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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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陽村- |
이칭/별칭 | 산양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
[문화유적]
(1) 박춘무삼대창의사적비(朴春茂三代倡義事蹟碑)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운 박춘무(朴春茂)[1544~1611], 이괄의 난·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박동명(朴東命)[1576~1636] 및 손자 박홍규(朴弘遠) 3대의 공적을 기려 1992년 세운 비석이다. 동양촌마을 앞 원모단(遠慕壇)에서 북동쪽으로 100m 지점에 위치한다. 비제(碑題)는 ‘민양공화천당박선생삼대창의사적비(愍襄公花遷堂朴先生三代倡義事蹟碑)’이다.
박춘무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현재 복대동에서 병사를 일으켜 조헌(趙憲)[1544~1592] 의병(義兵)과 더불어 청주성을 탈환하였다. 청주성을 탈환한 뒤에는 진천 지역으로 진군하여 왜적을 십여 일간 포위하고 있다가 격퇴하였다.
박동명은 청주시 강서동 마을에서 태어나 18세에 아버지 박춘무의 휘하로 종군하여 청주성 탈환과 진천 싸움에서 선봉에 섰다. 임진왜란 후 무과에 급제하여 태안군수·제주목사를 지냈으며, 이괄의 난·병자호란 때 아들 박홍원(朴弘遠)[1606~?]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다.
박홍원은 1624년 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경기도 안현에서 관군과 더불어 전공을 세웠다. 박홍원의 사적비는 1993년에 인근 마을인 비하동 주봉마을에 세웠다.
(2) 원모단(遠慕壇)
순천박씨(順天朴氏) 문중에서 배출한 여덟 명의 관료를 제향하는 제단이다. 1930년경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에 거주하는 후손 박창암(朴蒼岩)이 외북동에 설단하였던 것을 1965년 4월 지금의 비하동 위치로 이전하였다. 강서에서 중부고속도로로 가는 국도 변 왼쪽의 강서초등학교 뒷산 자락에 위치한다. 신라시대 박언지(朴彦智), 고려시대 박영규(朴英規), 박숙정(朴淑貞), 조선시대 박중림(朴仲林), 박인년(朴引年), 박진(朴璡), 박원경(朴原卿), 박인용(朴仁龍)의 순서로 배열하였다. 삼문 밖 뜰에는 후손 박종술(朴鍾述)이 비문을 짓고 박성용(朴成鏞)이 글씨를 쓴 순천박씨제단사적비(順天朴氏祭壇事蹟碑)와 23세손 박상덕(朴相德)이 짓고 조수형(趙壽衡)이 글씨를 쓴 원모단기(遠慕壇記) 등이 있다. 제단사적비는 1966년 세운 것이고 원모단기는 1984년 건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