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1094
한자 樓亭
영어공식명칭 Traditional Pavilion and Tower in Korea
이칭/별칭 누각,정자,누대,정사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목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 - 경기도 광명시 오리로347번길 5-6[소하동 1084]
은휴정 - 경기도 시흥시 관곡지로 93[하중동 196]지도보기

[정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사방이 트인 형태로 지은 누각이나 정자.

[개설]

누정(樓亭)은 누대(樓臺), 정사(亭榭)라고도 하며 종류로는 누(樓), 정(亭), 당(堂), 대(臺), 사(榭)로 나뉜다. 누각은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벽이나 문을 두지 않고 높이 지은 큰 집을 뜻하고, 정자는 벽이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는 간소한 형태의 건물이며, 누대는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 올려 만든 건물이다. 당은 벽과 문, 그리고 지붕이 있고 한두 칸 방이 있는 건물을 뜻하고, 사는 높은 언덕이나 대 위에 건립한 정자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누정은 보통 경관이 좋은 산이나 언덕에 자리하여 주변 경치를 둘러볼 수 있는 장소에 세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냇물이나 강, 호수나 바다 주변에도 세우기도 한다. 또는 궁실의 후원이나 개인의 정원 등에도 세우며 지방 고을의 성문이나 변방 관아의 객사에도 세운다.

[변천]

시흥시와 관련한 최초의 누정에 대한 기록은 1531년(중종 26)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중 ‘안산군 제영’ 하단 주에 나온다. “누에 오르매 유월의 뜨거움이 변하니, 곧 바람을 타고 광한루(廣寒樓)에 들어가려 한다.”라고 정이오(鄭以吾)[1347~1434]의 한시를 인용하여 설명하는 내용이지만, 여기서 광한루는 전라북도 남원의 누정이다.

그다음 누정에 대한 기록은 1757년(영조 33)부터 1765년(영조 41)에 편찬된 『여지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전국 1,023개의 누정 기록이 나와 있는데, 이 중 ‘안산’에는 “평근루(平近樓) 관아의 정문”이라는 누정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경기도읍지』 「시흥군읍지」 '누정'에는 '관감정(觀感亭)'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다. '망해정(望海亭)'은 조선 전기 김정경(金定卿)[1345~1419]이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은휴정(恩休亭)'은 시흥의 대표적인 누정의 한 곳으로 시흥시 하중동에 있다. 이 누정이 세워진 시기는 미상이지만 2002년 재건되었다.

[위치와 형태]

시흥 지역과 관련된 누정으로는 평근루(平近樓), 관감정, 망해정, 은휴정 등이 있다. 평근루의 형태는 관아의 정문이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외삼문(外三門)이고 2층은 누마루로 조성되었다. 관감정은 지금의 경기도 광명시 행정구역인 소하동에 있지만, 옛 시흥군에 속해 있었다. 이 누정은 1630년(인조 8)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관직에서 물러나 살던 곳 근처에 있었다. 2018년 현재 관감당(觀感堂)이라는 명칭으로 이원익 종택과 함께 충현박물관 내에 있다. 망해정은 수암봉에서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서해를 볼 수 있는 정자로,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군내면 서정리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은휴정의 규모와 구조는 사방 1칸 겹처마 사모지붕이고, 안동 권씨(安東權氏) 문중의 소유로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시흥의 누정은 오랜 역사적 사료를 가지고 현재까지 보존되거나 재건되었다. 누정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건축 양식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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