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수동 고인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402
한자 桂壽洞-
영어공식명칭 Gyesudong Dolmen
이칭/별칭 계수동 지석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 산258-1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방문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청동기시대 - 계수동 고인돌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 11월연표보기 - 계수동 고인돌 한양대학교 박물관 발굴 조사 수행
소재지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 산258-1 지도보기
성격 고인돌
양식 바둑판식[남방식]
크기(높이,지름) 3.15m[길이]|2.62m[너비]|55㎝[높이]

[정의]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개설]

시흥시 계수동 산258-1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바둑판식[남방식] 고인돌로, 매장 주체부가 지하에 있고 거대한 덮개돌이 지상에 드러난 형태이다. 고인돌에서 유물이 직접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변 구릉지와 인근 안골 일대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거주한 부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수동 고인돌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안골 주민들에 의해 장승제도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계수동 고인돌계수초등학교에서 안골로 들어오는 입구 오른쪽에 있으며 주소는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 산258-1번지이다. 고인돌 뒷편에는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으며 전방 약 10m 떨어진 남쪽 지점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현재 고인돌이 자리한 곳은 본래 자리에서 36m 떨어진 곳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9년 11월 도시 계획에 따라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하였다. 원래 위치는 계수동 안골마을 입구 오른편에 있었다. 도로 공사로 서쪽 36m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이전 복원하였다. 발굴 조사 중 계수동 주민들의 제보로 지금의 고인돌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야산 구릉지에서 3기의 고인돌이 새로 확인되었다. 이후 2018년 현재까지 계수동 일대에서 고인돌은 모두 9기가 확인되었다. 이 중 정식으로 조사된 것은 2기이다. 조사 발굴은 한양대학교 박물관이 수행하였으며 계수동 산258-1번지, 계수동 산237-3번지에 있는 고인돌 2기이다. 나머지 대부분 고인돌은 덮개돌만 지상에 드러난 바둑판식이며 주변에서 간돌도끼[마제석부(磨製石斧)]와 무늬 없는 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 조각들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계수동 안골 일대는 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취락지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형태]

계수동 고인돌은 지하에 매장 주체부를 두고 지상에 큰 덮개돌이 놓여 있는 바둑판식 고인돌 형태이다. 지상의 덮개돌은 호상(縞狀) 편마암으로 부정형에 가까운 마름모꼴이나 상면은 평평한 모양이다. 규모는 길이 3.15m, 너비 2.62m, 높이 55㎝이다. 덮개돌 아래의 받침돌은 네 면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지금은 3면만 남아 있다. 서쪽의 것은 녹니석(綠泥石) 편암의 암질이고, 북서쪽과 북쪽의 것은 덮개돌과 같은 호상 편마암 재질이다. 고인돌의 장축(長軸) 방향은 안골마을 앞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개천 방향과 일치한다.

[출토 유물]

매장 주체부인 고인돌 내부 출토 유물은 없으나, 발굴 조사 중 주변에서 간돌끌[마제석착(磨製石鑿)] 조각, 무늬 없는 토기 조각 등이 수습되었다고 한다.

[현황]

계수동 고인돌은 도로와 마을 입구가 맞닿는 곳에 이전 복원하면서 일반인들이 야외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정비해 두었다. 고인돌이 세워진 주변 땅은 정지하여 평평하게 만들고 자갈을 깔아놓았다. 일반인의 직접적인 훼손을 막기 위해 정사각형 모양의 금속 재질 울타리를 설치하였고, 바깥에 사각형의 석재 타일을 평행하게 둘러 고인돌까지의 이동선을 나타내었다.

[의의와 평가]

경기도 시흥시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발견된 곳은 계수동이다. 다른 지역의 고인돌과는 달리 과거에는 계수동 안골 주민들에 의해 해마다 장승제가 거행되기도 하였다. 계수동 안골 장승 고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1년에 한 번씩 음력 10월에 길일을 택해 풍년과 무병을 기원하기 위해 거행되어 왔다. 계수동 고인돌 바로 서쪽 곁에 남자 장승을 세우고, 근방 약 250m 떨어진 산기슭에 수령 100년 이상의 느티나무 아래 여자 장승을 세워 풍년, 다산, 무병 등을 기원해 왔다. 일반적인 장승과는 달리 소나무를 적당하게 다듬어서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붓으로 그려 만들었다고 한다.

계수동 안골 장승 고사를 끝낸 후 한 해 동안 남자 장승은 마을 뒷산 기슭에 세우고, 여자 장승은 마을 앞산[계수초등학교 앞산] 기슭에 세웠다. 이처럼 고인돌과 장승제가 연결되어 온 풍습은 지방 문화의 한 단면을 나타내고 있다. 고인돌이 단순히 고대의 무덤 기능뿐 아니라 마을 수호와 풍요, 다산을 기원하는 마을 주민들 바람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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