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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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 한적한 교외 지역이었던 시흥은 1977년 서울의 철거민들이 복음자리마을을 조성하면서 철거 이주민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는 한편 정부의 도시 빈민 주거 정책 부재를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복음자리마을 옆에 들어서기 시작한 신천동 83번지 무허가 판자촌은 1993년 화재 사건을 계기로 도시 개발에 따르는 철거 투쟁이라는 그림자를 분명하게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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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복음자리마을 170세대가 1978년 출자금을 모아 설립한 금융 관련 협동조합. 복음신용협동조합은 복음자리마을 이주 과정에서 빌린 융자금을 갚고, 복음자리마을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기 위해 1978년 5월에 설립되었다. 철거 이주민 170세대가 형편대로 출자하였으며 출자금의 10배 한도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복음신용협동조합은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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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복음자리를 중심으로 진행된 철거 이주민의 지역 복지 주민 운동. 복음자리 빈민 운동은 도시 철거민의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조차 없었던 1970~198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 집단 이주를 성사시킨 자생적 주민 운동이다. 제정구(諸廷坵)와 정일우(鄭日祐)[John Vincent Daly] 신부가 주민들과 함께 경제적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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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던 자연 마을. 복음자리마을은 1977년 도시 빈민 운동가 제정구(諸廷坵)와 정일우(鄭日祐) 신부[John Vincent Daly]의 주선 아래 서울 양평동, 문래동 등 안양천 주변의 판자촌 철거민이 처음 세운 마을이다. 이후 서울 시흥동, 난곡동, 사당동, 목동 등의 철거민들이 들어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다. 삶의 터전,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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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의 행정동 명칭과 자연 마을의 이름에는 낯설지만 정겨운 순우리말의 뜻과 함께 마을의 역사와 인물, 자연환경의 특색 등을 내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도시 개발 과정에서 자연 마을이 사라지고 있지만, 마을을 부르던 이름만은 남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신천동은 신촌(新村)의 앞 글자 신(新), 사천(蛇川)의 뒷 글자 천(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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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복음자리마을에서 단오 때 행하는 마을 잔치. 복음자리마을은 1977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양남동, 문래동 등지의 철거 판자촌 주민 170세대가 공동 이주해 형성되었다. 당시 주민들은 '가난하지만 빈곤하지 않은 마을 공동체'를 꿈꾸며 주민 스스로의 참여와 활동을 통해 경제·교육·생활 공동체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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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공동체 지역 복지 활동을 펼치는 기관. 작은자리종합사회복지관은 사회복지사업법의 규정에 근거하여 모든 지역 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의 질을 보장받고 복지 사회 건설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기관이다. 저소득층의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지역 발전을 이루는데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공동체 지역 복지 운동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에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