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자신 선생 묘 및 신도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421
한자 柳自新先生墓-神道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and Tomb of Ryu Jasi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산3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창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612년연표보기 - 류자신 묘 조성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541년 - 류자신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612년 - 류자신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 1월 31일 - 류자신 선생 묘 및 신도비 시흥시 향토유적 제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4년 9월 20일연표보기 - 영모재 시흥시 향토유적 제4호 확대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8년 - 영모재 전면 복원 정비
현 소재지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산32 지도보기
성격 묘소와 신도비
양식 원형 합장 단분
관련 인물 류자신
소유자 문화 류씨 안산 종친회
관리자 문화 류씨 안산 종친회
문화재 지정 번호 시흥시 향토유적 제4호

[정의]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류자신 묘와 신도비.

[개설]

류자신(柳自新)[1541~1612]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지언(止彦)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 류잠(柳潛), 어머니는 증호조참판 정승렴(鄭承廉)의 딸이다. 류자신은 광해군의 장인이다.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입격(入格)하였고, 문음(門蔭)[공신이나 전·현직 고관의 자제를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일]으로 태릉참봉에 제수된 후 돈녕부직장(敦寧府直長), 평강현감, 호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579년(선조 12) 형조정랑, 김제군수를 거쳐 1585년(선조 18)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이 되었다.

1587년(선조 20) 셋째 딸이 광해군과 혼인하여 후일 광해군의 왕비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을 호종(護從)하여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제수되었고, 1595년(선조 28) 성천부사로 재임 중 옥송(獄訟)을 잘못 처리한 죄로 파직되었다. 1599년(선조 32) 개성부유수에 다시 임명되었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위치]

경기도 시흥시 능곡 택지 개발 지구 내 능골 동쪽의 문화 류씨(文化柳氏) 묘역에 있다. 능곡도서관 근처에 있고, 입구에 재실(齋室)인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형태]

문화 류씨 묘역에는 아버지 류잠(柳潛), 동생 류덕신(柳德新)과 류자신의 큰아들 류희갱(柳希鏗) 묘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묘의 배치는 특이하게 류잠·류덕신·류희갱·류자신의 묘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류자신 선생 묘는 안산(案山)인 군자산을 바라보는 시흥 지역 8대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류자신 선생 묘는 부인과 합장한 원형의 단분(單墳)으로 봉분 주변으로 호석(護石)을 둘렀다. 묘 중앙에 높이 2.42m의 묘비가 있고, 그 앞에 상석과 향로석, 높이 1.92m의 사각 장명등이 세워져 있다. 묘의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각각 있다. 석물 배치가 다른 묘와 비슷하지만, 상석 옆 양쪽에 향로석 이외에 또 다른 받침돌이 있는 특징이 있다. 복두(幞頭)를 쓴 높이 2.22m의 문인석은 왕릉으로 착각할 정도로 얼굴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며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광해군의 장인이었던만큼 당대 최고의 석물 일체를 갖추었다.

[금석문]

묘역에서 약 400m 되는 곳에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1617년(광해군 9) 세웠는데, 본래 지금의 위치에서 동쪽 약 150m 지점에 있었으나 광복 직후 이전하였다고 한다. 신도비의 총 높이는 4.1m로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螭首)를 갖추고 있다. 귀부는 화강암, 높이 2.05m의 비신과 이수는 백(白)대리석을 사용하였다. 이수에는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르는 모양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신도비 비문은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류근(柳根)이 짓고, 글씨는 병조참의 오정(吳靖)이 썼으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김상용(金尙容)이 전자(篆字)하였다. 신도비 전액(篆額)과 비 제목에 시호(諡號)가 들어갈 자리가 비워져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후대에 비각을 세웠다.

묘 앞에 있는 높이 2.42m의 묘비는 귀부, 비신, 이수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돌은 화강암으로, 비신과 이수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수에는 두 마리 용이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고, 높이 1.22m의 비신 앞면에는 '갈충진성동덕찬모좌운위성공신 보국숭록대부 영돈녕부사 문양부원군 증의정부영의정 시□□공 류공지묘 봉원부부인 동래정씨지묘(竭忠盡誠同德贊謨佐運衛聖功臣輔國崇祿大夫領敦寧府事文陽府院君贈議政府領議政諡□□公柳公之墓蓬原府夫人東萊鄭氏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비신 앞면에도 신도비와 마찬가지로 시호 자리가 비워져 있다. 묘비의 음기(陰記)와 건립 연대는 새기지 않았다.

[현황]

1885년(고종 22) 건립된 재실 영모재가 묘 부근에 있는데, 2008년 전면 복원 정비하였다. 류자신 선생 묘 및 신도비는 2000년 1월 31일 시흥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9월 20일 영모재까지 확대하여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문화 류씨 묘역 내에 배치되어 있는 석물들은 4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거의 마멸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는 문화재 자료로 평가된다. 류자신 선생 묘와 석물은 광해군 대에 조성된 사대부 묘제의 전형으로 조선시대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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