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5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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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朱永植 |
영어공식명칭 | Joo Youngsik |
이칭/별칭 | 송당(松堂)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주혁 |
출생 시기/일시 | 1867년 - 주영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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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52년 - 주영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24년 - 주영식 자선기념비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5년 7월 - 신안 주씨 삼세 적선비 시흥시 향토유적 제17호 지정 |
출생지 | 인천부 황등천면 |
거주|이주지 | 인천부 황등천면 |
묘소 |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부라위 성주산 |
성격 | 일제강점기 자선가 |
성별 | 남 |
본관 | 신안 |
대표 경력 | 빈민 구제 자선 활동 |
[정의]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서 출생한 일제강점기의 자선가.
[가계]
본관은 신안(新安), 호는 송당(松堂). 인천부 황등천면 일원[지금의 시흥시 과림동]에서 오랫동안 세거하였다. 주영식(朱永植)[1867~1952]은 주희(朱熹)의 31세손이며 주순영(朱順英)의 2남이나 후에 주순거(朱順巨)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활동 사항]
주영식은 큰할아버지 주석범(朱錫範), 큰아버지 주순원(朱順元), 사촌 형 주인식(朱寅植)과 함께 3대에 걸쳐 지금의 시흥시 과림동 중림·부라위 및 계수동 안골의 절량(絕糧) 빈민에게 춘궁기에 양곡으로 구휼하고 영농비도 지원해 주는 등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기에 빈민 구제에 힘썼다. 이런 선행에 감동을 받은 해당 주민들이 1924년 과림동 중림 금오로 변에 있는 신안 주씨 삼세 적선비(新安朱氏三世積善碑) 옆에 주영식 자선기념비(朱永植慈善紀念碑)를 세웠다. 이 비는 주석범의 손자인 주인식의 사촌 동생 주영식의 선행을 기려 마을 주민들이 자진해 세운 것이다.
주영식의 손자인 주기영은 집안 내력과 선조들의 삶에 대해 “고조할아버지[주석범] 때부터 땅이 많았다고 한다. 만석꾼 집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희 할아버지[주영식]는 제가 다섯 살 무렵에 돌아가셨는데, 집안 어른들께 들으니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셔서 뒷산에 올라가셨다고 한다. 어느 집에서 연기가 나나 안 나나 살펴보시고는 연기 안 나는 집에 양식을 가져다주게 하셨다더라. 아마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그런 가풍이 있었던 듯하다.”라고 회고하였다.
주영식은 농민들의 삶이 고달팠던 일제강점기의 어지러운 시기에 선대에 이어 선행을 계속 이어간 자선가였다.
[묘소]
묘소는 시흥시 과림동 부라위 성주산 아래에 있다.
[상훈과 추모]
주영식의 선행을 기려 1924년 주영식 자선기념비가 건립되었다. 이 비는 신안 주씨 삼세 적선비와 함께 2005년 7월 시흥시 향토유적 제17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