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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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澔 |
영어공식명칭 | Kyun Ho |
이칭/별칭 | 백헌(伯獻),우석(又石),경암(敬菴),대,호(灝),호(澔)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주혁 |
출생 시기/일시 | 1886년 - 권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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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6년 - 권호 연성음사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56년 - 권호 사망 |
출생지 |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392-1 |
묘소|단소 |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산2-3 |
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대표 관직|경력 | 궁내부주사 |
[정의]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에서 태어나고 묘소가 있는 일제강점기 문인이자 학자.
[개설]
권호(權澔)[1886~1956]는 시흥시 하중동 392-1에서 출생하였다. 초명은 대이고 1913년에 ‘호(灝)’로 바꾸었으며 1940년에 다시 ‘호(澔)’로 바꾸었다.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백헌(伯獻), 호는 우석(又石)·경암(敬菴). 행중추원사(行中樞院事) 권극화(權克和)의 16세손으로 시종(侍從) 권태선(權泰善)의 1남이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안산군 초산면장을 거쳐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를 역임했다. 일찍이 뛰어난 한학 실력과 문장으로 관내외에 그 이름을 떨쳤다. 1926년경 시흥 지역의 인사 45명이 중심이 되어 ‘연성음사(蓮城吟社)’란 한시 동인회가 결성될 때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이듬해에는 시흥의 옛 읍호인 ‘연성’의 역사적 사실을 내외에 널리 알리고 시흥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시를 모집하였다. 당시 이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입선작을 모아 『연성음사 제일회집』을 발간하는 등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기에 시흥 지역의 문화 인식을 높이고 시흥인의 정체성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묘소]
묘는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산2-3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