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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181
한자 茂芝內洞
영어공식명칭 Mujinae-dong
이칭/별칭 칠리,뭇지내,무지리,무지동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73년 7월 1일 -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에서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무지리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80년 12월 1일 -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무지리에서 경기도 시흥군 소래읍 무지리로 변경
변천 시기/일시 1989년 1월 1일 - 경기도 시흥군 소래읍 무지리에서 경기도 시흥시 무지동으로 승격 및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1월 15일 - 경기도 시흥시 무지동에서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으로 개칭
성격 법정동
면적 2.82㎢
가구수 372가구
인구[남/여] 614명[남자 367명, 여자 247명]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법정동.

[개설]

무지내동은 경기도 시흥시 북동부에 있는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과림동에서 관할한다.

[명칭 유래]

무지내동은 ‘뭇지내’라는 옛 지명에서 비롯되어 무지리라고 불리다가 1989년 시 승격과 함께 무지동으로 개칭되었으나 1995년 시 조례에 의해 무지내동으로 다시 개칭하였다. ‘뭇지내’의 유래는 못[池]과 내[川]가 없는 마을이라 하여 ‘뭇지내[無池川]’라 칭했다는 설이 오랫동안 전해져 왔지만, 이는 한자를 잘못 파악하여 생긴 혼동으로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오히려 ‘뭇내’라는 의미로 수풀이 무성한 마을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형성 및 변천]

무지내동은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전반면 칠리의 능내동, 은행동, 중동, 신흥동이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인천부 일부와 부평군이 합쳐져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신현면, 전반면, 황등천면소래면으로 통합되자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래면시흥군으로 편입되면서 시흥군 소래면 무지리가 되었고, 1980년 12월 1일 소래면은 소래읍으로 승격하였다. 1988년 12월 31일 시흥군이 해체되고 1989년 1월 1일 수암면, 군자면, 소래읍이 합쳐져 시흥시로 승격되면서 시흥시 무지동이 되었다. 1995년 11월 15일 시 조례 제423호에 의해 무지내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무지내동은 서쪽으로 매화동과 접해 있고, 동쪽으로 목감천을 경계로 광명시와 접한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남북으로 관통한다. 대부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현황]

무지내동은 2017년 12월 현재 면적은 2.82㎢, 인구는 372세대에 총 614명[남자 367명, 여자 247명]이다. 행정동인 과림동이 관할하는 법정동이다. 문화 유적에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6호 무지내동 태봉이 있으며, 교육기관으로는 경기자동차과학고등학교가 있다.

[자연 마을]

무지내동에는 능안말, 신흥동, 은행동, 중동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능안말, 신흥동, 은행동, 중동까지 이 마을들 거리가 ‘칠리(七里)[약 2.75㎞]’라 하여 마을 이름 앞에 칠리를 붙였다. 능안말은 신흥동과 과림동 두무절이 사이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전반면 칠리 능안말이었다. 이 마을은 금오로 서쪽으로 이병문 댁 옆에 큰 묘가 있어 마치 능 같다고 하여 ‘능안말’이라 부른다고 한다. 지금은 무지내2통에 속한다.

신흥동은 은행동 서북쪽에 자리한 마을로, 마을이 형성되기 전에는 가시덤불이었는데, 조선 말엽에 수암면 논곡리의 달성 서씨(達城徐氏)가 처음으로 세거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해마다 음력 7월 초에 길일을 택해 마을 앞[남쪽]에 있는 우물에서 우물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은행동은 이 마을의 문씨 집 마당에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에서 마을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경기자동차과학고등학교 동쪽에 자리 잡은 이곳은 경주 김씨(慶州金氏)가 처음으로 세거한 마을이다. 중동은 은행동과 신흥동 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광복 직후까지 금오로에서 중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상나무박이에서 해마다 음력 7월 초에 길일을 택해서 당제를 지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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