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567
한자 李載伉
영어공식명칭 Lee Jaehang
이칭/별칭 원장(元璋)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병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7년연표보기 - 이재항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65년 2월 26일연표보기 - 이재항 사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이재항 수원군 송산면 3.1운동 참여
출생지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논곡리 270 지도보기
활동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송산면사무소 뒷산
묘소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골 학온동 주민센터 앞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경기도 시흥시 논곡동 출신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개설]

이재항(李載伉)[1887~1965]은 시흥 지역 출신으로 경기도 수원군 서신면 상안리[지금의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의 이원행(李源行) 등과 1919년 3월 26일 수원군 송산면[지금의 화성시 송산면]의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참여하였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원장(元璋). 아버지는 이지응(李智應), 어머니는 윤씨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이재항은 1887년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논곡리 270[지금의 시흥시 논곡동]에서 태어났다. 33세 때인 1919년 처가인 수원군 서신면에 머물고 있다가 3월 26일 송산면 사강장터에서 수원군 서신면 상안리의 이원행, 홍성후(洪誠厚), 홍대규(洪大奎) 등과 함께 주민 봉기에 나설 것을 계획하고 밤새워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태극기를 만들어 시위 준비를 하였다.

3월 28일 사강 장날을 맞아 주변 마을 사람들이 장터로 몰려들었다. 이에 주재소에서는 26일에 있었던 만세시위가 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침부터 상인들에게 점포를 닫도록 하였다. 오전 10시경부터 사강장터에 모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같은 날 오전 11시경에는 홍면옥(洪冕玉)이 자신의 집 앞뜰에서 홍효선(洪孝善), 김창준(金昌俊), 왕광연(王光演), 홍태준(洪泰俊), 홍문선(洪文善) 등과 함께 만세를 부른 후, 오후 2~3시에 동네 주민들과 사강장터에서 온 인근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만세를 부를 것을 결의하였다.

이재항은 이후 1,0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뒷산으로 올라가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몇몇 사람은 사강장터에서 만세시위를 하고 있던 주민들과 합류하였다. 이러한 송산면에서의 3.1운동은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거세게 일어났고 일제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원경찰서에서 파견된 사법계주임 순사부장 노구치[野口廣三]가 타살되었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3.1운동 주모자 검거 과정에서 175명을 검거하고 200호가 넘는 가옥을 방화하면서 무고한 주민의 체포와 고문이 자행되었다. 이에 이재항은 스님으로 변장하고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등으로 피신하며 은둔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 각계로부터 정계에 투신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끝내 사양하고 후진 양성에 정진하다 1965년 2월 26일 사망하였다. 이재항의 공적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419번지에 세워져 있는 '3.1독립운동기념비’에 명기되어 있다.

[묘소]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골 학온동 주민센터 앞산에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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