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485
한자 生金-
영어공식명칭 Saenggeum Hous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시흥시 죽율동 597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방문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3년연표보기 - 생금집 건립 추정
문화재 지정 일시 1994년 10월 20일연표보기 - 생금집 시흥시 향토유적 제7호 지정
현 소재지 경기도 시흥시 죽율동 597 지도보기
성격 전통 주택
양식 'ㅁ'자형 전통 가옥
정면 칸수 안채 12칸|바깥채 6칸|규모 149.84㎡
소유자 시흥시
관리자 시흥시
문화재 지정 번호 향토유적 제7호

[정의]

경기도 시흥시 죽율동에 있는 자연 마을 부농의 전통 주택.

[개설]

생금집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것으로 시흥시 죽율동의 자연 마을인 한배미마을의 중심에 있다. 오래전부터 금녕 김씨(金寧金氏)가 이곳에 세거했으며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경기도 가옥의 형태를 잘 보여 주고 있는 향토유적이다. 생금집은 건물이 세워진 연원과 관련된 전설도 내려와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문화 자원으로 지금도 이야기 자원이자 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용되고 있다.

생금집의 내력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금녕 김씨인 김창관(金昌寬)[1845~1929]은 원래 한배미마을에 살았다. 어느 날 마을로부터 10여 리 떨어진 덕물도[지금의 시흥시 정왕동 옥구도]에 나무 하러 갔다가 노란 깃털을 가진 닭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집에 가져와 보자기로 곱게 싸서 골방의 반닫이 속에 두었다. 닭을 쌌던 보자기에 깃털 하나가 떨어져 있었는데 금이었다. 금인 것을 확인한 후 반닫이를 열어 보니 떨어진 닭털이 모두 금이었다. 그는 황금 깃털을 모아 땅도 사고 집도 지었는데, 이 집이 생금집이다. ‘생금(生金)집’, 즉 금이 생겨서 지은 집이라 한다.

본래 전설은 여기까지였는데 확장된 이야기도 전한다. 그 후 소문을 듣고 출가한 딸이 찾아와 황금 닭을 몰래 훔쳐가니 평범한 닭으로 변하였다. 딸이 뉘우쳐서 돌아오니 다시 금으로 바뀌었다. 혹은 닭이 아니라 평범한 돌로 변했는데 다시는 황금 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위치]

생금집경기도 시흥시 죽율동 597 한배미마을에 있다. 죽율동은 조선시대 안산군 마유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부터 시흥군 군자면으로 편제되었다. 자연 마을은 큰말, 한배미, 새말, 정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한배미마을은 큰 논배미를 이르는 말로, 농업 중심의 마을을 뜻한다. 마을 중심에는 생금집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집은 마을 뒤편의 언덕배기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앞쪽으로 넓은 들이 내려다보인다. 지금은 마을에 도로가 개설되고 영세 공장들이 곳곳에 있다. 또한 생금집 좌측 구릉에 서향으로 이양신(李亮臣) 묘가 자리 잡고 있다.

[변천]

생금집은 금녕 김씨 자손이 12대째 세거하고 있는 곳으로 한배미마을에 있는 부농(富農)의 주택이다. 안채는 종도리[마룻대]의 상량 묵서명(上樑墨書銘)에 ‘대정이년계축이월이십사일(大正二年癸丑二月二十四日)’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시흥시의 조사에 따르면 같은 시기에 개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생금집은 1913년 혹은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로도 부분적인 개보수는 있었지만 김창관이 집을 지은 이래 후손들이 2005년 초까지 살면서 기본적인 가옥 구조는 원형대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차츰 허물어져 가자, 보수 정비를 위해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대들보 등 가옥의 중요한 받침이 손상되어 있었다. 이에 시흥시는 토지와 가옥을 매입하여 완전히 복원 개수하였다. 왜냐하면 생금집은 조선 후기 시흥 지역의 전통 가옥과 생활 모습을 충실히 보여 주며, 얽힌 전설이 더해 오늘날에도 보편적인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역사 문화 자원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시흥시에서는 1994년 10월 20일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하였다.

[형태]

생금집은 안채가 12칸, 바깥채가 6칸으로 장독대와 외양간을 갖춘 구조이며, 규모는 149.84㎡이다. 전체적인 배치는 대칭되는 모서리가 트여 있는 'ㅁ'자형이다. 즉, 장방형(長方形)[직사각형]의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이다. 바깥채 앞쪽에는 타작(打作)을 할 수 있는 바깥마당이 있고, 그 왼쪽에는 근래에 지은 벽돌조의 창고가 있다. 안채 뒤쪽과 옆쪽에도 뒤란[뒤뜰]과 샛마당이 있고 이곳에 장독대와 우물이 있다. 안채와 바깥채 사이에는 샛대문을 두어 안마당에서 주변의 다른 공간으로 출입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안채는 건물 앞쪽에 툇간이 달린 전퇴(前退) 구조의 5량집이다. 칸살[일정하게 둘러막은 건물의 공간]은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툇마루가 달린 1칸 안방이 있고, 4칸 부엌이 그 앞에 꺾여 있다. 대청 후면 벽의 판문(板門)과 그 상부의 유리 완자창의 구성은 일제강점기의 수법이다. 부엌은 근래 입식(立式)으로 개조하였다. 대청 오른쪽에는 툇마루가 달린 1칸 반짜리 건넌방이 있고, 옆에는 반 칸 부엌이 연이어 있다. 이 집의 칸살 또한 대청과 부엌의 기둥 열이 반 칸 어긋나게 되어 있어 경기 지역 주택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바깥채는 특이하게 홑집과 겹집이 혼용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문간과 헛간, 외양간이 있는 부분은 측면 칸이 1칸인 홑집이고, 광과 문간방이 있는 부분은 측면 칸이 2칸인 겹집으로 되어 있다. 칸살 구성은 대문간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각각 1칸씩의 헛간과 외양간이 있고, 대문간 오른쪽에는 1칸 반의 문간방이 있고 뒤로 꺾이어 4칸 광이 있다. 이 집은 튼 'ㅁ'자형의 건물 배치와 샛문, 안채, 대청과 부엌의 기둥 열이 반 칸 어긋나게 된 칸살, 방화벽(防火壁)의 폐쇄적 입면 등 20세기 초 경기 지역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현황]

생금집은 시흥시 향토유적으로 지정한 이래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고, 원형을 유지한 채 문화재로 관리 및 보호하고 있다. 또한 풍부한 이야기를 지닌 문화유산으로 교육 장소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생금집은 금녕 김씨 자손이 12대째 세거하고 있던 곳으로, 인근에 널리 알려진 전설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 가옥은 시흥 지역 전통 가옥의 생활 모습을 비교적 충실히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될 뿐 아니라, 전설이 만들어진 장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옛 생활 모습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시흥 관내에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문화유산의 현장이자 교육 장소로 보존의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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