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동 걸뚝마을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1227
한자 浦洞-
이칭/별칭 「포리의 걸뚝에 얽힌 이야기」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병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8년 - 「포동 걸뚝마을 이야기」시흥군에서 편찬한 『시흥군지』에 같은 내용이 「포리의 걸뚝에 얽힌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5년 - 「포동 걸뚝마을 이야기」시흥시에서 편찬한 『시흥의 생활문화와 자연유산』에 같은 내용이 「포동[걸뚝마을]에 얽힌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관련 지명 호조방죽 - 경기도 시흥시 포동|하중동지도보기
성격 지명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스님|인부|원님|사형수
모티프 유형 호조방죽 인신 공양(人身供養) 설화

[정의]

경기도 시흥시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까지 이어지는 호조방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걸뚝시흥시 포동에 속한 자연 마을이다. 이 설화는 1721년(경종 1)에 건너편 하중동 돌장재와의 사이를 막은 길이 약 720m의 호조방죽[호조에서 쌓았다고 하며 호조방죽이라 함]에 얽힌 이야기로, 조선시대 백성의 구휼을 위해 진휼청(賑恤廳)이 호조방죽을 쌓을 때의 어려움이 인신 공양 설화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8년 시흥군에서 편찬한 『시흥군지』에는 「포리의 걸뚝에 얽힌 이야기」로 수록되어 있고, 채록은 포리에 사는 이병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1995년 시흥시에서 편찬한 『시흥의 생활문화와 자연유산』에는 같은 내용이 「포동[걸뚝마을]에 얽힌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시흥시 포동에는 '학의 눈썹처럼 아름답다.'는 이름의 산이 있다. 바로 학미산(鶴眉山)이다. 이 산을 중심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신촌, 새우개, 걸뚝 등의 자연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가운데 걸뚝마을학미산 기슭에서 동남쪽으로 지금의 하중동 샛터마을을 잇는 둑인 ‘걸뚝’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 둑을 완성함으로써 그 위의 미산동, 매화동, 도창동, 하중동, 하상동을 둘러싼 갯바닥을 논으로 바꾸는 간척 사업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둑을 쌓는 작업은 처음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둑을 쌓기만 하면 그냥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자 둑을 쌓는 인부들은 물론, 이 작업을 지휘하는 고을 원님도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 근처를 지나가던 어느 스님이 공사 현장을 둘러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쯧쯧, 공사를 하나마나구나. 둑을 쌓기만 하면 허물어져 버리니….”

곁에 있던 인부들이 이 말을 듣고 스님에게 물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둑이 자꾸 허물어져서 저희들도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스님, 둑을 허물어지지 않게 제대로 쌓을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이 없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 방법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스님의 말에 인부들은 귀가 번쩍 뜨였다.

“둑을 허물어지지 않게 제대로 쌓을 방법이 있다고요? 스님, 어서 가르쳐 주십시오. 저희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실패를 했는지 아십니까? 저희들을 돕는 셈치고 제발 그 방법을 꼭 가르쳐 주십시오.”

인부들은 스님의 옷자락을 잡으며 끈질기게 청했다.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마침내 결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소이다. 여러분이 간절히 원하니 그 방법을 알려드리지요. 반드시 내가 말한 대로 해야 하오. 둑을 쌓는 공사를 다시 시작하되, 그 전에 아무 날 아무 시에 살아 있는 사람 셋을 땅속에 묻으시오. 그다음에 그 위에 둑을 쌓는다면 절대로 허물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오.”

인부들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공사를 하기 전에 살아 있는 사람 셋을 땅속에 묻으라니…. 허물어지지 않을 둑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스님, 땅속에 묻을 사람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한 인부가 물었지만 그때는 이미 스님이 연기처럼 사라진 뒤였다. 인부들은 고을 관아로 가서 그날 있었던 일을 원님에게 그대로 전했다. 인부들이 돌아간 뒤 원님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공사도 좋지만 어떻게 그런 잔인한 방법을 써야 하나? 우리한테는 불가능한 일이야…. 아니야, 생각을 달리하면 그 방법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원님은 불현듯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사형 집행을 주관하는 금부도사(禁府都事)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중죄인 세 사람을 이곳에 보내 사형 집행을 하십시오.”

얼마 뒤 금부도사가 사형수 세 사람을 데리고 시흥 땅으로 내려왔다. 공사 현장에서 곧 사형 집행이 이루어져, 스님이 일러 준 아무 날 아무 시에 사형수들을 산 채로 땅속에 묻었다. 그 뒤 둑을 쌓는 공사는 성공적으로 끝나 다시는 허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포동 걸뚝마을 이야기」는 성덕대왕 신종(聖德大王神鐘)[에밀레종] 설화와 같은 인신 공양 설화이다. 방죽 공사가 어려움을 겪자 스님이 제시한 해결책이 인신 공양이었다. 이로 인해 어렵던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평범한 서사 구조를 이룬다. 이와 같은 설화는 인천광역시 서구 백석동 '한들방죽 설화',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율포리 '도깨비 방죽 설화' 등이 있다. 차이는 스님이 바치라고 한 인신 공양 대상이 '한들방죽 설화'는 장쇠라는 총각 거지이고, '도깨비 방죽 설화'는 어린아이라는 점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