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용협동조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737
한자 福音信用協同組合
영어공식명칭 Bogeum Credit Cooperative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훈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78년 5월 7일연표보기 - 복음신용협동조합 창립총회 및 설립
발단 시기/일시 1977년 말 - 복음자리마을 조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복음신용협동조합 소식지 『복음신협』 발행
발생|시작 장소 복음자리마을 - 경기도 시흥군 소래읍 신천리 지도보기
성격 금융기관
관련 인물/단체 복음자리마을|제정구|정일우

[정의]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복음자리마을 170세대가 1978년 출자금을 모아 설립한 금융 관련 협동조합.

[개설]

복음신용협동조합복음자리마을 이주 과정에서 빌린 융자금을 갚고, 복음자리마을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기 위해 1978년 5월에 설립되었다. 철거 이주민 170세대가 형편대로 출자하였으며 출자금의 10배 한도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복음신용협동조합은 주민들의 자립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경제적 유대 관계 못지 않게 복음자리마을의 사회적 인간관계를 확대하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역사적 배경]

복음자리마을 주민들은 집단 이주 후에 독일의 천주교 후원 재단 미제레올(Misereor)에서 빌린 토지 매입 대금 5만 달러와 주택 건축 등을 위해 융자 받은 자금을 갚아야 할 상황이었다. 이주 과정을 주도했던 제정구는 '출자금을 바탕으로 지역 사람들을 자립할 수 있게 하는 협동 조직'을 만들어 보자는 착상에서 복음신용협동조합의 설립을 추진하였다.

[경과]

복음신용협동조합은 “일인은 만인을 위해, 만인은 일인을 위해”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불신과 반목이 가득한 복음자리마을을 신뢰의 공동체로 재탄생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소득이 낮은 복음자리마을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반별로 매일 아침 저녁 출자금을 모으러 다녔다. 또한 신용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육과 아울러 다양한 건강 강좌와 주민 토론 모임, 친목회를 열어 주민들과의 친목을 도모하였다. 1981년부터는 1년에 두 번 『복음신협』이라는 소식지도 발간하였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신용협동조합에서 빌려주는 대출금이 매우 요긴하였다. 신용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깨달은 주민이 늘어나면서 복음신용협동조합복음자리마을에서 신뢰를 받는 금융기관으로 자리를 잡아 나갔다.

[결과]

1980년대 들어 복음자리마을 주민의 90% 이상이 복음신용협동조합에 가입하였다. 서울 양평동 판자촌 시절부터 고질(痼疾)이었던 고리 사채도 거의 없어졌다. 독일 융자금을 완납할 수 있었던 것도 복음신용협동조합의 역할이 컸다. 복음신용협동조합은 이후 경기시흥신용협동조합으로 발전하였다.

[의의와 평가]

복음신용협동조합은 신천리 복음자리마을로 이주한 직후 변변한 일터가 없어 살 길이 막연했던 이주민들에게 경제적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자조와 자립의 정신을 불어넣어 마을의 신뢰 관계를 회복시키고, 질서를 세워 가는 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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