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동 고인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406
한자 君子洞-
영어공식명칭 Gunjadong Dolmen
이칭/별칭 군자동 지석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1352번지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방문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연표보기 - 군자동 고인돌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발굴 조사 수행
보수|복원 시기/일시 2009년 12월 - 군자동 고인돌 산들공원 내 이전 복원 정비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4년 12월연표보기 - 군자동 고인돌 구지정마을에서 최초 발견 보고
소재지 산들공원 -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1352번지 지도보기
성격 고인돌
양식 탁자식
크기(높이,지름) 2.5m[길이]|1.8m[너비]|85㎝[높이]
관리자 시흥시

[정의]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무덤.

[개설]

시흥시 군자동에서 처음 발견되어 지금은 시흥시 거모동 산들공원 내부로 이전 복원한 고인돌로, 한반도 서해안의 청동기시대 묘제의 형태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위치]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354번지 구지정마을에서 처음 발견되어 지금은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1352번지 산들공원 내부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군자동 고인돌은 2004년 12월 시흥 군자봉 성황제 관련 학술 고증 조사를 수행하던 인하대학교 서영대 교수와 국립민속박물관 장장식 박사가 발견하여 시흥시청 향토사료실에 제보하면서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발견 당시 고인돌 주변은 건물 담장이 덮개돌을 가로지르고 건축 폐자재 등이 흩어져 있어 훼손 위기에 있었다. 2005년 경기도는 세종대학교 하문식 교수 등 관련 전문가와 함께 현장 확인 후 학술 조사 및 보존 정비 계획을 세웠다. 2007년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수행하였고, 그 결과 고인돌의 현황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군자동 고인돌 주변의 기존 가옥 등 입지 문제로 복원이 어려워지자 조사단과 전문가들은 근방에 고인돌 이전 부지를 정하고, 2009년 가을 인근 거모동에 조성 중이던 산들공원 내 상단부에 이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형태]

전체적인 모양은 장방형 판상에 가까운 굄돌 3~4매 위에 덮개돌을 얹은 탁자식 고인돌이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5m, 너비 1.8m, 높이 85㎝이다. 굄돌의 규모는 길이 1.4~2m에 달하는 등 일정하지 않은 편이다.

[출토 유물]

고인돌과 관련된 직접적인 유구(遺構)나 유물 등 청동기시대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고, 고인돌 남쪽 도랑의 내부 교란층(攪亂層)에서 조선시대 자기 조각 등이 수습되었다.

[현황]

군자동 고인돌산들공원 내에 이전 복원하여 청동기시대 탁자식 고인돌의 형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인근의 안현동, 군자동 일대에서도 청동기시대 주거지로 추정되는 무늬 없는 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 유물 산포지가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정식 발굴 조사가 진행된 것이 고인돌 2기에 불과하여 시흥시의 청동기시대 문화를 해석할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다. 다만 시흥시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시대 유적 대부분이 나지막한 구릉 정상에 있고, 거친 질그릇이나 도자기의 밑감이 되는 흙인 태토(胎土)의 무늬 없는 토기와 돌칼[석도(石刀)] 등 석기가 수습되고 있어 일반적인 한반도 서해안 청동기시대 문화상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집단생활이 고도화하면서 사회적인 계층이 분화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청동기시대는 주거지와 묘제에서 계층 분화의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데, 특히 무덤인 고인돌은 규모와 무게, 이동 및 설치라는 측면에서 많은 노동력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 권력이 나타났음을 추정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시흥시는 한반도 서해안 청동기시대의 문화상을 살필 수 있는 고인돌 분포 양상을 보인다. 군자동 고인돌은 완전하지 않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2018년 현재 시흥시에서 확인된 총 13기의 고인돌 중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이다. 특히 주변 지역인 계수동 고인돌과 안산시 선부동 고인돌, 김포 지역의 고인돌이 개석식(蓋石式)임에 반해 탁자식(卓子式) 고인돌이라 한반도 서해안 지역의 새로운 연구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한편 구지정마을의 촌로들은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고인돌에 고사를 지내거나 고깃배의 닻줄을 매기도 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군자동 고인돌은 본래 무덤으로 만들어졌지만, 마을 내 세대를 거듭하면서 다른 의미와 용도로 기억되는 유물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 변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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