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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365
한자 竹栗夜學設立 運動
영어공식명칭 Jugyul Evening Clas Establishing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훈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6년연표보기 - 죽율 학습 강습소 개설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8년 6월연표보기 - 죽율 야학 낙성식 개최
성격 사설 야학
관련 인물/단체 문창영|안희택

[정의]

일제강점기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죽율동에서 지역 유지들이 의연금을 모아 설립·운영한 사설 야학.

[개설]

죽율 야학(竹栗夜學)은 1926년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 유지들이 농한기에 운영하는 야학으로 개설되었다. 유지들은 1927년 의연금을 모금해 13칸 규모의 교실까지 갖추었다. 1928년 전국적인 큰 가뭄으로 야학 운영이 어려워지자 1929년 유지들은 다시 한번 야학 운영 기금 마련을 위한 활동을 벌였다. 이는 시흥 지역에서 유지들이 뜻을 모아 야학의 설립에서 운영까지 앞장선 선구적 사례이다.

[역사적 배경]

1919년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은 문맹 퇴치와 농촌 계몽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전국에서 주민들의 호응 속에 지역사회 유지들이 야학 또는 강습소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제의 학교 교육에서 소외된 아동이나 부녀자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다. 당시 시흥 지역에는 공립 보통학교가 3곳뿐이어서 교육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특히 가난한 계층이나 학령기를 놓친 성인과 여성은 공교육의 길이 막혀 있어 야학과 강습소는 주민들로부터 환영받았다.

[경과]

당시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 유지 김규영은 1920년대 중반 죽율 소년회를 조직하고 야학 운영을 시도하였다. 1926년에는 죽율리 유지들이 노동 야학을 설치하고 농한기인 가을부터 봄까지 학령을 넘긴 사람들을 모아 야간에 가르치는 과정을 열었다. 죽율 노동 야학은 마을 교회당을 교실로 이용하였다.

1927년 9월 문창영(文昌永) 등 동네 유지들은 모임을 갖고 의연금을 모아 새로운 교사를 짓기로 결의하였다. 유지 안희택이 대지 150평[약 495㎡]을 기부했고, 문창영 등 80여 명이 의연금을 모금해 교실 공사에 착수하였다. 죽율 야학 교사는 1928년 6월 초가(草家)13칸 규모로 준공되었다.

[결과]

1928년 조선은 큰 가뭄을 겪어 농사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시흥 지역도 대한해(大旱害)를 피해 가지 못하였다. 전형적인 농촌 지역인 죽율리의 야학도 운영의 길이 막혀 학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였다. 1929년 1월 죽율리 유지들은 야학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술과 담배를 끊자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유지들은 금주 단연(禁酒斷煙)을 통해 절약한 돈을 죽율 야학에 보태자고 호소하며, 군자면민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열었다.

[의의와 평가]

죽율 야학은 죽율리 유지들이 주민들의 높은 교육열에 부응해 앞장선 돋보이는 사례다. 1920년대 이래 시흥 지역에서는 죽율 야학 외에도 논곡 강습소, 오현 강습소, 상곡 강습소, 흥업 강습소 등이 설립·운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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