별신굿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정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행해지는 마을 공동체의 행복을 기원하는 굿.

[개설]

마을굿은 지역에 따라 대동굿, 도당굿, 별신굿 등 다양한 명칭이 있으나 경기도에서는 '도당굿'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이다. 시흥 지역에서도 많은 마을에서 도당굿을 하였다. 마을굿은 간단한 고사식(告祀式)으로 행하는 경우도 있고, 무당을 불러서 열두 굿거리를 전부 행하여 장시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도당굿 형태로 하기도 한다. 도당굿을 하게 되면 무당도 여러 명이 있어야 하며 악사도 몇 명이 필요하여 일행이 10여 명이 된다. 마을에 따라 고사와 도당굿을 격년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도당굿을 할 때도 당주(堂主)가 주축이 되어 먼저 고사를 지낸 후에 도당굿이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현황]

도당굿에 오는 단골 무당은 마을마다 정해져 있었다. 군자봉의 경우 김순덕 집안에서 담당했으며 새우개의 경우 현재 도당굿을 맡고 있는 최용희의 친정어머니가 일제강점기에 맡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오이도의 경우 거모동에 사는 지경례가 단골로 왔다. 매화동에서도 오는 단골 무당이 정해져 있었다. 장기간 마을과 무당이 관계를 가지다 보면 단골판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시흥시의 대표적인 도당굿군자동에서 하는 시흥 군자봉 성황제[군자동 성황당굿]이다. 시흥 군자봉 성황제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과 부인 안씨, 장모 홍씨를 모시는 의례로 그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동 새우개마을에서는 당제를 지낸 후 이어서 도당굿을 지낸다. 정월에 도당굿을 하는데 소 한 마리를 잡으며 여무(女巫) 2~3명, 남무(男巫) 및 악사 20여 명이 대동되는 큰 행사였다.

계수동 건지물마을에서도 도당굿이 행해졌는데, 매년 음력 10월 3일 마을 어귀에 있는 도당나무 앞에서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하였다. 당주에 의해 고사식의 당제가 이루어진 후 이어서 마을의 무당이 도당굿을 주관한다.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는 도당굿을 하면 주민들이 각자 가지고 온 쌀을 펼쳐 놓고 소원을 비는데, 이것을 '꽃반'이라고 한다. 건지물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주발에 쌀을 담아 대주(大主)[굿을 하는 집의 남자주인]의 숟가락을 꽂아 놓고 기원하였다.

조남동 을미·소릉뫼·방화 마을에서도 10월 초하루에 도당굿을 하였다. 1950년대에는 격년으로 도당굿을 했으나 근래에는 단절되었다. 당시 도당굿은 고사 전날 오후부터 당집 앞에서 삼현육각(三絃六角[피리가 둘, 대금·해금·장구·북이 각각 하나씩 편성되는 풍류]을 대동해서 부정풀이[부정거리]를 시작으로 사흘 동안 밤낮으로 하였다. 도당굿을 하면 주민들은 물론 인근 마을에서도 구경을 왔다. 이 외에도 도창동에서 10월 초사흘에 격년으로 도당굿을 하였다. 매화동에서도 10월과 추수 후, 7월 보름에 굿을 하였다.

7월에는 줄타기 광대까지 불러서 놀았다. 제물(祭物)로는 소를 잡았으며 도당굿에 오는 정해진 무당이 있었다. 정왕동 오이도에서도 당제(堂祭)를 마친 후 도당굿을 하였다. 무당과 악사, 줄타기 광대까지 불렀다고 한다. 시흥 지역에서는 도당굿을 할 때 줄타기 광대를 불러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던 사례가 다수의 마을에서 조사되었다. 오이도의 경우 하중동에 있는 찬우물거리[광대촌]에서 광대들이 왔으며 한때 광대의 우두머리는 '이참봉'이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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