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곡동 논줄 군웅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1126
한자 論谷洞-軍雄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시흥시 논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2000년 무렵 - 논곡동 논줄 군웅제 단절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0월 초
신당/신체 우물

[정의]

경기도 시흥시 논곡동 논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고를 기원하며 지내는 공동체 의례.

[개설]

시흥시 논곡동 논줄마을에서는 마을이 형성되면서부터 음력 10월 초에 군웅제(軍雄祭)를 크게 지냈다. 제물(祭物)은 소머리, 돼지머리, 우족 한 쌍, 떡, 대추, 밤, 감, 사과, 배, 북어, 조라술[산신제나 용왕제 따위에 쓰는 술]을 올렸다. 소와 돼지를 마을에서 잡아 소머리와 돼지머리는 당고사에, 우족은 우물 고사에 사용하였다. 경비는 마을 대동회의 결의에 따라 집집마다 추렴을 하였고, 두레패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가구당 쌀 한 되씩을 거두었다. 살림이 넉넉한 가정에서는 찬조금을 내기도 하였다. 당굿이 이루어지는 동안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구경을 왔다.

[연원 및 변천]

마을이 형성되고 큰 우물이 만들어지고부터 고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2000년 무렵 제의(祭儀)가 중단되기 전까지는 당고사를 지낸 후 우물 고사만 지냈으나 본래는 ‘군웅 고사(軍雄告祀)’라고 하여 당고사, 우물 고사, 당굿을 이어서 행하였다. 1950년대 초에 무당이 하는 당굿은 격년으로 열렸으나 이후에는 군웅 고사만 지내고 당굿은 행하지 않았다. 2000년 무렵 당고사 존폐를 놓고 논란이 일어났으며 타지에서 들어온 이법사[이길만] 부부가 와서 굿을 주관하였으나 얼마 후 중단되었다. 마을에 소방도로가 나면서 당(堂)이 헐리게 되자 단절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은 군웅집이라 불리는데 원래 웃말과 지암터 사이에 있었으나 마을 소유의 땅이 아니어서 동쪽으로 50미터 정도 옮겼다가 다시 이전하였다. 당 안에 군웅할머니의 화본(畫本)이 모셔져 있고 벽면에 역대 축문(祝文)이 비치되어 있었다.

[절차]

마을 대동회에서 당고사 당주와 우물 고사 당주를 뽑고 축관을 선정하였다. 제의는 당고사를 먼저 지낸 후 우물 고사를 지냈다. 제를 지내는 동안 무당이 당굿에 대해 축원하였다. 당주는 고사 전날 이른 새벽 술을 담그고 마을 어른들은 고사 당일 새벽에 제물을 준비해 당집으로 갔다. 당주 주관하에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고 절을 하고 소지(燒紙)를 올렸다. 당고사가 끝나면 바로 우물 고사 당주가 주관하여 우물 고사를 지냈다. 우물 고사에서는 잔을 올리고 절을 하나 축문과 소지는 올리지 않았다. 당굿을 행할 때는 고사 전날 오후부터 당 앞에서 삼현육각(三絃六角)[악기 편성의 명칭. 향피리 2, 대금·해금·장구·북 등 6인조가 원칙이나 경우에 따라서 악기의 종류나 편성 인원에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대동하여 부정풀이[굿을 할 때 불결하고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가셔내기 위하여 행하는 무속]를 시작으로 사흘 동안 밤낮으로 하였다.

[현황]

2000년 무렵 소방도로가 나면서 제당(祭堂)이 헐리게 되어 군웅제가 중단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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