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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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제작된 『광여도』에서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는 지도. 『광여도』는 19세기 초반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제작된 회화식 지도이다. 전국의 군현을 개별적으로 그린 군현별 지도와 각 도를 그린 도별 지도로 구성되며, 주요 군사 요충지를 표기하였다. 국가에서 편리하고 합리적인 기호식 지도집을 활용하게 되면서 과거의 회화식 지도의 의미가 감소하게 되었고, 당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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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국팔로분지도』에 포함된 경기도 군현 지도. 『동국팔로분지도(東國八路分地圖)』는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 각 도를 각각 한 장에 그려 넣은 지도로 각 군현의 이름을 비롯하여 하위 행정구역의 명칭·산·하천 등을 표기해 놓았다. 한 폭의 지도에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다 보니 지도의 정확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동국팔로분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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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일대가 포함된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 『여지도(輿地圖)』는 지도에 포함된 지명으로 미루어 1757년(영조 33) 이후부터 1766년(영조 52) 사이에 제작된 지도로 추정된다. 지도의 전반적인 양식은 18세기에 그려진 정상기(鄭尙驥)의 『동국지도(東國地圖)』와 다르게 전통적인 특성이 강한 회화식 필사본이다. 지도의 표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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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에서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는 지도. 『해동지도』는 1750년대 영조 대에 홍문관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의 회화식 지도이다. 각 군현 지도에 주기(註記)를 첨부하였으며, 국가 차원에서 제작하여 정책적 목적에 사용되었다. 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제작되었으며, 조선 전도를 비롯하여 도별도, 군현 지도, 세계 지도 등을 포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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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지리적으로 조선시대 인천부(仁川府)와 안산군(安山郡)에 속해 있었던 반면, 조선시대의 시흥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일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다. ‘시흥’ 하면 떠오르는 곳이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이나 시흥행궁(始興行宮), 시흥사거리를 떠올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다가 1914년 안산군에 속해 있던 군자면·수암면 지역이 시흥군에 편입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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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윤민일의 묘. 윤민일(尹民逸)[1564~1635]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현세(顯世), 호는 지산(芝山)이다. 아버지는 호조좌랑 윤엄(尹儼)이고,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주(金澍)의 딸이다. 셋째 형 윤민헌(尹民獻)과 같이 경기도 파주의 우계서실(牛溪書室)에서 성혼(成渾)에게 수학하였다. 1588년(선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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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 경기도 시흥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일본의 침략 전쟁.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은 1차의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의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를 포함하여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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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시흥시의 역사.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안산군(安山郡)과 인천부(仁川府)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군자·수암권은 안산군의 잉화면(仍火面), 초산면(草山面), 마유면(馬遊面), 대월면(大月面)에 해당한다. 소래권은 인천부의 신현면(新峴面), 전반면(田反面), 황등천면(黃等川面)에 해당한다. 시흥 지역은 조선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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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원에 있었던 조선시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거나 공적인 일에 마필을 공급하던 곳. 중림역(重林驛)은 조선시대 중림역도(重林驛道)에 딸린 7개소 속역(屬驛)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의 역원(驛院) 제도는 고려시대의 것을 이어 받아 발전시킨 것으로 태종~세종 연간에 걸쳐 전국적인 규모의 역로망을 구축하였다. 경기도에는 대로(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