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 민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515
한자 驪興閔氏
영어공식명칭 Yeoheung Mi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우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여흥 - 경기도 여주시 여흥동
세거|집성지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지도보기
성씨 시조 민칭도

[정의]

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경기도 여주시 여흥동을 본향으로 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민칭도(閔稱道)의 4세손인 민영모(閔令謨)부터 고위 관직에 진출하였고, 고려시대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낸 민영모의 장남 민식(閔湜)과 태자소보(太子少保)를 지낸 차남 민공규(閔公珪)의 후손이 여흥 민씨(驪興閔氏) 가문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고려와 조선에 걸쳐 많은 과거 급제자와 고위 관료 배출, 왕실과의 통혼(通婚)으로 명문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해 갔다. 조선조에는 12명의 재상, 2명의 왕비, 2명의 황후, 732명의 과거 급제자를 탄생시켰다. 제3대 왕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元敬王后), 제19대 왕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 제26대 왕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明成皇后), 제27대 왕 순종의 비인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민영환(閔泳煥) 등이 여흥 민씨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입향 경위]

충청남도 천안시과 경기도 양평군에 선영이 있는데, 17세로 찰방(察訪)과 군수(郡守)를 지낸 민여흠(閔汝欽)[1592~1648]이 지금의 부천시 옥길동에 묘를 쓰면서 시흥 지역에 정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1년 발간한 『여흥 민씨 양근공파 략보(驪興閔氏陽根公派略譜)』에 ‘묘는 부천군 소래면 옥길리 유명산 오좌에 합폄(合窆)하였다(墓富川郡蘇萊面玉吉里有名山下午坐合封).’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정착지는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민경세(閔慶世)가 부천시 옥길동과 인접한 시흥시 과림동에 거주하면서 후손이 번성하여 지금에 이른다. 부천시 옥길동과 시흥시 과림동에 세거한 여흥 민씨는 17세손인 민형남(閔馨男)을 파조(派祖)로 하는 지애공파(芝崖公派)에 속한다.

[현황]

통계청의 2000년 인구 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시흥시에 거주하는 여흥 민씨는 339가구 1,166명이다. 『과림동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과림동에 거주하는 여흥 민씨는 10여 가구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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