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농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393
한자 桂林農園
영어공식명칭 Gyerim Far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훈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1930년대 말연표보기 - 계림농원 설립
개칭 시기/일시 2002년 - 계림농원에서 연두농장으로 개칭
최초 설립지 계림농원 -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계수리 수노골
성격 과수 농장

[정의]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에 설립된 시흥 포도의 원조 포도 농장.

[개설]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이규석이 1930년대 말 향리(鄕里)인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계수리[지금의 시흥시 계수동] 수노골에 내려와 과수 농원인 계림농원을 설립하였다. 계림농원은 시흥 지역에서 한국인이 경영한 최초의 근대식 포도 재배지였다. 이규석은 인근 주민들에게 포도 심기를 권장하고 재배 기술을 가르쳤다. 계림농원은 1980년대 냉해로 포도 농사를 그만두었으나 계림농원을 통해 시흥 일대 포도 재배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건립 경위]

이규석은 서울의 양정고등보통학교[지금의 양정고등학교]에 다닐 때 농촌 부흥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이규석은 양정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고향인 수노골에 내려와 포도 등 과수 재배를 시작했고, 포도를 집중 재배하는 자신의 농장 이름을 계림농원으로 정하였다.

[변천]

계림농원의 포도 수확이 본격화된 1940년대 초에는 포도 한 궤짝이 보리쌀 서 말가량일 정도로 가격이 높았다. 포도 재배가 고수익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계수리과 안현리[지금의 시흥시 안현동]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농가가 증가했다. 이규석은 계림농원에 일을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재배 기술을 가르쳐 주는 한편 포도나무 심기를 적극 권장하였다.

계림농원의 포도는 초기에는 부천군 소사역 좌판 상인들이 하우고개 넘어 4㎞ 떨어진 계수리 수노골까지 직접 찾아와 받아 갈 정도였다. 생산량이 더 늘어나자 삼륜 화물차에 수확한 포도를 직접 싣고 서울 남대문시장 남일상회로 직접 출하하였다. 계림농원 포도는 지금의 경기도 부천시는 물론 인천광역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과 서대문구 홍제동까지 팔려 나갔다.

계림농원의 영향으로 재배가 늘어나기 시작한 포도는 1970년대엔 소래면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2007년 통계를 보면 시흥시의 과실 농사 138.7㏊ 가운데 포도가 109㏊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작목이었다. 그러나 정작 계림농원은 1980년대 냉해를 입은 데다 인건비가 크게 올라 포도나무를 베어 내고 포도 농사를 그만두었다.

[현황]

계림농원은 포도 농사를 접은 이후 농지로 사용하다가 2002년 카드 대란으로 고통 받는 서민을 위한 연두농장으로 바뀌었다.

[의의와 평가]

계림농원시흥 포도의 메카이다. 오늘날에도 시흥 포도는 서해안 바닷바람을 받고 자라 특유의 향이 짙고 당도가 높으며 저장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계림농원 포도가 유명해지면서 소래 등 시흥 지역뿐만 아니라 경상북도 김천군, 충청북도 옥천군에서도 시흥의 포도 묘목을 가져다 재배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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