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령 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415
한자 金百齡墓
영어공식명칭 Tomb of Kim Baekry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 산9번지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병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574년연표보기 - 김백령 묘비 건립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545년연표보기 - 김백령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573년연표보기 - 김백령 사망
개축 시기/일시 2000년 - 김백령 묘 보수
현 소재지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 산9번지 지도보기
성격 묘소
양식 쌍분
관련 인물 김성동|김언|김억령|민인서|김자점

[정의]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김백령의 묘.

[개설]

김백령(金百齡)[1545~1573]의 묘는 할아버지 김성동(金誠童) 묘소 건너 구릉에 자리하며 아버지 김언(金漹)의 묘 아래 구릉에 자리한다. 김백령은 조선시대 선조 대의 인물로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대로(大老)이며 장예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를 지낸 김언의 아들이다. 둘째 형이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억령(金億齡)이며 손자가 낙흥부원군(洛興府院君) 김자점(金自點)이다. 1567년(명종 22)에 생원(生員)이 되었으나 29세의 나이로 일찍 요절하여 별다른 행적을 남기지 못하였다.

[위치]

김백령 묘경기도 시흥시 하상동 산9번지에 있다. 하중동에서 하상동으로 연성로를 타고 고개를 내려가다 보면 좌측으로 매봉산 자락에 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변천]

2000년 봉분 등을 정비하고 새로 문인석과 봉분 우측으로 방부(方趺)에 옥개석(屋蓋石)을 올린 오석(烏石)의 비석을 세웠다.

[형태]

김백령 묘에는 상석, 높이 1.35m의 문인석 등 옛 석물을 갖추고 있는데, 쌍분(雙墳) 앞에는 좌측으로 방부원수(方趺圓首) 양식의 높이 1.36m의 묘갈(墓碣)[무덤 앞에 세우는 둥그스름한 작은 비석]이 건립되어 있다. 백(白)대리석의 높이 1.2m의 비신(碑身)은 절단되어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으나 비문의 상태는 양호하다.

[금석문]

비신 앞면에는 크게 해서(楷書)로 “성균생원 김공지묘(成均生員金公之墓)”라고 써 놓았으며 뒷면에는 묘갈문을 각자(刻字)하였다. 갈제(碣題)는 없지만 비신 상단에 전액(篆額)인 “생원 김공 묘갈명(生員金公墓碣銘)”을 통해서 비석의 종류가 묘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형인 김억령이 묘갈문을 짓고, 선무랑(宣務郞) 민인서(閔麟瑞)가 썼다. 건립 연대는 ‘만력 2년[1574년] 11월 □일(萬曆二年十日月□日)’이다.

[의의와 평가]

김백령의 묘갈과 석물 등은 조선시대 분묘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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