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산업도로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과 목감동을 거쳐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안산시를 연결하는 국도. 국도42호선은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강원도 동해시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국도이다. 이 중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서창동에서 수원역까지의 구간은 수인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흥시의 신천동, 은행동, 매화동, 목감동을 지나며 신천동 구간은 국도39호선과 중복된다. 국도42호...
-
경기도 시흥시에서 사람이나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건설된 넓은 길. 도로는 이동과 접근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능을 수행하며 등급에 따라 고속국도, 국도, 지방도, 시도 등으로 구분된다. 등급이 높을수록 이동성이 높아지고 등급이 낮은 도로에서는 접근성이 향상된다. 2016년 기준으로 시흥시 도로의 총길이는 674.2㎞에 달하며, 그중 605.5㎞가 포장되어 포장률은 89....
-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에 있는 일반 산업단지. 매화일반산업단지는 시흥시의 시가지에 분포하는 공업 지역을 외곽으로 이전시켜 쾌적한 도시 환경을 구축하고, 공장 시설의 집적화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는 동시에 개발 제한 구역으로 지정된 일반 조성 가능지를 활용함으로써 도시 발전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시흥시는 매화일반산업단지가 경기 서남부 지역의 신경...
-
시흥 지역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과 어촌 중심의 향촌 공동체를 토대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안산시에 조성된 반월국가산업단지를 1980년대 중반 확장하면서 정왕동 일대에 대단위의 산업단지가 개발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산업단지는 현재 시화국가산업단지[시흥공단]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지리적으로 접해 있는 반월국가산업단지와 시화국가산업단지는 시너지 효과를 내며 시흥...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고등동 육교사거리를 기점으로 하여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를 거쳐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사거리를 종점으로 하는 도로. 수인로는 전 구간이 국도42호선에 속해 있으며, 시흥시 신천동에서는 국도39호선과 중복된다. 시흥시의 남동~북서쪽을 관통하는 도로로 목감동, 매화동, 은행동, 신천동을 지난다. 수인로는 경기도 수원시와 인천광역시를...
-
경기도 수원시에서 안산시·시흥시를 지나 인천광역시까지 오가던 협궤 노선. 수인선 협궤철도는 1937년 개통되어 1995년까지 운행된 협궤철도이다. 수인선 협궤철도는 수원시와 인천광역시를 잇는 철도라는 의미로 수인선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고, 보통 열차보다 좁은 철도 노선이라 협궤철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인선 협궤철도는 40㎞/h 전후의 속...
-
1895년부터 1988년까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영등포구·관악구·동작구·구로구와 경기도 광명시·안양시 일부를 관할하였던 경기도의 행정구역. 시흥군(始興郡)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군청을 두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를 중심으로 영등포구[양화동·여의도동 제외], 관악구[남현동 제외], 동작구 일부[신대방동·상도동], 구로구 동부[안양천 동쪽]와 경기도 광명시...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과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을 잇는 수도권 전철 노선.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을 기점으로 하고, 안산시를 경유하여 시흥시 오이도역을 종점으로 하는 수도권 전철 노선이다. 수도권 전철 4호선 차량이 운행한다. 시흥시 구간은 정왕역[한국산업기술대], 오이도역이 지난다. 안산선은 반월국가산업단지가 소재한 안산을 기점으로 수도권 전철 사당역까...
-
경기도 시흥시에서 자연의 예기치 않은 변동에 의해 일어나는 피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자연재해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유발한 것은 여름철의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이고 이어 가뭄과 태풍 등이 있다. 경기도 시흥시는 한반도의 중부 지방에서 서해에 접하고 있지만 큰 하천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집중호우에 따른 홍수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시흥시는 자연재해의 발생 빈도가...
-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에 있던 자연 마을. 한독마을은 도시 빈민 운동가 제정구(諸廷坵)와 미국인 정일우 신부[John Vincent Daly]가 독일의 구호 단체인 미제레올(Misereor)재단의 후원을 받아 신천동 복음자리마을에 이어 시흥시 은행동 찬우물 북쪽에 조성한 마을로 복음자리마을, 1986년 조성한 목화연립 주민이 모두 한 공동체로 인식하며 생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