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오이도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474
한자 始興烏耳島遺蹟
영어공식명칭 Archaeological Site in Oido, Siheu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경기도 시흥시 정왕1동 183번지 외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이헌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8년 - 시흥 오이도 유적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4월 1일 - 시흥 오이도 유적 사적 제441호 지정
소재지 경기도 시흥시 정왕1동 183번지지도보기
성격 유물 산포지
면적 434,981.7㎡
소유자 국공유|사유
관리자 경기도 시흥시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제441호

[정의]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와 주거지 유적.

[개설]

시흥 오이도 유적은 기원전 3500~3000년경 신석기시대 중·후기의 조개더미[패총(貝塚)]로서 당시 사회, 경제, 문화 양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종합적인 생활 유적이다. 경기만의 서해안 대부분 섬에서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 유적이 확인되고 있지만, 그중에서 시흥 오이도 유적은 조개더미가 밀집 분포하고 있는 서해안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후 오이도 주변의 갯벌을 간척하여 공단을 조성하면서 섬은 그 원형을 잃어 갔고, 그동안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왔던 조개더미 유적들이 사라져 갔다. 신포동 조개더미와 소래벌 조개더미는 시화지구 개발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시흥 오이도 유적은 한반도 중부 지역의 신석기시대를 복원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잘 보존하고 연구되어야 한다.

[위치]

행정구역상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속하는 시흥 오이도 유적은 동경 126.4°, 북위 37.2°에 있다. 이 유적이 있는 곳은 원래 본토 해안에서 약 4㎞ 정도 떨어져 있었던 오이도 섬에 있다. 오이도 섬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갯벌을 염전으로 이용하면서부터 본토와 연결되었고, 1980년대 말 시화공단을 조성하면서 염전 지대를 간척하여 육지화되었다. 오이도의 지리적 위치는 내륙에서 서해상으로 진출하기 위한 주요 길목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시흥 오이도 유적은 1960년대 초에 보고되어 알려졌으며 1988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정식으로 발굴 조사하였다. 이어서 1999년에는 경기도 박물관에서 도서 해안 지역 종합 학술 조사의 일환으로 오이도의 안말 조개더미, 가운데살막 조개더미, 뒷살막 조개더미, 신포동 조개더미를 조사한 바 있다.

오이도 가운데막살 조개더미의 경우 1988년 명지대학교 박물관에서 처음 소개된 후 한동안 방치되다가 1998년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오이도 이주단지시화방조제를 잇는 오이도 회주 도로 건설이 진행됨에 따라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이 유적을 발굴 조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윤곽이 파악된 조개더미는 오이도 내 6개 지역 12개 지점이다. 이를 보고된 순서대로 정리하면 섬 최북단 구릉의 동사면에 있는 안말 조개더미, 오이도 최남단에 형성된 신포동 조개더미, 오이도 남서쪽에 있는 가운데막살 조개더미, 섬 최북단 구릉의 남서면에 형성된 뒷막살 조개더미, 오이도덕섬[똥섬] 사이의 모래 언덕과 이어지는 구릉사면과 모래 언덕에 형성된 작은소래벌 조개더미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조개더미 유적에서 주거지, 화덕자리[노지(爐址)], 빗살무늬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신석기시대의 일부 사회상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형태]

오이도 가운데막살 조개더미에서 확인된 주거지 3기는 평면 장방형(長方形)[직사각형]으로 해안 구릉의 경사면을 'L' 자로 파고 조성하였다. 주거지 3기 중 1기[‘나’ 조개더미]에 구덩식[수혈식(竪穴式)]의 화덕이 설치되었다. 화덕 주변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주거지 유적은 신석기시대에 해양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일시적인 야영 시설로 보고 있다. 오이도 가운데막살 조개더미에서는 야외 화덕자리가 확인되었다. 구덩이를 파고 돌을 채운 야외 화덕자리는 신석기 유적에서 흔히 보는 형태로 음식 조리용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

오이도 가운데살막 조개더미에서는 석기로 조갯날 돌도끼[합인석부(蛤刃石斧)]와 공이, 둥근찍개[원반형 석기(圓盤形石器)], 토기로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확인되었다. 2000년에 발굴 조사된 오이도 뒷살막 조개더미에서는 석기로 갈돌, 갈판, 홈돌, 공이, 둥근찍개가 출토되었다. 오이도 안말 조개더미에서는 짧은 빗금무늬[단사선문(短斜線文)]과 짧은 가로생선뼈무늬[단치 횡주어골문(單齒橫走魚骨文)], 사선무늬[사선대문(斜線帶文)] 등이 시문된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 이와 함께 흑요석제(黑曜石製) 격지석기[박편석기(剝片石器)] 1점이 확인되었다. 오이도 작은소래벌 조개더미의 빗살무늬토기 조각은 다종다양한 문양이 시문되어 있는데, 크게 구분계 시문토기와 동일계 시문토기로 나눌 수 있다.

구분계 시문토기는 아가리[구연(口緣)] 부분에 짧은 빗금무늬, 몸통 부분에 세로생선뼈무늬[종주어골문(縱走魚骨文)], 단·다치(單多齒) 가로생선뼈무늬를 시문(施文)한 것이 주류를 이루나 그 양은 많지 않다. 동일계 시문토기는 단·다치 가로생선뼈무늬가 주를 이루는데, 정연한 무늬부터 난삽한 무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밖에도 활석이 혼입된 소용돌이무늬[타래문(絡繩文)], ‘W’자형 무늬 등의 토기 조각도 소량 존재한다. 오이도 소래벌 조개더미는 발굴 조사를 통해 짧은 가로생선뼈무늬이 시문되거나 문양이 없는 빗살무늬토기가 수습되었다. 오이도 신포동 조개더미에서는 빗살무늬토기, 그물추[어망추(漁網錘)], 돌화살촉[석촉(石鏃)], 뼈화살촉[골각촉(骨角鏃)] 등의 신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황]

1999년에 발굴 조사된 오이도 가운데살막 조개더미는 섬 남서부 구릉의 사면에 형성되어 있으며 모두 '가·나·다' 3개의 지점에서 확인된다. ‘다’ 조개더미의 혼토 패층(混土貝層) 아래로 3기의 주거지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주거지는 전라북도 군산시 가도, 충청남도 서천군 장암리 조개더미 등에서도 확인되었다.

2000년에 발굴 조사된 오이도 뒷살막 조개더미는 섬 최북단 구릉의 남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유구(遺構)는 모두 7기의 야외 화덕자리와 1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야외 화덕자리 7기는 모두 신석기시대 조개껍데기 층 밑에서 확인되었는데, 돌무지[적석(積石)] 시설 등 일정한 형식을 갖춘 화덕자리가 아니라, 별다른 시설 없이 불을 지핀 흔적이나 재로 이루어진 것이다. 시굴 트렌치[test trench] 내에서 확인된 1기의 신석기시대 주거지는 경사면을 ‘L’자형으로 파서 바닥을 고른 구덩 주거지로, 주거지 내부에 구덩식 화덕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시굴 트렌치에서 확인되어 자세한 양상은 알 수 없으나, 주거지 벽선 밖으로 기둥 구멍[주공(柱孔)]으로 추정되는 구덩도 확인되었다.

오이도 안말 조개더미는 섬 최북단 구릉의 동사면에 형성되어 있으며 여러 오이도 조개더미오이도 안말 조개더미와 함께 가장 먼저 알려진 유적이다.

오이도 작은소래벌 조개더미가 형성된 곳은 오이도 최고봉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비교적 완만한 능선과 주변의 사주(砂洲) 지역이다. 1988년 지표 조사에서 ‘안말 B 조개더미’로 불리던 곳이다. 오이도 작은소래벌 조개더미는 해안 구릉의 사면에 있는 서해안 지역의 다른 조개더미와는 달리 해안 사주 지역에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 형성 연대는 토기 문양을 고려하면 기원전 3000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오이도 소래벌 조개더미오이도 조개더미오이도 안말 조개더미와 함께 가장 먼저 알려진 조개더미이다. 오이도 소래벌 조개더미오이도의 북동쪽 옥터초등학교 옆 도로변에 형성되어 있다. 신석기시대의 조개껍데기 층 속에서는 2기의 주거지와 7기의 야외 화덕자리가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경사면을 파고 들어간 구덩 주거지로서 외곽에 기둥자리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었다. 조개더미가 형성된 지역은 오이도와 인근 덕섬을 잇는 곳으로, 원래 갯벌이었으나 오랜 기간 조류의 영향으로 모래가 퇴적되어 사주가 형성된 곳이다. 1994년 발굴 조사 당시 이미 주민들이 조개껍데기를 닭 사료로 쓰기 위해 크게 훼손한 상태로, 심하게 뒤섞여 있어 자세한 양상은 알 수 없다. 오이도 소래벌 조개더미는 해안 구릉의 사면에 입지하는 다른 서해안 조개더미와는 달리 인근의 오이도 작은소래벌 A 조개더미와 함께 해안 사주에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오이도 신포동 조개더미오이도 남단의 만(灣)이 형성된 해안 구릉의 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오이도 신포동 조개더미는 만이 형성된 포구 지역에 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 방식 및 생계 유형을 알려 주며 'A·B·C' 조개더미가 있다. 그중 B 조개더미는 여러 조개껍데기가 중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층위적으로 서해안 지역의 신석기시대 편년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오이도 신포동 조개더미는 정왕동 하수종말처리장 일대의 오이도 남단 해안 구릉의 사면에 있다. 바닥 면에서 3기의 화덕자리가 확인되었는데 평면 형태는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빗살무늬토기, 그물추, 돌화살촉, 뼈화살촉 등의 신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시흥 오이도 유적은 해안 구릉의 사면에 있는 다른 서해안 조개더미와 달리 해안 사주에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신석기시대 서해안 도서 지역의 생계·교류 등 문화 양상에 관한 일단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 유적이다. 시흥 오이도 유적을 통해서 신석기시대 연구자들은 토기 연구를 토대로 초기의 신석기인들이 내륙에서 살다가 해안으로 진출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 *작성자
  • *확인번호
*의견내용

위 기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관리하고 있사오니 수정 요청사항이나 200자 이상의 정보성 댓글은 내가 쓰는 백과를 이용해주십시오.

*이용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욕설, 비방, 광고성 내용이 포함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