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렴나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097
영어공식명칭 Noryeomnaru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시설
지역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나루

[정의]

경기도 시흥시 소래철교가 생기기 전 시흥에서 인천을 오가는 배를 타고 내리던 나루.

[개설]

노렴나루는 지금의 소래포구를 이르는 표현으로 시흥 주민들이 인천을 오갈 때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던 나루였다.

[건립 경위]

본래의 노렴나루수인선 달월역이 생기기 이전 월곶동에서 소래역으로 가기 위해 시흥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던 나루이다. 배가 닿는 소래포구 인근에 위치한 노렴마을의 이름을 따서 ‘노렴나루’라고 하였다. 월곶동 쪽에서 건널 때는 소리를 쳐서 건너편에 있는 사공을 불러야 했는데, 도선료는 배를 이용할 때마다 지불하였다.

[변천]

노렴나루수인선 소래철교가 생기면서 그 기능을 중단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전매국(專賣局)에서는 소래철교 위에 널판을 깔아 염전을 왕래하는 염부들의 통행을 돕고자 하였으나 철도국(鐵道局)에서 이를 반대하여 널판을 철거하였고, 철교 위로 사람이 다니지 못하게 하였다. 이 일로 노렴나루가 부활하게 되었으며 군자면[지금의 시흥시 군자동] 일대에서 인천으로 나가는 사람들 외에 염전으로 출퇴근하는 사람까지 이 나루를 이용하여 한때는 도선객이 늘어나기도 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소래철교가 잠시 인도교의 역할을 겸하게 되어 나룻배로 건네주는 일은 사라지게 되었다. 노렴나루의 나룻배는 6.25전쟁 중에 소실되었다가 전쟁 후 다시 운행을 재개했는데, 이때의 나룻배는 염전 소속의 배였다. 그러다 수인선 달월역이 생기면서 배로 건너는 일도 없어지고, 나룻배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황폐해진 노렴나루 일대는 1960년대 중반 실향민이 자리를 잡으면서 변화하게 되었다. 이들은 인천·시흥 일대의 원주민에 밀려 황폐하던 소래포구에 정착하게 되었고, 소래철교로 인하여 원래 어항(漁港)으로 번성하였던 포리[지금의 시흥시 포동] 일대가 쇠퇴하면서 소래포구가 점차 번성하게 되었다.

[구성]

노렴나루를 이용한 이들은 주로 군자면 일대 사람들이었으며 인천 사람들이 노렴나루를 통해 시흥 방면으로 오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군자면 일대 사람들은 인천으로 장을 보러 갈 때 곡물 등을 짊어지고 가서 판 후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왔다.

[현황]

노렴나루가 있던 소래포구는 포리 일대가 쇠퇴하면서 번성하게 되었고, 현재는 어선 정박 시설을 갖춘 어항이자 연간 1만 5000여 명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발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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