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1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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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米山洞倉洞越村井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미산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중단 시기/일시 | 1950년대 후반 - 미산동 창동·월촌 정제 단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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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마을 우물 - 경기도 시흥시 미산로 85-2 경신아파트 자리에 있던 마을 우물 |
성격 | 민간 신앙|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7월 초하루 |
신당/신체 | 마을 우물 |
[정의]
경기도 시흥시 미산동에 해당하는 창동·월촌동에서 마을 공동체를 위해 행한 우물 고사.
[개설]
매년 7월 초하루에 마을 큰 우물에서 정제(井祭)[우물 고사]를 지냈으나 1950년대에 단절되었다. 제물(祭物)로는 삶지 않은 소머리와 막걸리를 올렸다. 소는 소래읍 신천리[지금의 시흥시 신천동] 도살장에서 잡아왔으며 나중에는 도일장을 이용하였다. 비용은 동네 기금이나 주민 중 한 사람이 낸 돈으로 장만하였다. 가을에 추수를 하면 고기를 나누어 먹은 사람들이 그것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급하였다.
[연원 및 변천]
미산동 창동·월촌 정제는 지금의 경신아파트 자리에 있던 마을의 큰 우물에서 매년 7월 초하루에 지냈으며 1950년대 후반에 단절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우물로서 지금의 경신아파트 자리에 있었다.
[절차]
제의(祭儀)는 소를 잡아 오면 바로 지냈는데 보통 점심 무렵이 되었다. 제의 전날에 우물을 청소하고 제의가 끝날 때까지 물을 퍼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소피가 잡귀를 쫓는다고 하여 소를 잡아 오면 바로 그 피를 마을 입구와 대문에 뿌렸다. 우물 입구에도 제물을 차리고 한두 사람이 약식 제의를 지냈다. 이때 소지(燒紙)를 올리지는 않았다. 제의는 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순으로 이루어졌다.
[부대 행사]
정제를 지내고 나서 고기를 분육(分肉)하고 마을 사람들끼리 내장을 끓여서 같이 먹고 잔치를 벌였는데 당시에는 마을회관이 없어서 개인 집에서 했다.
[현황]
1950년대 후반에 단절되어 현재는 지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