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193
한자 竹栗洞
영어공식명칭 Jugyul-dong
이칭/별칭 죽율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시흥시 죽율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조선시대 말 - 경기도 안산군 마유면 죽율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 - 경기도 안산군 마유면 죽율리에서 경기도 시흥군 마유면 죽율리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14년 3월 13일 - 경기도 시흥군 마유면 죽율리에서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89년 1월 1일 -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에서 경기도 시흥시 죽율동으로 승격 및 개칭
성격 법정동
면적 1.805㎢
가구수 2,601가구
인구[남/여] 6,247명[남자 3,219명, 여자 3,028명]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법정동.

[개설]

죽율동은 경기도 시흥시 서남부에 있는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정왕본동에서 관할한다.

[명칭 유래]

죽율동은 예전에 대나무와 밤나무가 무성하였다 하여 ‘죽율리’라 불렀다고 하지만, 죽율리의 한글 이름이 ‘대암이’라는 기록이 있어 죽율은 ‘대암이’라는 고유어를 한자로 표기하기 위한 차자(借字)일 가능성이 높다. ‘대암이’는 마을 서쪽 숫통뫼산에 있던 큰 바위를 ‘대암(大巖)’이라 일컫었는데, 그 후 민가가 들어서면서 마을 이름을 바위 이름을 따서 대암이라 했다고 한다. 이 바위는 1922년 군자염전 조성 당시에 제방 축조 공사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죽율동은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마유면 죽율리였다.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안산군시흥군과 수원군으로 분리 통합될 때 시흥군에 속하게 되었으며, 같은 해 3월 13일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3호에 따라 안산군마유면, 대월면, 와리면을 합쳐 군자면을 설치하면서 시흥군 군자면에 속하게 되었다. 1989년 1월 1일 시흥군이 폐지되고 소래읍, 수암면, 군자면을 합쳐 시흥시로 승격되자 시흥시 죽율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행정동은 정왕본동이다.

[자연환경]

시흥시 중심부에서 서남쪽에 자리하는 죽율동은 동쪽으로는 거모동과 경계를 이루고, 북서남쪽으로는 대부분이 정왕동과 연이어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과 맞닿아 있다. 죽율동은 낮은 야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지세로 유난히 고개가 많던 마을이지만, 현재는 도로와 택지 개발로 대부분의 고개가 사라졌다. 군자염전이 있을 당시 염전 저수지가 있던 곳에는 수로에 농수 공급 조절을 위한 바라지[수문]가 있다. 마을 외곽으로는 여전히 많은 농경지가 남아 있다.

[현황]

죽율동은 2017년 12월 현재 면적은 1.805㎢, 인구는 2,061세대에 총 6,247명[남자 3,219명, 여자 3,028명]이 거주하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섰지만, 외곽으로는 농경지가 많이 남아 있고 동쪽으로는 대부분 논이 펼쳐져 있다. 앞방죽들 논 사이로 평택시흥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서시흥요금소가 있다. 학교는 유일하게 생금초등학교가 있고, 황금닭의 전설을 지닌 시흥시 향토유적 제7호 생금집이 있다.

[자연 마을]

서쪽으로부터 동북쪽으로 대암[일제강점기부터는 한배미라고 부름], 새말, 큰말, 정촌 순으로 자연 마을이 있었으나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오면서 마을의 모습이 변하였다. 봉화로를 따라 자리한 정촌[대장간마을]은 여전히 마을 단위가 남아 있으나 임대형 공장들이 많이 자리 잡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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