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광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653
한자 梧柳鑛山
영어공식명칭 Olyu Mine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시지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0년경연표보기 - 오류광산 개장
해체 시기/일시 1960년대연표보기 - 오류광산 폐광
최초 설립지 인천부 황등천면 과림저수지 근처
성격 흑연 광산

[정의]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 있었던 광산.

[설립 목적]

오류광산은 흑연을 채취할 목적으로 1910년경에 개장되었으며, 광산에서 채취한 흑연은 주로 쇠를 녹이는 데 쓰이는 도가니를 만들 때 사용되었다.

[변천]

오류광산은 1910년경에 처음 개장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인에 의해 다시 채광이 시작되었던 광산이다. 광복 후에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다가 1960년대에 폐광되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폐광 이후 새우젓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시흥 주민들의 기억에 의하면 1950~1960년대 오류광산에서는 주로 흑연을 추출하기 위한 흙 채취가 이루어졌다. 광부들이 광산에서 흙을 채취하면 궤도차의 수레에 싣고 광산 아래 제련소로 옮겼고, 제련소에서는 그 흙에서 흑연을 추출하여 주로 무쇠를 담는 솥 모양의 도가니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제련소는 공장 가동을 위해 전기를 사용하였는데, 시흥 지역에서 전기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광산 아래쪽으로 20여 가구가 살았고, 주민들은 그 집들을 오류광산 사택이라고 불렀다. 산 아래 위치한 사택은 겨울이면 몹시 추워서 마을 사람들이 ‘소련 땅’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현황]

오류광산은 예전에는 광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찾는 이들이 없어 수풀로 가려져 있다. 우거진 나뭇가지들을 낫으로 베어 내면서 올라가야 오류광산이 있던 곳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이며, 현재 광산은 40m 정도의 동굴 형태로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오류광산은 규모는 작지만 1900년대 초에 시흥 지역에서 처음 개장한 광산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으며, 시흥시의 역사 체험과 답사·관광 자원으로의 개발이 검토되고 있다.

[참고문헌]
  • 『시흥시 지명 유래』 (시흥문화원, 2006)
  • 「과림동에 동굴이 있다는 사실, 아시나요?」(아름다운 시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http://blog.daum.net/ppq35/1638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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