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지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223
한자 大東地志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손승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63년경연표보기 - 『대동지지』 편찬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지리지
편자 김정호
권책 32권 15책
규격 가로 19.3㎝|세로 27.2㎝

[정의]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여 각 지역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 1863년경 김정호가 편찬한 지리지.

[개설]

『대동지지(大東地志)』는 모두 32권 15책으로 구성된 사찬(私撰) 지리지이다. 정부에서 편찬한 것이 관찬(官撰) 지리지인 데 반해 사찬 지리지는 개인이 편찬한 것이다. 1863년경 김정호(金正浩)가 『동여도지(東輿圖志)』를 근간으로 『여도비지(輿圖備誌)』의 내용을 추가한 지리지로, 이를 편찬할 때에 65종의 도서를 참고했다고 전해진다.

[저자]

김정호는 『청구도』, 『대동여지도』, 『동여도지』, 『여도비지』 등을 저술한 대표적인 지리학자이다. 자는 백원(伯元)·백온(伯溫)·백지(伯之) 등이며, 호는 고산자(古山子)이다. 생몰년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편찬/간행 경위]

김정호는 혼자서 『동여도지』를 편찬하고 최성환(崔瑆煥)과 함께 『여도비지』를 편찬하였는데, 이 두 개의 지리지를 종합하여 1863년경 『대동지지』를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호는 이러한 지리지를 토대로 『청구도』『대동여지도』와 같은 지도를 제작하였다.

[형태/서지]

현재 전해지는 『대동지지』는 최남선(崔南善)이 소장하고 있던 필사본을 저본으로 하여 1932년에 필사한 것이다. 지리지의 규격은 가로 19.3㎝, 세로 27.2㎝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다.

[구성/내용]

『대동지지』는 총 32권 15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다. 앞부분은 총목(總目), 문목(門目), 인용 서목(引用書目) 등으로 구성된다. 뒤를 이어 제1권부터 제24권까지 각 도 지지(各道地志)가 포함되며, 산수고(山水考)·변방고(邊方考)로 구성된 제25~26권, 정리고(程里考)로 이루어진 제27~28권, 역대지(歷代志)인 제29~32권 등이 있다. 산수고와 변방고는 결질 상태이다.

각 도 지지는 경도(京都) 및 한성부,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항목에는 연혁(沿革), 읍호(邑號), 관원(官員), 방면(坊面), 산수(山水), 성지(城池), 진보(鎭堡), 봉수(烽燧), 역참(驛站), 목장(牧場), 진도(津渡), 토산(土産), 단유(壇壝), 사원(祠院), 전고(典故) 등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기술하였다. 전고조(典故條)는 『대동지지』에서 주목되는 항목으로, 기존의 지지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각 지방에서 벌어졌던 전투와 유배자 현황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지금의 시흥시는 인천도호부 및 안산군에 기술되어 있다. 면의 이름으로는 인천부에 포함된 신현면·전반면·황등천면안산군에 포함된 잉화곡면[인화면]·초산면·대월면·마유면이 포함되었다. 산수에는 소래산·오자산[운흥산군자봉·수리산을 비롯하여 사천이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고갯길인 영로(嶺路)가 포함되었는데, 시흥시와 인천광역시의 경계부에 있던 성현(星峴)이 언급되어 있다.

도서(島嶼)에는 오이도옥구도가 각각 의이도(衣耳島)석줄도(石茁島)로 기술되었다. 장시(場市)에 관한 항목에서는 사천장(蛇川場)이 1·6일장으로 소개되었다. 사천장뱀내장으로 잘 알려진 시흥시의 대표적인 장시로 198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봉수 항목에서는 정왕산 봉수를 비롯하여 정왕산 봉수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던 성산 봉수가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동지지』는 조선 후기 순수하게 개인이 편찬한 지리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당시 지리지 편찬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전고조(典故條)에서 기존에 발생했던 전투에 대하여 기록해 놓은 것은 외세의 침입에 군사적 대비를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앙 정부가 통치를 위한 목적에서 각 지방의 정보를 수집했던 것과는 달리 수요에 대응하는 목적에서 지리지가 편찬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지리지에 기술된 각종 지리적 내용은 이후 지도 제작에서 기초 자료로 활용이 가능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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