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173
한자 君子洞
영어공식명칭 Gunja-dong
이칭/별칭 군자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2년 2월 5일연표보기 - 경기도 안산군 마유면 군자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 - 경기도 안산군 마유면 군자리에서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으로 편입 및 승격
변천 시기/일시 1989년 1월 1일 -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에서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으로 승격
성격 행정동
면적 4.17㎢
가구수 140가구
인구[남/여] 327명[남자 175명, 여자 152명]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군자동은 시흥시의 서남부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법정동인 거모동을 관할한다.

[명칭 유래]

군자동은 마을 인근에 유명한 군자산이 있어 군자리로 칭하다가 군자동으로 되었다. 군자산의 명칭 유래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이 안산군 와리면 목내리[지금의 안산시 목내동]에 있는 어머니 묘소에 가는 길에 이 산을 보고 마치 연꽃처럼 생겨 군자의 모습과 같다 하여 군자산이라고 했는데, 조선 후기에 군자봉으로 개칭하였다. 군자동은 ‘연꽃처럼 생겨 군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큰 산, 군자봉 아래 마을’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군자동은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마유면의 구정리와 산북리였다. 1912년 2월 5일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호로 안산군 내 동리의 구역과 명칭을 변경할 때 군자리로 합쳐졌다. 그 뒤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1914년 3월 1일을 기해 안산군시흥군과 수원군으로 분리 통합될 때 시흥군에 속하게 되었으며, 같은 해 3월 13일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3호에 따라 옛 안산군마유면, 대월면, 와리면을 합쳐 군자면을 설치함에 따라 시흥군 군자면에 속하게 되었다. 1989년 1월 1일 시흥군이 폐지되고 소래읍, 수암면, 군자면을 합쳐 시흥시로 승격되자 시흥시 군자동이 되었다.

[자연환경]

군자동군자봉을 중앙에 두고 넓게 분포한 지역으로 북동쪽에는 능곡동, 북쪽으로는 장곡동, 서쪽으로는 정왕동, 서북쪽으로는 월곶동, 남쪽으로는 거모동과 안산시에 접한다.군자봉이 있으며 제기천이 흐른다.

[현황]

2017년 12월 현재 면적은 4.17㎢, 인구는 140세대에 총 327명[남자 175명, 여자 152명]이다. 문화재로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9호 영응대군 묘 및 신도비와 시흥시 향토유적 제 12호박동량 선생 묘 및 신도비가 있다. 시흥시의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이 되지 않은 농촌 지역이다.

[자연 마을]

군자동에는 산뒤마을, 새터말, 구지정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산뒤마을과 새터말은 시흥군에서 시흥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군자1리였다. 산뒤마을은 조선시대에는 산북리라 불렸는데, 군자봉 뒤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복 무렵 산뒤마을과 새터말의 가구 수는 각각 50호, 20호였다. 산뒤마을에서 오래 산 성씨는 문화 류씨(文化柳氏)이며 새터말에 많이 살았던 성씨는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새터말은 공장이 많이 들어서면서 경관이 크게 바뀌었고, 산뒤마을 입구에도 공장이 들어서 국도39호선 변에는 마을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없다.

구지정마을은 구준물이라고도 불린다. 군자디지털과학고등학교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내에 9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모두 물이 좋아 장수촌으로도 알려졌다. 이 마을은 산 밑에 양지편, 큰말, 아랫말 등 3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100호 조금 못 되는 마을이었는데 전주 이씨(全州李氏)들이 한때 20여 호 거주했다고 한다. 구준물은 예로부터 ‘설기황당'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마을에 입향한 성씨들을 순서대로 나열한 말이라고 하며, 전주 이씨 영응대군파는 후대에 이 마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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