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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1166
한자 -農樂
이칭/별칭 월미 두레 풍물놀이,상직 풍장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목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농악

[정의]

경기도 시흥시 물왕동의 농민들이 벽사진경(僻邪進慶)][사악함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함] 및 기풍(祈豊)[농작이 풍년이 들기를 바람] 행사의 목적으로 행하던 농악 놀이.

[개설]

월미라는 말의 유래는 ‘얼미’에서 나왔는데, 높은 관직을 맡았던 분의 묘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마을 뒷산에 반달이 얹혀 있는 형국이라는 의미에서 월미(月尾)로 표기되었다고 한다. 월미 농악은 조선시대에는 '상직(上職) 풍장[풍물놀이]'이라고 하여 경기 지방은 물론 궁중에까지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월미는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초산면 상직리 또는 상직곳리라 했다가, 1914년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로 개칭되었고, 1989년 시 승격에 따라 시흥시 물왕동으로 되었다. 근래에는 농번기나 추수기, 그리고 동제(洞祭)가 이루어지는 농경 세시의 일환으로 행해져 농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형성시켜 마을의 화목을 촉진시켜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구성 및 형식]

월미 농악의 인원 구성은 농기(農旗)와 영기(令旗)를 앞세우고 태평소, 상쇠, 징, 북, 장고, 벅구[법고(法鼓)], 잡색(雜色), 무동(舞童), 대포수, 각시, 양반, 중 등으로 편제를 갖춘다. 놀이의 형식은 길놀이, 판굿[걸립패와 남사당패가 연행하던 음악과 놀이의 종합예술], 개인 놀이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내용]

놀이의 순서는 농악패의 길놀이로 입장을 한 다음, 농악대원들이 상쇠의 뒤를 이어서 일렬 종대로 놀이판에 따라나와 둥글게 원을 그린 다음 둘러선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인사굿 장단을 치고 나서, 본격적인 판굿으로 들어간다. 판굿은 충청·경기 지역의 웃다리농악과 유사하다. 돌림법고, 당산, 칠채, 멍석말이, 비조리놀림, 법고놀림 등을 거쳐 사통백이, 원형 좌우치기, 네줄박이 좌우치기, 가세진, 무동, 열두 발 상모 등의 다양한 굿판이 벌어진다. 마지막으로 꽹과리, 장고, 북. 소고 등의 개인 놀이가 펼쳐진다.

[연행 시기 및 관련 의례]

월미 농악의 연행(演行) 시기는 정월 대보름과 5월 파종, 6월 김매기와 7월 호미씻이[또는 백중놀이], 8월 한가위 명절과 10월 추수감사제로서 '동제' 때 주로 놀았다. 특히 1991년 제7회 경기도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 포동 새우개 장승 놀이의 농악팀으로 참가하기 위해 시흥시와 소래중학교, 그리고 한국국악협회 시흥지부가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이 놀이를 활성화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현황]

월미 농악은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 탄생 경축 행사에 시흥군 대표로 출전한 이래, 1992년 9월 제7회 경기도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서 시흥시 대표 민속놀이로 출전한 포동 새우개 장승 놀이의 농악팀으로 참여하였고, 1994년 10월 30일 대전시문화원 주최 제2회 전국 농악 경연 대회에서 중학부 2위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7년 김포시 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제21회 경기도 민속 예술제에서는 민속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현재 월미농악보존회[회장 김수경]는 전국 단위의 농악 경연 대회에 출전하여 입상하거나 학술 대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월미 농악이 시흥 지역 전통 농악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월미 농악은 조선시대부터 ‘상직 풍장’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도 시흥시에서 활발히 전승되고 있는 농악 놀이다. 또한 포동 새우개 장승 놀이와 관련해서 길놀이나 판굿 등의 농악 놀이를 담당하거나 시흥 지역의 여러 축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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