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내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807
한자 茂芝內敎會
이칭/별칭 무지리교회,뭇지내교회,시온교회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시흥시 금오로118번안길 19-4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민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898년연표보기 - 무지내교회 창립
개칭 시기/일시 1967년 4월연표보기 - 무지내교회에서 시온교회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2002년 3월 10일연표보기 - 시온교회에서 무지내교회로 명칭 복구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2년 6월 10일연표보기 - 무지내교회 아펜젤라 순직 기념교회로 선정
최초 설립지 인천부 전반면 칠리 능내동
현 소재지 경기도 시흥시 금오로118번안길 19-4[무지내동 257]지도보기
성격 교회
전화 031-313-0047

[정의]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개설]

무지내교회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중부연회 시흥북지방 소속으로 일제강점기에 설립되어 경기도 시흥과 안산·수원 지역, 충청남도 공주 지역으로 교리를 전파한 교회이다. 1901년 5월 아담한 예배당을 신축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봉헌 이듬해인 1902년 6월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가 무지내교회 예배에서 설교하기 위해 가던 중 경부선 철도 둑과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일본인 노무자들과 시비가 붙어 봉변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난데없는 봉변으로 심한 부상을 당한 아펜젤러는 서울로 되돌아갔다. 아펜젤러는 이 날 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하게 되어 목포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던 성서 번역자 회의 참석도 어려워졌다. 다행히 다른 날에 출발하였지만 타고 있던 배가 다른 선박과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나 먼 이국 땅 깊은 바닷속에서 영면하게 된다. 2002년 6월 10일 아펜젤러의 유족들은 이러한 인연으로 무지내교회를 방문해 무지내교회를 아펜젤라 순직 기념교회(The Memorial Church of Henry G. Appenzeller)로 선정하는 선포식을 진행하였다.

[설립 목적]

무지내교회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지역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898년 12월 28일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에 ‘무지내교회에서 남녀 40여 명이 예배하고 남자 3명, 여자 2명, 어린이 10명이 세례를 받았으며 입교 4명, 학습인 5명’이라는 기록이 있어 1898년 인천부 전반면 칠리 능내동[지금의 시흥시 무지내동]에 창립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후 1901년 8월 6평[약 20㎡]의 예배당을 신축하였으며, 1902년 5월 또 다른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당시 무지내교회는 교세가 매우 커서 그 지역뿐만 아니라 주변 6개 마을의 중심지였으며 등록 교인은 100여 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마을이 전소되고 예배당이 기울어 어려움을 겪다가, 1952년 5월 선교사 스웨어러(W. C. Swearer)의 모국 교회 주일학교와 여선교회에서 모금한 140달러를 지원받아 1952년 11월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1992년 6월 20일 누전으로 교회가 또다시 전소되어 비닐하우스에 보온 덮개를 설치한 18평[약 60㎡]의 임시 건물에서 예배를 드렸다. 1997년 8월 31일 180평[약 600㎡]의 예배당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 명칭은 본래 지역명에 따라 무지내교회, 뭇지내교회, 무지리교회 등으로 불리던 것을 1967년 4월 김의섭(金義燮) 목사가 부임하며 시온교회로 개칭하였으나, 2002년 3월 10일 교회 임원회에서 전체 회원 찬성 결의에 의하여 무지내교회로 명칭을 복구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무지내교회는 설립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교육 소외 지역에 속했던 무지내동 지역민의 교육에 힘써 왔다. 1901년 경기도 최초로 현대식 사립 학교인 무지리여학교를 설립하였고, 1901년 5월 메리 스크랜턴(Mary F. Scranton)의 원조로 어린이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무지리여학교가 「사립학교령」에 의해 1914년 폐교된 이후 1920년 김동일(金東一) 전도사가 흥업강습소를 설립하여 초등학교 1~3학년 과정을 가르치는 등 그 전통을 이어나가고자 하였다. 흥업강습소를 졸업한 학생은 다른 학교 4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었다. 1948년 8월 30일 흥업강습소는 소성고등공민학교로 인가를 받아 중등 교육기관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여학생들은 무지내교회에서, 남학생들은 소성고등공민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6.25전쟁으로 학교 건물이 전소된 후 소성고등공민학교 자리를 1969년 양만영(楊萬英)이 인수하였다가, 1976년 12월 15일 한상호가 재인수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1977년 6월 25일 한인고등기술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2009년 3월 5일 경기자동차과학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한편 소성고등공민학교는 1979년 5월 1일 경기도교육위원회 제200차 본회의 의결에 따라 설립 34년 만인 1982년 2월 28일 폐교되었다.

[현황]

2017년 현재 무지내교회의 등록 교인은 80여 명 정도이다. 매화교회, 과림교회, 물왕교회 등을 지교회로 두고 있다.

[의의와 평가]

무지내교회는 대한제국 시기에 설립되어 역사가 깊은 만큼 교인들의 신앙 생활 터전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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