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위원회 선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375
한자 人民委員會選擧
영어공식명칭 People's Committee Elec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훈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0년 7월 26일~7월 27일 - 시흥군인민위원회 위원 선출 투표 실시
성격 정치 단체
관련 인물/단체 박종준|박성수

[정의]

1950년 북한에 점령된 상태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투표를 통해 인민위원을 선출한 행위.

[개설]

북한은 점령 지역의 일선 정치·행정을 수행할 인민위원회를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선거를 통해 구성하였다. 경기도 시흥군에서는 1950년 7월 26일~7월 27일 면·리 단위의 선거를 실시하여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시흥군인민위원회는 토지 개혁에 착수했으나, 1950년 8월부터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의용군 모집과 전시 원호 물자 수집에 주력하였다.

[역사적 배경]

북한은 6.25전쟁 당시 점령 지역에 임시 인민위원회를 예외 없이 설치하였다. 북한은 임시 인민위원회에 합법성을 부여하여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1950년 7월 14일 남한 점령 지역 인민위원회 선거에 관한 정령을 발표하고, 1950년 7월 25일부터 9월 13일까지 군(郡)·면(面)·리(里)·동(洞) 인민위원회 선거를 실시하였다.

[경과]

리 단위의 경우 리 총회를 통해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군과 면 단위에서는 대표자 대회를 통해 인민위원을 뽑았다.

[결과]

대표자 대회를 통해 시흥군 군자면 인민위원회 위원장은 박종준, 시흥군 수암면 인민위원회 위원장은 박성수가 선출되었다. 박종준 면 인민위원장은 8월13일 과거 사상 전향 전력이 드러나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1950년 7월 구성된 인민위원회의 주된 활동은 두 가지였다. 첫째, 남한 토지 개혁 총괄 지도 기관인 중앙지도위원회 훈령에 따라 토지 개혁 업무를 주관하는 일이었다. 둘째, 사회 개혁 명목으로 경찰·군인·공무원·지주·반공 청년단원을 색출 검거하며 주민 사상 교육을 강화하는 일이었다.

토지 개혁의 경우 각 리마다 토지개혁실행위원회를 구성하고 토지 몰수 작업에 착수하였다. 시흥군은 경기도 다른 지역에 비해 토지 개혁의 실효성이 낮았다. 경기도 전체 토지 개혁 실시 지역은 64%의 토지 몰수 실적을 보였으나, 시흥군은 5정보[약 4만 9587㎡] 이상 토지 소유자가 적어 토지 몰수 비율이 낮았다. 그러나 부천군 소래면 포리[지금의 시흥시 포동] 지역의 염전과 어선은 국유 재산으로 간주되어 인민위원회가 압수하였다.

1950년 8월부터는 인민위원회의 역할이 의용군 모집과 전방으로 보낼 전시 원호 물자 수집 등에 집중되었다. 1950년 8월 9일 각 리 인민위원장이 모여 18세 이상 37세 이하 청장년을 적극적으로 의용군으로 입대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군자면은 8월 19일 500명이 참가하는 청년 궐기대회를 열었으며, 수암면도 비슷한 궐기대회를 통해 300명을 의용군으로 강제 징집하였다.

[의의와 평가]

시흥 지역의 인민위원회는 선거라는 절차를 거쳤으나 불과 1개월여 활동하는 데 그쳤다. 시흥군인민위원회는 북한 조선노동당의 말단 행정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하였으나, 당초 의도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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