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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왕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517
한자 開城王氏
영어공식명칭 Gaeseong W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우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개성 -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입향지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왕미의 묘와 묘비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산114 지도보기
성씨 시조 왕건
입향 시조 왕미

[정의]

왕건을 1세로 하고, 왕미를 중시조로 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경기도 개성[송악] 지방의 호족 집안으로 고려를 건국하여 34대 475년간 번성하였다. 하지만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李成桂)의 정치적 보복으로 멸족의 참화를 겪었다. 그리하여 전(全), 옥(玉), 전(田), 금(琴) 씨 등의 성씨로 바꾸어 지내다가 한참을 지나서 왕씨로 복성(復姓) 되었다. 개성 왕씨(開城王氏) 계파는 90% 이상이 동양군파(東陽君派)이며 나머지는 평양공파(平壤公派), 양양공파(襄陽公派), 안경공파(安慶公派), 시중공파(侍中公派)로 구성되어 있다.

[입향 경위]

태조 왕건(王建)의 제15번째 왕자인 원(垣)이 동양군파의 일세조(一世祖)가 되는데, 13세조는 왕미(王斖)[1365~?]이다. 왕미의 묘가 시흥시 화정동가래울에 있어 개성 왕씨 시흥시 입향조로 보고 있다. 구지정마을에 세거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1970년에 세워진 「왕미 묘비문」을 근거로, 왕미는 멸문지화(滅門之禍)의 수난 속에 외가 성씨로 숨어 살다가 복성이 되어 벼슬이 교서감(校書監)에 이르고 제용감정(濟用監正)에 추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왕미의 손자인 종인(宗仁), 종의(宗義), 종례(宗禮), 종지(宗智), 종신(宗信) 이후로 자손이 크게 번성하여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뿐만 아니라 왕씨 대부분이 그의 후손이므로 개성 왕씨 중시조(中始祖)로 추존되고 있다.

[현황]

통계청의 2000년 인구 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시흥시에 거주하는 개성 왕씨는 36가구 111명이다.

[관련 유적]

왕미의 묘와 묘비가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산114번지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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