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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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倉里 |
영어공식명칭 | Gangchang-ri |
이칭/별칭 | 강챙이,강챙이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도창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남 |
[정의]
경기도 시흥시 도창동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강창리는 안동 권씨(安東權氏)와 파주 염씨(坡州廉氏)의 오랜 세거지로 서쪽 지역을 ‘건너말’, 북쪽 지역을 ‘웃말’이라 부른다. 호조벌이 있는 곡창지대로 아직도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명칭 유래]
강창리는 조선시대 배에서 짐을 내려 이 마을에 있는 창고에 쌓았다고 해서 큰 내 ‘강(江)’ 자와 곳간 ‘창(倉)’ 자를 써서 만든 이름이다. 또한 호조벌에서 생산한 쌀을 보관하는 창고들이 수로 옆에 있었기에 강창리라 했다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보통 ‘강챙이’라 부른다.
[형성 및 변천]
1911년경 간행된 『조선지지자료』에는 도두머리와 강창리가 등장한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당시 인천부 전반면에 있던 도두리, 강창리, 점말을 병합하여 도두리와 강창리의 한 글자씩 따서 도창리라 했으며, 도창리는 부천군 소래면에 속하게 되었다. 1980년 12월 1일 소래면이 소래읍으로 승격하자 소래읍 도창리가 되었다. 1988년 시흥군이 폐지되고 1989년 시흥시가 출범하자 강창리는 시흥시 도창동이 되었고, 행정동은 매화동에 속하게 되었다.
강창리는 곡창지대임을 짐작하게 하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의 주업은 논농사였다. 남자는 물론 아녀자들도 예외 없이 일 년 벼농사 수발에 고된 일상을 보내야 했다. 현재는 농기구의 기계화로 육체적 노동은 줄었지만, 주민들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마을과 호조벌을 잇는 서남쪽 산자락에 천하대장군과 상여독[상장례에 필요한 도구를 보관하는 창고]을 만들어 두고, 맞은편 북쪽 산에는 지하여장군을 세워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던 강창리에는 상여독도 장승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자연환경]
강창리는 동남쪽에 도창저수지와 낮은 야산들이 마을을 에둘러 감싸 안고 있으며, 서쪽은 드넓게 펼쳐진 호조벌이 있고 그 사이에 보통천이 흐르고 있는 곡창지대이다.
[현황]
강창리에는 2017년 12월 현재 108세대 227명이 거주하고 있다. 수인로가 마을 진입로를 지나다 보니 접근성이 수월해지면서 농업과 목축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이 모여 살던 농촌 마을에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도창저수지가 동남쪽에 있어 농업용수 사용이 편리하여 마을 서쪽으로 펼쳐진 호조벌에서는 논농사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관내 학생들의 급식용 쌀을 생산하고 있다. 2018년 현재에도 주민들이 여전히 3년에 한 번씩 음력 10월 3일에 마을 당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