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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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鳥南洞-土器散布地 |
영어공식명칭 | Jonam-dong Non-decorative Earthenware Site |
이칭/별칭 | 조남동 무문토기 유물 산포지,조남동 청동기시대 유물 산포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방문식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8월 -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조남동 청동기시대 무문토기 유물 산포지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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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306-220 일대 |
성격 | 유물 산포지 |
[정의]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의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된 장소.
[개설]
조남동 민무늬토기 산포지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방치된 접속부의 경계면에서 발견되었다. 1998년 기전문화재연구원[지금의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민무늬토기 조각과 돌도끼 등 청동기시대 유물을 수습하고 유물 산포지로 보고된 이래 후속 조사는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유적의 범위나 유구(遺構)의 형태 그리고 청동기시대 문화층에 대한 자세한 보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치]
조남동 민무늬토기 산포지는 시흥시 조남동 306-220 일대로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와 서울~안산간 고속도로가 만나는 지점 부근에 있다. 유물 산포지 위쪽으로 높이 97m의 평탄한 구릉이 북동쪽으로 이어져 있다. 이 구릉이 유적의 중심지로 판단되나 정작 지표에서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확실한 범위는 알 수 없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시흥시 조남동의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 유물 산포지는 1998년 8월에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시흥시 광역 정밀 지표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2000년 관련 보고서가 발간되었고, 조남동에 있는 유물 산포지 6곳과 고인돌 1기가 보고되었다. 이 중 청동기시대 유적은 1곳이고, 조남동 민무늬토기 산포지 서남쪽으로 약 750m 떨어진 지점에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이전 복원된 조남리 지석묘가 있다. 이 외에도 조남동에서는 유물 산포지가 5곳이 발견되었는데 백자(白瓷)와 기와 등이 발견되어 조선시대 유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조남동 민무늬토기 산포지의 유물은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와 서울~안산간 고속도로가 만나는 지점의 단면부에서 발견되었는데, 유적의 중심지는 유물 산포지 위 북동쪽으로 연결되는 높이 97m의 평탄한 구릉으로 여겨지나 추가 유물이 지표에서 수습되지 않아 확실한 범위는 알 수 없다.
[출토 유물]
수습된 유물은 민무늬토기 조각과 돌도끼[석부(石斧)]이다. 민무늬토기 조각은 구연부(口緣部)[아가리]와 동체부의 입부(入部)가 확인되었다. 토기 조각의 내면과 외면은 흑갈색·회갈색·적갈색 등의 갈색 계통이고, 속심은 흑회색, 태토(胎土)[바탕흙]는 굵은 석영립(石英粒)과 세사립(細砂粒)이 혼입되었다. 유물의 작은 조각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성형이나 마무리 조정 방식 등은 확인하기 어렵다. 돌도끼는 화강암계 석질로 만들었으며, 전체적으로 장방형(長方形)[직사각형]으로 윗부분은 약간 둥글고 날 부분인 아래쪽은 부채꼴 모양이다. 앞면은 일부 훼손되었고, 날을 중심으로 양쪽을 때려 뾰족하게 만들었으나 조잡하다.
[현황]
조남동 민무늬토기 산포지는 도로 공사가 시행되면서 유적의 원래 형태가 훼손되었고,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유적의 범위나 유구의 형태·문화층은 확인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의의와 평가]
조남동 민무늬토기 산포지는 유구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고 지표의 유물만으로 추측된 유적이란 점에서 다른 유적에 비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관련 유물이나 유적에 대한 기록이 소략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보가 소실되어 가는 형편이다. 그러나 유물 산포지는 선사시대에도 시흥 지역에 일정한 문화를 지니고 살아가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이 기록을 촘촘히 모은다면 좁은 지역과 낮은 단계의 문화상을 통시적적으로 복원할 수 있고 지역 정체성의 뿌리를 찾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