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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면당부 정치정세 보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513
한자 君子面黨簿政治情勢報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훈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950년 8월 24일연표보기 - 「군자면당부 정치정세 보고」 작성
발견|발굴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성격 보고 문서
용도 업무 파악용
발급자 북한 조선노동당 군자면당부
수급자 북한 조선노동당 시흥군당부

[정의]

6.25전쟁 당시 경기도 시흥 지역을 점령한 북한 조선노동당 군자면당부가 시흥군당부에 올린 문서.

[개설]

「군자면당부 정치정세 보고」는 북한이 점령 지역의 하부 단위로부터 상부 단위로 보내는 현황 보고서로 작성되었다. 이 보고서는 면 단위 당 수준의 현황과 활동 상황 및 북한의 점령 지역이었던 군자면의 조선노동당 당원과 사회단체의 역점 사업이 무엇이었는지 등이 담겨 있다. 따라서 점령 지역의 면 단위에서 북한 당국이 무엇을 고심했는지 밝혀 주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제작 발급 경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Archive]에 보관중인 북한 노획 문서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구성/내용]

「군자면당부 정치정세 보고」군자면 내의 조선노동당 현황과 활동이 담겨 있다. 북한은 1950년 7월 초부터 점령 지역에서 과거 남로당원 재심사 등록 작업을 벌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군자면의 노동당원은 10명이었으며 초등 교원 19명을 선전원으로 조직하였다. 당원과 당 선전원은 민청[민주청년동맹] 선전원들과 함께 마을을 돌며 정치 선전과 주민 동원을 위한 선전 선동 사업을 벌였다. 예를 들어 군자면 장곡리의 경우 장혁수 등 선전원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을을 돌며 벽보 만화 등을 이용하여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보고서는 민청과 농맹[농민동맹]은 당과 연계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여맹[여성동맹]은 상대적으로 열악한데 가입 대상자 6,115명 가운데 827명만이 가입하는 등 민청이나 농맹에 비해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또한 당과 사회단체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각 단체의 활동도 독자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군자면인민위원회는 노동당 노선과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 8월 13일 군자면인민위원회 위원장 박종준이 과거 사상 전향 전력이 드러나 물러나기도 했다.

군자면당부는 보고서를 올린 시점인 1950년 8월 24일경 면인민위원회와 민청·농맹·여맹은 노력 동원, 의용군 모집, 전시 원호 물자 수집 활동 등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1950년 8월 초순부터 의용군 대상인 청년들이 의용을 회피해 도피하는 현상이 많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50년 8월 19일 군자면당부는 500명이 참가한 청년 궐기대회를 열었다.

[의의와 평가]

1950년 7월 초 시흥군 지역을 점령한 북한은 7월 하순에는 토지 개혁 추진에 주력했으나, 북한군의 전력이 8월 들어 약화되면서 의용군 모집에 역점을 두었다. 「군자면당부 정치정세 보고」는 북한의 면 단위에서 점령 정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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