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리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1088
한자 長利-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시지은

[정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흉년 또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빌려준 곡식의 절반 이상을 한 해 이자로 받는 것.

[개설]

장리쌀은 흉년 또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풍년이나 추수기에 돌려받는 조선시대 구휼(救恤) 제도인 환곡(還穀)에서 비롯되었다. 환곡이 처음에는 곤궁한 농민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였으나, 곡식을 갚을 때 이자를 붙이기 시작하다가 부패한 관리들이 빌려준 곡식의 절반 이상을 이자로 받기도 하였다. 빌린 곡식의 6개월 이자가 50%를 넘길 때 장리(長利)라 불렀으며, 주로 쌀을 빌리고 갚았기 때문에 장리쌀이라고 하였다.

[생활 민속적 사항]

시흥시 지역에서는 농지 개혁 전까지 많은 농민들이 지주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추수량의 절반 정도를 지주에게 내는 것이 소작 관행이었다. 지주에게 추수량을 내고 남은 곡식으로 지내다가 춘궁기를 넘기기 어려운 농민들은 넉넉한 집에서 곡식을 빌리고 그해 추수를 마치고 나서 갚는 경우가 많았다. 빌린 곡식을 갚을 때 이자율이 50%인 것을 '반장리', 이자율이 100%이면 '곱장리'라고 했으며, 시흥 지역에서는 반장리가 일반적이었다.

장리는 보통 쌀을 빌리고 갚았기 때문에 장리쌀이라고 하고, 봄에 보리쌀을 빌리고 가을에 빌린 보리쌀만큼의 쌀로 갚는 '색거리[색갈이]'도 있었다. 빌린 곡식을 그해 갚지 못하고 몇 해가 지난 다음에 갚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자를 더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빌린 쌀을 제때에 갚지 못해서 신용이 낮아지면 다음 해에 장리쌀을 다시 얻기가 힘들어졌다.

장리쌀은 일반 농가에서 놓기는 어렵고 여유가 있는 부농(富農)에서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끔 머슴살이를 하면서 착실하게 쌀을 모은 머슴이 놓는 경우도 있었다. 2018년 현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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