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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212
한자 韓獨-
영어공식명칭 Handok-maeul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정의]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개설]

한독마을은 도시 빈민 운동가 제정구(諸廷坵)와 미국인 정일우 신부[John Vincent Daly]가 독일의 구호 단체인 미제레올(Misereor)재단의 후원을 받아 신천동 복음자리마을에 이어 시흥시 은행동 찬우물 북쪽에 조성한 마을로 복음자리마을, 1986년 조성한 목화연립 주민이 모두 한 공동체로 인식하며 생활하였다.

[명칭 유래]

한독마을은 집단 이주 철거민들을 위하여 독일 구호 단체인 미제레올재단의 후원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를 기리고자 한국의 ‘한’ 자와 구호 단체 소속 국가인 독일의 ‘독’ 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형성 및 변천]

한독마을은 서울시 시흥동, 당산동, 사당동 등지의 철거민들을 위하여 도시 빈민 운동가 제정구와 미국인 정일우 신부가 신천동 복음자리마을에 이어 은행동 찬우물 북쪽에 조성한 마을이다. 당시 마을 주변은 신천동복음자리마을이 있었고, 폭 6m도 안 되는 비포장도로가 큰 도로였다. 2층 주택이 도로변에 유일하게 한 채 있었고, 온통 논·밭·과수원이던 동네였다. 여기에 독일 구호 단체인 미제레올재단의 후원으로 마을회관을 먼저 지었다. 이어서 8평[약 26.5㎡], 9평[약 30㎡]의 집에 방 1~2칸, 거실, 주방이 있는 이층집 6동 164가구가 1979년 2월에 입주하였다. 당시에는 구멍가게마저 귀하여 복음자리마을 주민들까지 한독마을의 구멍가게를 이용하였다.

이주민들과의 생활을 함께하기 위해 정일우 신부와 수녀들이 독일 재단 소유의 건물에 입주해 정착을 도왔다. 당시 주민들은 민원을 해결하기 위하여 단합했는데, 수인산업도로를 건너다니며 소래국민학교에 등·하교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신호등 설치를 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했고, 설치되지 않자 시위를 통하여 첫 신호등 설치를 이루어냈다.

복음자리마을, 한독마을 그리고 1986년 조성한 목화연립 주민이 모두 한 공동체로 인식하며 생활하였다. 이주민들의 경제적 개념과 공동체 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복음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으며, 해마다 복음 단오제를 열어 화합을 다지는 마을 잔치를 열기도 했다. 1985년 2월에는 마을 사람들의 복지를 위한 작은자리복지관 건물을 세웠다. 하지만 주변의 빠른 변화와 도심의 성장으로 복음신용협동조합경기시흥신용협동조합으로 개명했고, 복음 단오제는 2003년 중단되었다. 철거민의 보금자리였던 한독마을은 1997년 재개발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녹원아파트가 건설되었다.

[자연환경]

한독마을은 북서쪽으로는 소래산이 자리하고 동쪽으로는 멀리 은행천이 흐른다. 주거 밀집 지역으로는 유일하게 동쪽으로 넓게 펼쳐진 농경지가 있었으나, 현재 은계지구 택지 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현황]

한독마을은 조성 당시 찬우물 주변은 물론 일대가 과수원과 들판이었으나, 현재는 녹원아파트 주변으로 저층 아파트, 다가구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고 검바위 주변까지 은계지구 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고 있다. 한독마을의 옛 모습은 사라졌고, 주변에는 시흥신일초등학교검바위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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