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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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運動 |
영어공식명칭 | Saemaul Mov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훈도 |
[정의]
197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진행된 지역 사회 개발 운동.
[개설]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는 1971년 무렵부터 새마을 가꾸기 사업이 시작되었다. 농가의 지붕 개량에서 시작하여 소득 증대 사업, 농로와 마을길 정비 사업 등으로 확산해 나가면서 정신 혁명운동이라는 의미까지 부여되었다. 1970년대 중반 농촌 주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사업 성과를 올렸으나, 1970년대 후반 들어 새마을운동에 대한 주민의 참여와 실적이 줄어들었다.
[역사적 배경]
1970년 4월 22일 개최된 전국 지방 장관 회의에서 박정희(朴正熙) 당시 대통령이 처음 제창하였다. 출범 사업은 새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불린 농촌 환경 정비 사업이다. 효과 있는 사업으로 받아들여져 1972년부터 전국화되었다.
[경과]
1971년 시흥군은 새마을 가꾸기 사업용으로 총 5만 3738포의 시멘트를 지원하여 마을 진입로 확장, 하천 둑 보수, 공동 우물 파기, 공동 빨래터 만들기 등 총 4,032건의 사업을 완료하였다. 1972년 경기도가 선정한 새마을 농촌 건설 20개 표준 사업은 지붕 개량, 농로, 간이 상수도, 마을 안길 확장, 소하천 제방, 하수도, 사방 사업(砂防事業)과 조림(造林), 공동 빨래터, 위생 우물, 공동 목욕탕, 마을 회관, 새마을 광장, 주택 환경 개선[부엌·화장실·축사·퇴비장·울타리], 푸른 마을 가꾸기 사업 등이다.
1972년을 기준으로 시흥군 지역 가운데 지금의 시흥시에 속하는 수암면, 군자면, 소래면 60개 동리(洞里) 가운데 자립(自立) 마을은 3곳에 불과하였다. 자조(自助) 마을이 42곳, 기초 마을이 15곳이었다. 자립 마을은 농촌 환경이 잘 정비된 우수 마을을 가리키며, 자조 마을은 새마을 가꾸기 사업 지원 대상 마을, 기초 마을은 마을 환경이 열악한 마을을 각각 의미한다. 정부와 시흥군은 기초 마을을 자조 마을로, 자조 마을은 자립 마을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폈다.
1973년 시흥군은 예산 5억 4000만 원을 들여 기초 마을에 시멘트 500포, 철근 1톤을 지원하였다. 자조 마을에 시멘트 300포, 철근 0.5톤을 지원하였고, 자립 마을에 지역 개발 자금 100만 원을 지원하였다. 주요 성과는 지붕 개량 2,946동[중앙 지원 1,630동, 주민 부담 1,316동], 농로 개발 9개선 총연장 7.4㎞[폭 5m] 확장 및 신설, 새마을 하천 가꾸기 9개소 6,540m 등이다.
1970년대 후반 들면서 정부 지원은 줄고, 주민 부담은 크게 늘었다. 1977년의 경우 정부 지원금은 5100만 원인 데 비해 주민 부담금은 7억 1300만 원이었고, 연인원 40만 명이 참가해 1만 7552건의 사업을 진행했다. 소래면 포1리의 경우 1972년 조사에서는 기초 마을로 분류되었으나, 이 무렵에는 자조 마을로 발전하였다. 이후 사업 실적이나 주민 참여는 하강세를 보였고, 1980년대 들어서는 사업 실적과 주민 참여 모두 크게 떨어졌다.
[의의와 평가]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의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새마을 지도자를 중심으로 농촌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상당수의 농민들이 참여했고, 소득 증대 사업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래 산업화와 경제 개발의 효과는 농업보다 도시·상공업에 집중되었고, 도농 간 경제적·문화적 격차는 더 벌어졌다. 시흥 지역의 농촌 사회는 1980년대 이후 전형적인 농촌에서 도농 복합형 상공업 배후 지역이라는 성격이 점차 강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