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3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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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素田美術館所藏佛群 |
영어공식명칭 | Stone Buddhas Kept at Sojun Art Gallery |
이칭/별칭 | 소전미술관 소장 석상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소래산길 41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방문식 |
제작 시기/일시 | 고려시대 - 소전미술관 소장 불상군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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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소전미술관 - 경기도 시흥시 소래산길 41[대야동 305-9] |
성격 | 석불 |
재질 | 석재 |
소유자 | 소전미술관 |
관리자 | 소전미술관 |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소전미술관 뒤뜰에 있는 여덟 구의 불상.
[개설]
시흥시 대야동에 있는 소전미술관 뒤뜰에는 1960~70년대 충청북도에서 옮겨왔다고 전하는 석불좌상 1구와 불상 7구가 안치되어 있다. 이 불상들에는 명문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중심에 위치한 석불좌상은 수인(手印)과 의습선(衣褶線) 등 양식적 특성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 항마촉지인상(降魔觸地印像)을 계승한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형태]
소전미술관이 소장한 불상군은 석불좌상 1구를 중심으로 미술관 왼쪽에 4구, 오른쪽에 3구, 총 8구이다. 정식으로 조사된 기록이 없기 때문에 불상이 발굴된 경위나 현 위치에 배치한 까닭은 알 수 없다. 다만 2000년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간한 『시흥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보고서에 비교적 자세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보고서는 석불좌상 1구와 7구의 불상을 편의상 시계 방향으로 ①~⑦번의 일련번호를 붙여 서술하고 있다.
석불좌상은 광배(光背)와 본존불상(本尊佛像)이 같은 돌로 조각되었고, 별도의 방형대좌(方形臺座)를 갖추고 있다. 불상의 전체적인 비율을 보면 하체가 상체에 비해 큰 편이며 하체는 네모지고 문양도 간략하다.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 넓적한 육계(肉髻)가 있으며 상호(相好)는 타원형이나 파손이 심한 상태라 자세한 모양은 알 수 없다. 천의(天衣)는 왼쪽 어깨에서 사선으로 내려와 오른쪽 팔목 부분을 감아 손목 밑으로 돌아 나온다. 전반적으로 의습선은 부드러우나 섬세하지는 않다. 광배는 거신광(擧身光)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굵은 돋을새김이다. 두광은 머리 중심에서 4엽 연화문(蓮花紋)과 3구의 화불(化佛)로 표현되었으며 연화문 사이마다 팔메트(palmette) 형태의 나뭇잎을 새겼다. 신광은 조선(彫線)이 이중으로 새겨졌다. 본존 좌우에 1구씩 화불이 있고, 가운데 연꽃잎과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또한 두광과 신광 외곽으로 화염문(火焰文)이 올라가고 있다. 크고 정교하게 조각된 광배는 불상의 격을 높이고 있다. 한편 방형대좌는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이 모두 구비되어 있지만 상대석과 하대석의 조각 기법이나 석질이 매우 다르고 접합면도 어색한 것으로 보아 후대에 바뀐 것으로 보인다.
①번 석상의 총 높이는 195㎝, 상의 높이는 156㎝이다. 불신과 광배가 하나의 석재로 만들어져 있는 입상이며 발치는 땅에 묻혀 있다. 두상부와 의상, 광배는 확인할 수 있으나 통견(通肩)이나 수인 등 나머지는 소략하여 전체적으로 조야(粗野)한 작품이다. 두상부 소발의 머리 위에는 육계가 있으며. 통견의 법의(法衣) 주름은 형식적이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 모두를 갖추고 있으나 수인이 명확하지 않다.
②번 석상의 총 높이는 175㎝, 상의 높이는 113㎝인 사천왕상(四天王像)으로 파손이 심하여 자세한 모습은 알 수 없다. 사천왕은 불교 세계 중심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 사방에 머물면서 불법 수호와 중생을 안정시키는 수호신이다. 동쪽은 검을 든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은 탑(塔)을 든 광목천왕(廣目天王), 푸른 용의 모습을 한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비파(琵琶)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모두 갑옷을 입고 있다. 해당 불상도 갑옷을 입고 있는데 부조(浮彫)의 정도와 정교함이 부족하다.
③번 석상은 인왕상(仁王像)으로 총 높이 143㎝, 상의 높이 113㎝이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인왕상은 흔히 금강역사(金剛力士), 이왕(二王), 이천왕(二天王), 집금강신(執金剛神) 등으로도 불리는데, 인도에서는 문을 지키는 신을 불교에서 인왕으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찰이나 불상·불사리(佛舍利), 사찰문, 불전의 입구, 불상의 좌우, 탑의 문 등에 조각이나 그림으로 두어 이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두었다. 인왕상 형태는 상체를 벗은 채 분노한 얼굴 표정을 짓고 있으며 권법, 무기를 든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해당 불상도 나신(裸身)에 권법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④번 석상도 인왕상으로 총 높이 177㎝, 상의 높이 132㎝이다. 훼손과 마모가 심해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안면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분노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⑤번 석상은 좌불상(坐佛像)으로 총 높이 114㎝이다. 광배가 없고 대좌가 불분명하다. 몸체에 비해 머리가 크고, 수인과 의습선 모두 형식화되어 간략하다.
⑥번 석상은 불두(佛頭) 부분을 제외한 총 높이 81㎝의 좌불상이다. U자 형으로 내려오는 의습선과 손은 얕은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부(頭部)는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⑦번 석상은 사천왕상으로 총 높이 151㎝, 상의 높이는 137㎝이다. 안면부와 왼쪽 팔의 훼손이 심하지만, 삼굴(三屈) 자세와 근육이 날리는 천의 자락과 함께 표현되어 있어 비교적 전체적인 형태는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소전미술관 소장 불상군은 석상들이 현재 위치에 오게 된 경위와 각각의 연원이 불분명하여 형태와 양식적 특성으로 시대와 대상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다만 훼손될 위기에 있던 불상들을 한자리에 모아 불교 조각의 대상과 양식적 특성 일부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