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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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東地圖仁川府·安山郡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승호 |
[정의]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에서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는 지도.
[개설]
『해동지도』는 1750년대 영조 대에 홍문관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의 회화식 지도이다. 각 군현 지도에 주기(註記)를 첨부하였으며, 국가 차원에서 제작하여 정책적 목적에 사용되었다. 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제작되었으며, 조선 전도를 비롯하여 도별도, 군현 지도, 세계 지도 등을 포함하고 있다.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91호로 지정되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형태 및 구성]
『해동지도』는 그림을 그리듯 제작된 회화식 지도로, 가로 30.5㎝, 세로 47.0㎝의 크기이다. 각 군현을 그린 지도는 지방별로 포함 내용에 다소의 차이가 있으며, 지도에 주기를 첨부하여 설명하고 있다. 지도의 여백에 기록된 주기에는 군명, 산천, 도서, 역원, 고적, 토산, 호구, 전답, 군향, 봉수 등의 지지적 내용을 표기하였다. 지금의 시흥시는 「인천부」와 「안산군」의 두 지도에 나누어 제작하였다. 도로는 붉은색 선으로 표시하였으며, 도로의 규모에 따른 위계가 명확하다.
[특징]
「인천부」 지도는 왼쪽이 동쪽이다. 인천도호부를 중심으로 그려졌으며, 지금의 시흥시 영역에 포함되는 신고개면, 황등천면, 전반면의 명칭과 함께 관아로부터의 거리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전반면까지는 인천 관아에서 40리[약 16㎞]로 가장 멀고, 황등천면이 30리[약 12㎞], 신고개면이 25리[약 10㎞]로 가장 가깝다. 시흥시의 진산인 소래산과 함께 그 아래에는 효자 하우명(河友明)의 비가 있음을 기록해 놓았다. 전반면의 해안가에는 진청신언(賑廳新堰)이 있으며, 지금의 시흥시 포동에 해당하는 마을의 이름이 포촌리(浦村里)로 기록되어 있다. 진청신언은 진휼청 소속의 제언으로 보인다. 인천 관아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도로는 수리산과 소래산의 산줄기를 가로질러 당시 안산군으로 이어진다.
「안산군」 지도는 위쪽이 동쪽이다. 이 지도는 「인천부」 지도보다 간결하다. 각 면의 이름이 수록되지 않았으며, 관아에서 이어지는 도로와 수리산에서 뻗은 산줄기, 그리고 하천이 눈에 띈다. 당시 안산군과 인천부의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에는 지금의 운흥산에 해당하는 오자산이 있으며, 그 남쪽의 해안가에는 정왕산 봉수대가 표기되어 있다. 관아에서 정왕산 봉수대로 이어지는 도로는 중로이고, 인천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금천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대로로 구분되었다. 서해상에는 육지에 인접하여 오이도가 표기되어 있으며 산줄기까지 그려져 있지만, 다른 지도와 달리 몇 호가 거주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지도상에 빠져 있다. 이 지도의 주기에는 안산군의 별칭이 연성(蓮城)이라는 표현과 함께,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서해상의 오질이도(吾叱耳島)[지금의 오이도]와 석을주도(石乙注烏)[지금의 옥구도]를 언급해 놓은 특징이 있다. 연성은 지금의 시흥시 연성동과 한자 표기가 같다.
[의의와 평가]
1750년대를 전후한 시흥과 그 주변 지방의 읍치, 주요 시설, 도로망, 산, 하천 등 인문지리적 특징과 자연지리적 특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제작된 지도이다. 당시의 지도 제작 기술이 뛰어나지 않아 지리적 특징을 정확하게 묘사하지는 못했지만, 회화식으로 지도를 제작하여 지방 통치에 활용하였다는 점과 지도 주위에 상세한 설명문을 포함하여 지리지의 성격을 갖추도록 만들어진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