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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150
한자 蘇萊鐵橋
영어공식명칭 Sorae Railway Bridge
이칭/별칭 노렴다리,경동철교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도로와 교량
지역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937년연표보기 - 소래철교 준공
전구간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
해당 지역 경유 구간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지도보기
성격 철교
길이 126.5m
1.2m

[정의]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과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을 잇는 철교.

[개설]

소래철교시흥시 월곶동과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에 걸쳐 있는 수인선 철교로 1937년에 설치되었다. 원래 이름은 수인선 철도를 부설한 경동철도주식회사의 이름을 따서 ‘경동철교(京東鐵橋)'라 했는데, 흔히 ‘소래철교'라 불렸다. 수인선 폐선 이후 월곶과 소래포구를 잇는 인도교(人道橋)로 사용되고 있다.

[명칭 유래]

소래철교수인선을 부설한 경동철도주식회사에서 건설한 철교로 ‘경동철교'라고 했는데, 소래포구와 시흥시 월곶동을 잇는 철교이므로 흔히 ‘소래철교'라고 불렀다.

[제원]

수인선은 협궤철도이므로 소래철교 역시 협궤 철교의 규모로 폭은 1.2m, 길이는 126.5m이다.

[건립 경위]

소래철교 공사와 관련하여 인근 포구인 포리[지금의 시흥시 포동] 일대의 주민들이 철교 가설을 반대한 일도 있었으나, 수원~인천 간 철도 부설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소래 인근의 염전과 갯벌에서 생산되는 소금 및 어패류 등의 반출을 목적으로 수인선이 건설되면서 소래철교가 놓이게 되었다.

[변천]

1937년 수인선 소래철교가 건설되었으며, 당시 경제 기반을 소래포구 쪽에 두고 있었던 월곶동 주민들은 노렴나루를 통한 이동 말고는 마땅한 우회 도로나 인도교가 없었기 때문에 전매국(專賣局)에서는 소래철교 위에 널판을 깔아 통행을 돕고자 하였다. 그러나 철도국에서 이를 반대하여 곧 널판을 철거하였고, 철교 위로 사람이 다니지 못하게 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사람들이 소래철교를 이용하여 피난을 떠나게 되었고, 이에 소래철교에 널판을 깔아 일시적이나마 인도교의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소래철교 위로 사람이 통행하는 것은 다시 금지되었고 널판도 철거되었지만, 사람들은 일단 익숙해진 철교 통행을 그만두려 하지 않았으며 사실상 인도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경제 발전과 도로 교통망의 발달에 따라 협궤 열차의 운행 비중이 급격히 감소하였으나, 소래포구가 관광지로 유명해짐에 따라 소래철교도 명소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의 방문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소래철교는 인도교로 건설된 다리가 아니라 협궤 열차의 수송을 위해 건설된 다리로 높이가 10m에 달하고, 다리 밑으로는 물살이 거세 맨몸으로 건너기 어려워 1년에 한두 명은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1995년 협궤 열차가 아예 폐선되면서 선로를 제거하고 바닥과 난간을 연결하여 인도교로 이용되고 있으며 소래포구를 찾는 관광객에게 관광명소로 꼽히고 있다.

[현황]

수인선 협궤철도가 폐선된 이후 인도교로 개조되어 2018년 현재까지 이용되고 있다. 시흥 방면에서 소래포구 방향으로 가는 관광객이 주로 이용하며, 관광명소로 유명해져 일반인들이 많이 찾는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2023.11.16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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