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563
한자 金東賢
영어공식명칭 Kim Donghyu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주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9년연표보기 - 김동현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28년연표보기 - 김동현 사망
출생지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 352
활동지 경기도 시흥시|경기도 수원시|경기도 안양시|충청남도 공주시
성격 종교인
성별
대표 경력 시흥 지역 본처전도사

[정의]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서 출생한 시흥 지역 최초의 기독교인.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 352[지금의 시흥시 무지내동]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김광수(金廣洙), 어머니는 최씨(崔氏)이다. 본관이 하동(河東)인 부인 정씨(鄭氏)는 젊은 나이로 죽었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흥업강습소 창업자 김동일(金東一)은 사촌 동생이다.

[활동 사항]

김동현(金東賢)[1869~1928]은 배재학당에서 수학한 후 당시 서학 열풍이 사회 전반에 미치면서 기독교에 귀의하였다. 1898년(광무 2)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 은행동마을 자택에서 예배를 주관했는데, 이는 시흥 지역의 첫 개신교 신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뒤 1901년 수원 지역 권사(勸事)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5월 18일 은행동마을에 길이 세 칸, 너비 두 칸의 예배당을 봉헌했으며 8월 6일에는 지금의 안양시 석수동 삼막골교회 봉헌식에서 기도를 주관하였다. 이어 수원에서 휴양관 부지를 구입하는 도중 그곳에서 정조의 영정(影幀)을 봉안하는 화령전(華寧殿)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경기도관찰사 조중목(趙重穆)에 의해 구속되는 곤혹을 치렀다. 여전히 외래 종교를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유교 문화가 압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02년 선교회에서 수원 구역과 시흥 구역을 분리하자 시흥 지역 본처전도사(本處傳道師)[초기 한국 감리교회 교직으로 지금의 장로]로 파송(派送)받았다. 이 해 6월 1일 봉헌식을 거행했는데 무지내교회의 증축으로 보인다. 이어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첫 전도자로 활동하였는데, 그 후 말년의 활동 상황은 알려진 사실이 없다. 1928년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아현리[지금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에서 사망하였다.

시흥 지역 최초의 기독교 신자로 활동하여 가족에게도 그 영향력이 이어졌다. 계모 신씨(申氏)는 1940년 경성지방법원의 허가를 받아 마리아(馬利亞)로 개명하였다. 장남 김영렬(金永烈)은 배재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가 되어 안산 구역, 제암리, 아현리, 창전리의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였다.

[묘소]

김동현 묘는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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