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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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稷 |
영어음역 | Heo Ji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재학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허직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거주지는 개령(開寧)이었다. 아버지는 허좌(許佐)이고, 할아버지는 허돈(許暾)이며, 증조부는 허박(許璞)이다.
[활동사항]
1861년(철종 12) 식년 문과의 병과(丙科) 1위로 급제하여 다음해에 승정원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으며, 곧 청주에 있는 율봉역(栗峰驛)의 찰방(察訪)을 지냈다. 1865년(고종 2)에는 예조정랑(禮曹正郞)을, 1866년 사헌부 지평(持平)을 지냈다.
1867년 사헌부 감찰(監察)로 재직중에는 명륜당(明倫堂)과 비천당(丕闡堂)에서 열린 식년시(式年試)에 시험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870년에는 사간원 정언(正言)을 지냈고 1872년에 자인현감(慈仁縣監)에 제수되어 외직으로 나갔다.
1873년에 사헌부 장령(掌令), 1874년에는 돈녕부 도정(都正)을 지냈으며, 1883년에는 부호군(副護軍)으로서 영남지방의 결역(結役)과 호포(戶布)의 폐단에 대해 비변사(備邊司)에서 감영과 병영을 엄히 신칙하게 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884년에는 승지(承旨)로 임명되었으며, 1886년에는 대사간(大司諫)으로서 갑신정변에 가담한 신기선(申箕善)과 경광국 등을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1886년에는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으며, 1887년에는 동부승지(同副承旨)와 참찬관(參贊官)이 되어 건청궁에서 소대할 때 입시하여 『강목』을 진강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