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 박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527
한자 潘南朴氏
영어공식명칭 Bannam Bak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우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반남 -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묘소|세장지 박동량 선생 묘 및 신도비 - 경기도 시흥시 시흥대로 219-42[군자동 산22-2]지도보기
성씨 시조 박응주
입향 시조 박동량

[정의]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을 본향으로 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반남 박씨(潘南朴氏) 가문은 고려 말엽부터 두각을 나타내다가 박응주(朴應珠)의 6세 박은(朴訔)이 조선 건국의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금천부원군(錦川府院君)에 책봉되면서 융성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조에 걸쳐 과거 급제자 219명, 정승 7명, 대제학 2명, 왕비 2명[의인왕후(懿仁王后), 인성왕후(仁聖王后)]의 명신유현(名臣儒賢)을 배출하였다. 조선 후기에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박세채(朴世采), 박지원(朴趾源), 박규수(朴珪壽)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적으로는 대체로 서인(西人) 계열로서 노소론(老少論)을 가리지 않는 가문이었다.

[입향 경위]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扈從)한 공으로 금계군(錦溪君)에 봉해졌던 13세 박동량(朴東亮)[1569~1635]의 묘를 시흥시 군자동 산뒤마을군자봉 아래에 쓰면서 시흥과 인연을 맺었다. 박동량의 직계 후손으로는 선조의 부마(駙馬)[사위]가 된 큰아들 미(瀰), 15세인 소론의 영수 박세채, 17세인 성리학자 박필주(朴弼周), 19세인 실학자 박지원, 21세인 박규수 등이 있다. 이들 모두 반남 박씨 오창공파(梧窓公派)의 후손들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다.

[현황]

통계청의 2000년 인구 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시흥시에 거주하는 반남 박씨는 306가구 1,030명이다.

[관련 유적]

박동량 선생 묘 및 신도비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으며 경기도 시흥시 시흥대로 219-42에 있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던 반남 박씨 사당인 충익재(忠翼齋)를 2014년 묘역 옆으로 재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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