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의 인물.
[활동사항]
청주사람으로 궁예(弓裔)가 나라를 다스릴 때 같은 고을 사람인 아지태(阿志泰)에 의해 입전(笠全), 관서(寬舒) 등과 함께 참소를 당하였다. 이 일을 해당관리가 심리하였으나, 수년이 지나도록 판결이 나지 않았다. 이때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사건의 흑백을 분간하여 판결을 내려주어 일이 잘 해결되었다.
이 일로 인해 군문의 장교, 종실, 훈현(勳賢)들과 지혜 있고 학식 있는 무리들이 모두 태조에게로 쏠리어 그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